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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외교청서 2019> 표지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외교청서 2019> 표지
ⓒ 일본외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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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이 11월 7일 홈페이지에 올린 <외교청서 2019> 속의 '위안부 성노예 표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년도 외교 연감인 이 책에서 '한국도 성노예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면서 한·일 정부 간의 합의를 거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낳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책 제2장 '지구본을 조감하는 외교' 편은 전 세계를 7개 부분으로 나눠 일본 외교의 현황을 설명한다. 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는 제2장 제1절에서 취급된다. 제1절의 '개관' 편에서 위안부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외무성은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지난 (세계) 대전으로 인한 배상, 재산 및 청구권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양국 간 조약 등에 따라 성실하게 대응해 왔으며, 이 조약들의 당사국과의 사이에서 법적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국 간 조약'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등을 지칭한다. 이 협정으로 해결된 것은 일제 패망 당시 한국인이 일본 내에서 갖고 있던 합법적인 재산상 권리와, 일본인이 한국 내에서 갖고 있던 합법적인 재산상 권리다. 불법적인 식민지배로 인한 배상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문제가 끝났다고 하려면, 불법행위의 존재부터 인정하는 게 순서다. 아직까지 일본은 이 점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법적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청서 2019>는 법적 해결의 종료를 주장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편, 한국 외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중국·필리핀·독일·대만 등에서도 위안부상 설치 등의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으며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계속해서 다양한 관계자들과 접근해 일본의 입장(예컨대,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 '수십 만 명의 위안부', '성노예'라고 하는 주장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해 설명하는 대응을 계속해 간다."

 위안부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됐는데도 세계 각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고 있으며, '군이나 관헌에 의해 강제연행됐다'거나 '위안부 숫자가 수십 만이었다'거나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계속 대처한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렇게 천명한 뒤 바로 다음 페이지에 '위안부 문제'라는 박스 기사를 배치해놓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문제의 '성노예 표현'에 관한 언급이 바로 이 대목에 나온다.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과 어긋나는 것으로, 사용돼서는 안된다. 이 점은 2015년 12월의 일·한 합의 당시 한국 측과도 합의했고, 이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본문에 인용된 <외교청서 2019>의 한 대목.
 본문에 인용된 <외교청서 2019>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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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할 때 성노예 표현을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 사이에 그 같은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대신의 공동기자회견 때 성노예 표현의 사용 문제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대신이 공식 요구한 것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자'는 것과 '더는 이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상호 비난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외교청서 2019>에는 한국 측과 합의했다고 적혀 있지만, 적어도 기자회견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2015년 기자회견 이전의 협상 과정에서는 그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일본은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7월 31일 외교부장관 직속으로 출범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위안부 T/F)'의 조사에 의해 그런 논의가 드러났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2015.12.28.) 검토 결과 보고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2015.12.28.) 검토 결과 보고서>.
ⓒ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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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T/F가 그해 12월 27일 공개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2015.12.28) 검토 결과 보고서>는 "위안부 합의에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이런 방식은 일본 측 희망에 따라 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되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 요청에 따라 협상 내용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협상팀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그러자 한국 협상팀은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한다"고 대답했다.

 
 본문에 인용된 한국 협상팀의 답변.
 본문에 인용된 한국 협상팀의 답변.
ⓒ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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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일본 측 요청에 대해 한국 측은 '우리의 공식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에둘러 답변했다. '우리의 공식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도 답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공식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뿐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에두르고 또 에두르는 방식을 취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논의됐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성노예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는 요청에 대해 "쓰지 않겠다"고는 답변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표현만 쓸 뿐이라고 답변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외교청서에 '성노예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기술했다.

물론 위안부 T/F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협상팀이 성노예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명확히 약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에둘러 직접적인 답변을 기피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외무성이 <외교청서 2019>에다가 한국 정부가 명확히 합의해준 것처럼 기술한 것은 옳은 태도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 협상팀은 성노예 표현을 쓰지 말라는 일본측 요구를 직접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이렇게도 들릴 수 있고 저렇게도 들릴 수 있는 모호한 답변으로 상황을 피해 나갔다. 윤병세 장관을 비롯한 당시 협상팀이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양국 정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한국 국민들 농락 

일본이 툭하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거론할 수 있는 것은, 박정희 정부가 합의를 서두르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식민지배 불법행위 배상책임은 다루지도 않았으면서, 1965년 협정으로 문제들이 다 해결된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일 양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을 농락했던 것이다.

그 같은 졸속 합의를 근거로 일본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까지 다 해결된 듯이 주장하고 있다. 한번의 졸속 합의를 근거로 일본이 오랫동안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합의를 해준 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성노예 표현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2015년 위안부 합의도 그런 도구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성노예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합의하지 않았으냐?'며 한국 민간단체와 정부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졸속 합의가 일본 측에 방어 수단 하나를 제공한 셈이다.

22일 만료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과 관련해서도 이런 졸속 대처가 나타난다면, 이 역시 앞으로 오랫동안 한국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당장의 경제 보복을 피하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요구를 성급히 들어주고 문제를 봉합한다면, 이번 성노예 표현 논란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일본과의 현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처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이번 성노예 표현 논란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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