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9 14:12최종 업데이트 19.11.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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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축제장엘 갔다. 새로운 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곳이 술 축제장이다. 이날 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술, 새로운 술에 기꺼이 빈 잔을 내밀기에,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다. 나는 3일 동안 진행된 축제에 3일 내내 참석했다. 새로운 술을 만났고, 오래된 지인을 만나 반가웠고 오래될 지인들을 만나 설렜다.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 장에서 진행된 전통주소믈리에 대회 심사장의 모습. ⓒ 막걸리학교

 
축제 이름은 '2019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다. 우리술은 원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한 것을 뜻한다. 축제장에서 '우리'들끼리 무리를 지어 술을 빚는 이들도 만났다. 술은 혼자 마시기 쉽지만, 혼자 빚기는 어렵다. 함께 거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직원이 없다면 적어도 부부라도 손을 맞춰야 한다. 더불어 합심하여 양조를 시작한다면, 양조 기술 능력자, 자본 경영 능력자, 유통 마케팅 능력자, 디자인 능력자가 모인다면 네 바퀴 자동차처럼 안정된 형태를 이루게 된다.

이미 큰 기업으로 자리잡은 서울탁주, 부산탁주, 국순당, 배상면주가, 안동소주 회사들도 참여했지만, 갓 창업한 양조장들도 있었다. 1957년에 하유천씨가 창업하여 막걸리업계의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한 포천이동 막걸리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도 발표되었는데 작년부터 신설된, 모든 양조장들이 탐내는 대통령상은 충북 청주 장희도가가 받았다. 축제장에서 진행된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는 농림축산품부 장관상을 천수현씨가 받았다.

축제장을 한 바퀴 돌면 100m 정도 될 터인데, 맛볼 술이 많아서인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작년에 68개 업체 80개 부스가 참여했는데, 올해는 98개 업체 99개 부스가 참여했다. 그들 중에서 내 눈에 띈 것은, 뜻을 함께 한 이들끼리 협업이나 동업이나 조합 형태로 양조장을 차린 경우들이었다.
 

모월 양조장 대표가 술을 소개하고 있다. ⓒ 막걸리학교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곳은 강원도 원주에서 올라온 모월 양조장이었다. 한살림의 태생지이자, 한국 협동조합의 메카로 알려진 원주에서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창업한 곳이다.

양조장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때 미팅한 대성고등학교와 원주여고의 동창들이 주축이 되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토박이라서 가능했겠지만, 서로 친하다고 양조장을 만들다니! 2014년에 13명이 모였고, 2015년에는 술 공방을 만들고, 2016년에 첫 상품을 출시했다.

원주시내의 낡은 가게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원주시 판부면 신촌계곡 햇살 좋은 곳에 술 카페와 함께 신 공장을 지어 입주했다. 토박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질긴 근성과 넉넉한 여유가 얼핏 보였다. 술병도 직접 제작하여 외글자 이름을 달았는데 인 41도와 로 25도 소주, 청 16도와 연 13도 맑은 술을 내놓았다.

두 번째는 서울 성수동에서 2018년에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로 창업한 한강주조 양조장팀이었다. 파란색의 술병 색깔과 동일한 파란 상의를 갖춰 입은 30대 젊은이 4명이 열심히 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성수동에서 카페를 5년 동안 운영한 대표와 디자이너 둘과 건축가가 의기투합하여 양조를 공부하고 양조장을 차렸다. 술 이름은 한강 나루가 가까워서 나루생막걸리라고 했고, 처음 들어보는 서울의 쌀 브랜드인 경복궁쌀로 술을 빚었다. 수제 방식으로 500ℓ 발효통 3개를 놓고 시작했고, 무감미료 무첨가물을 표방하면서 6도와 11.5도 프리미엄 막걸리를 내고 있다.
 

DOK 부르어리 대표가 술을 소개하고 있다. ⓒ 막걸리학교

 
세 번째는 DOK 브루어리, 그 이름만 듣고는 맥주를 만드는 곳인가 싶을 정도다. 대학교 선후배 사이의 4명이 뭉쳐서 만들었는데, 20대 젊은 대표는 우송대학교 글로벌 한식조리학과를 나왔다. 강북구 수유동의 병원으로 쓰던 1층 건물 50평을 임대해서 양조 공간을 카페처럼 예쁘게 차렸다.

석류와 히비스커스로 붉은색을 낸 8도짜리 막걸리 이름이 '걍즐겨'이고, 라임, 레몬, 잉글리쉬 브랙퍼스트가 들어가 노란색이 도는 막걸리 이름은 '뉴트로'다. 발효제는 전통 누룩에 맥주효모를 사용하여 파격을 더했다. 당혹스럽고 과감한, 도발적이고 신선한 발상으로 젊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양조장이다.

네 번째는 경기도 수리산 남쪽 군포시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가양주작이었다. 동네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학부모들이 모였고,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통주 동아리까지 꾸려졌다. 그 동아리가 모태가 되어 조합이 결성되고, 조합원 23명이 1구좌 100만원씩 투자하여 마을기업 형태로 양조장이 만들어졌다.

가양주작 양조장은 수리산맑은물쌀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올려다보이는 수리산의 수암봉 이름을 따서 약주 14도 수암주를 만들었다. 군포시와 인근 지역에서 나는 아로니아 열매를 넣어 숙성시킨 소주 알로이 40도, 25도, 18도를 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가 있을 텐데, 나는 이들 네 군데만으로도 충분히 양조장 창업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면허가 제한되었던 시절에는 자본과 권력과 친해야 양조장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양조장 면허가 비싼 값에 팔리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들기를 좋아해서, 친구를 좋아해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신규 창업하기 위하여 술을 빚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도시에서는 1㎘ 이상의 발효 시설을 갖추면, 시골 농부라면 10㎡ 이상의 공간을 갖추면 양조 면허를 낼 수 있다. 술을 통해서 꿈을 키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서, 3일 간의 축제를 흥겹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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