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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함성 속 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출발대가 열리면 경주가 시작된다. 긴장감 넘치는 경주의 내면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주마를 구매부터 출전까지 관리한다. 전국에 약 100명, 그중 서울에는 약 50명이 있다. 화려한 경주 속 노력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 그들은 '조교사'다.

"말이요? 저에게 말은 자식 같은 존재예요."

마사회에 매일 출근한 기간 33년. 그동안의 끈기를 인정받듯 데뷔 7년 만에 연 매출 34억 원 달성, 현재 한국마사회 서울 다승 2위로 활약하고 있다. 50조의 화려한 비상에는 박재우 조교사의 '말 사랑'도 한몫했다. 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는 그저 '자식'이라고 말한다.

현재 50조 박재우 조교사의 마방에는 '김덕현 기수'가 소속되어있고 관리사는 총 12명이 있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말들을 훈련한다. 그는 직원들이 있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달빛이 아름다운 18일 밤, 50조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박재우 조교사와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황금마상 앞에서 환하게 웃는다.
▲ 박재우 조교사 황금마상 앞에서 환하게 웃는다.
ⓒ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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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생소합니다. 어떤 직업인가요?
"경주마를 구매부터 출전까지 총 관리 하는 업무입니다. 감독이라고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조교사이죠. 저는 50조 조교사입니다. '50조'란 마방에 부여받은 번호예요. '50번째 마방이다'라고 생각하면 되죠. 우리는 해당 경주에 경주마가 5위 안으로 들어오면 순위에 맞는 상금을 받아요. 그게 주 수입이에요. 상금은 적게는 200만 원부터 많게는 약 5억 원까지 있어요. 경주마다 상금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상금의 약 71%는 마주, 7%는 조교사, 기수가 가져가요. 나머지는 한국마사회가 가져가죠. 조교사는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하는 만큼' 벌어요. 저도 달마다 월급이 다르죠. 사실 저도 이 직업을 잘 몰랐어요. 매형의 권유로 서울에 상경한 뒤 입사를 했죠. 시골에 살면서 동물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말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 '조교사'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처음 입사해서 1년을 계약직으로 일해요. 3년 후부터 정직원의 자격이 생기죠. 그 뒤 6개월간 조교승인이라는 연수를 받아요.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조교승인 자격을 얻죠. 그 후 조교보 자격증을 따고 마지막 자격증이 조교사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려면 최소 15년이 걸려요. 마방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조교사 시험 일정도 없어요. 은퇴한 사람이 있어야 마방의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나라엔 약 100명, 서울에는 약 50명 밖에 없어요. 마침내 조교사 자격증을 따면 회사에 사표를 내요. 조교사는 개인 사업자거든요. 사표를 낼 때 기분이 참 오묘했어요. 몇십 년간 다니던 회사를 사표를 내다니.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네요."
  
밥을 챙겨준다.
▲ 박재우 조교사 밥을 챙겨준다.
ⓒ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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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마로 탄생을 함께하는데 정확한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일단 제주도 목장, 미국, 호주 경매에서 말을 데리고 와요. 생후 18개월부터 제주 육성 목장이나 장수 경주마 육성 목장에서 3~6개월 동안 훈련을 받죠. 그 후 경마장에 입사하여 훈련을 마치고 출발 심사를 거쳐요. 그 뒤 주행 심사까지 합격하면 비로소 경주마가 탄생하죠. 가장 어린 경주마들은 2세예요."
 
- 좋은 말을 고르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고르는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어요. 제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엉덩이예요. 그쪽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에 높고 넓은 말을 고르죠. 말은 한 번 뛸 때 시속 55~60km로 달려요. 가슴둘레가 큰 말을 골라요. 둘레가 크면 심장 활동 영역이 크기 때문에 심폐 기능이 좋죠."
 
- 말의 가격과 등급은 어떻게 나누나요?

"말은 대부분 혈통 싸움이죠. 혈통이 좋을수록 비싸요. 전 50마리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가장 비싼 말이 1억 2천만 원이고, 서울 경마장에서는 2억 9천만 원이 가장 고가에요. 말은 1~6등급까지 있어요. 1등급일수록 좋은 말이죠. 1승을 할 때마다 레이팅 점수가 있어요. 레이팅 점수란, 경주를 뛰면 적립되는 포인트의 개념이죠. 그 점수로 등급이 나누어져요. 성적이 좋을수록 높은 등급인 거죠."
  
- 말 관리 비용은 얼마나 들어요?

"이건 조교사마다 달라요. 예를 들어서 비싼 사료를 먹일수록 관리 비용이 늘어나겠죠? 트레이닝, 식단 또한 제가 관리해요. 저희 마방은 비싼 사료에 20여 가지 한약을 먹여요. 설탕, 각종 영양제도 필수죠. 한 마리당 160만 원을 받고 있죠. 보통 다른 마방은 150만 원 정도 받아요. 좋은 것을 먹이려해 조금 비싼 편이에요. 돈은 해당 말의 마주에게 받죠."
  
경주마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박재우 조교사를 쳐다본다.
▲ 50조의 경주마들과 박재우 조교사 경주마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박재우 조교사를 쳐다본다.
ⓒ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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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마로서 수명이 다한 말들은 어디로 가나요?
"저희 마방은 기부를 해요. 전국의 승마장, 말 관련 학교에 보내죠. 조금이라도 더 능력치를 보여줬으면 해요. 경주마로써 수명은 다했지만 '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더 달릴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하죠. 그래도 걱정이 많이 돼요. 승마장이나 학교에 가면 일반 건초만 먹잖아요. 가끔 생각이 나면 한 번씩 보러 가요. 잘 살아있나 건강한지 궁금하더라고요."

- 말 사랑이 대단하신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과천동이'라는 말이에요. 제가 조교사로 개업했을 때 가장 먼저 제 마방에 들어왔어요. 그 말은 오른쪽 다리가 왼쪽으로 많이 기울었던 '기형마'였어요. 그래도 오랫동안 뛰어주고 능력치를 오래 보여줬죠. 제 조교사 인생의 첫 말이다 보니 기억에 많이 남네요."
 
- 그 말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과천동이'는 아니지만 다른 말의 황당한 기억이 있네요. 새벽에 '두손왕자'라는 수말이 탈출했어요. 탈출하면서 맘에 드는 암말 '화이트퀸'이 들어 있는 마방의 문을 주둥이로 열었어요. 둘이 데이트 나갔죠. 둘이서 몇 시간 동안 주로에서 산책하면서 놀았어요. 황급히 연락을 받아 애들을 잡으러 갔죠.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어요. 그때 탈출한 것을 목격했을 땐 황당했지만 찾아가서 두 마리를 봤을 땐 웃음이 나왔죠. 오죽 둘이 데이트하고 싶었으면 해서요."
  
새벽 탈출의 주인공이다.
▲ 두손왕자 새벽 탈출의 주인공이다.
ⓒ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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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왕자'의 마음을 빼앗았다.
▲ 화이트퀸 "두손왕자"의 마음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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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사님이 생각하시는 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식과 같은 존재예요.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감수성도 풍부한 동물이죠. 우승하면 기쁘게 소리를 내기도 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본인도 아는지 기가 죽어버리죠. 겁은 많지만 사람을 좋아해요. 제가 마방에 들어가면 모든 말들이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죠.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아, 사람들이 '모든 말은 서서 잔다'라고 알아요. 하지만 80%는 누워서 잠을 자요. 이건 꼭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33년을 경마장에 있었어요.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했죠. 앞으로도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면 하네요."
   
- 조교사로 일하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최고 인기마가 경주를 망쳤을 때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성과가 없으면 저 또한 힘들어요. 한 주마다 성과가 순위로 보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또한 말 훈련 직원, 기수들이 낙마하거나 다칠 때도 많이 힘들죠. 일하다가 다치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아요. 말도 사람도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 목표는 무엇인가요?
"UAE 두바이 월드컵에 출전해서 우승해보고 싶네요. 두바이 월드컵은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돼요. 총상금도 537억 원으로 세계 경마 대회에서도 손꼽히죠. 두바이 월드컵에 우승해서 한국 경마를 세계에 알리고 싶네요. 또, 명예로운 퇴직을 하고 싶어요. 아직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예전보다 발전이 많이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더딘 느낌이 들어요. 우리 한국 경마가 레저 스포츠로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저 또한 공정 경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방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한다.
▲ 박재우 조교사와 투어로즈 마방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한다.
ⓒ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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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의 나이 겨우 19살. 청춘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채 일터에 보냈다. 입사 후 33년간 꾸준히 새벽에 출근했고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어느덧 사장이 되었다. 말을 자식처럼 생각하며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다는 그에게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태그:#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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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박이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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