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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첫 만남, 첫 인상, 첫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느낌에만 의존해서 관계를 평가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감성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첫 만남에서의 느낌이 관계의 지속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있다고 믿는데, 그 기운이 첫 느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전이라는 도시를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방문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차를 타고 대전에 온다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곳이 바로 대전역지하상가일 가능성이 높다. 버스나 택시, 도시철도를 이용하려면 도심을 이어주는 통로인 지하상가를 통해 이동하는 것이 가장 많은 노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전역지하상가 입구에는 대전 관광 상품을 전시해놓은 아담한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구경하며 몇 발짝 발걸음을 내딛다보면 옷 가게며 오래된 레코드 가게, 휴대폰 가게들이 즐비하다. 세련되지도,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길을 걷다보면 어쩔 수 없이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여고생이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점포들의 분위기가 비슷하다. 아마도 먹고 살만큼은 장사가 되니 점포의 주인장도 그대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더 많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하상가는 이곳이 아니다.

대전에는 대전역지하상가와 마찬가지로 한 때는 대전 최고의 번화가였던 은행동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지하상가가 있다. 1994년 새롭게 조성된 중앙로지하상가다. 대전역지하상가 끝자락에 있는 목척교부터 옛충남도청사까지 약 1.2km 길이의 이 지하상가에는 600여 개의 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대전기네스에 중부권 최대 규모의 지하상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대전에 방문해 중앙로지하상가를 만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지하의 세계에 압도되고 만다. 유동인구가 많고 젊은 세대들의 쇼핑공간으로 사랑받다보니 대전의 최신 트렌드를 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도 한 때는 친구들과 쇼핑을 약속한 날이면 어김없이 중앙로지하상가를 찾곤 했다.

우리들의 지하상가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만나"

중앙로지하상가는 우리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친구들과 갖가지 이유를 핑계로 만나기로 한 날은 꼭 지하상가 분수대를 약속장소로 정했다. 깜빡하고 약속장소를 정하지 않은 날도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만났다. 중앙로지하상가 분수대는 그 시절 우리들의 공식 약속장소였다. 지하상가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씨에 관계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춥거나 덥거나 계절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매일 아침 그 날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되기 전에는 미세먼지 걱정도 하지 않았다. 지하세계지만 우리들에게는 천국이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중앙로지하상가를 찾아가보았다. 여전히 수많은 점포들이 패션리더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 상가 곳곳에 마련돼 있는 휴식 공간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 음료와 토스트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를 팔기 위해 귀여운 호객행위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니 이곳의 명성도 예전 같지 않고 내가 학생에서 중년의 나이가 된 만큼 세월도 흘렀으니 분명 뭔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지금도 젊음의 열기와 자유로움이 가득했고 수많은 이들의 만남과 추억이 쌓여가고 있는 듯 했다. 전통시장에 따뜻한 인정과 덤 문화가 있다면 대전 지하상가에는 생기가 있었다. 그 생기가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밝은 에너지로 바꿔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전 도심 속에 젊은이들의 공간은 무궁무진하다. 크고 작은 소통과 문화공간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전역이나 중앙로지하상가가 명소로 부각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대전 사람이 아닌 타 지역 방문객들에게는 어떨까? 어쩌면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지하세계로 기억되진 않을까?

대전 지하상가에는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의 주인공은 친구일수도, 연인일수록, 가족일수도, 사람이 아닌 대전이라는 도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추억이다. 나의 찬란했던 10대와 20대의 많은 날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대전을 방문한다면 꼭 한번 지하상가를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그 친구가 사는 도시에도 지하상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걷는 대전의 지하상가는 다를 것이다. 최근 패션 트렌드를 만나고, 문화공연을 만나고, 소문난 먹거리를 만나고, 이야기를 만나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우리는 추억을 남겨두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걷고 또 걸으며...
  
백옥희

방송·영상·출판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 집필하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의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고 있다. 사라지는 원도심과 변화하는 대전의 원도심에 주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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