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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YH무역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가 1979년 신민당사 농성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김경숙 열사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그 정신을 기리고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역사 탐방 '언니Ro'를 기획했다.

'언니Ro'는 1960~19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역사가 담긴 노동 현장을 권역별로 나누어 '구로언니Ro', '청계언니Ro', '영등포언니Ro', '금천언니Ro' 등 4코스로 개발되었다. 1979년 경찰의 신민당사 강제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김경숙 열사를 깊이 추모하며, '구로언니Ro' 탐방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언니RO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난 마리오사거리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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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수출 전진 기지로 조성된 구로공단. 교통 면에서 뛰어난 입지를 앞세운 구로공단은 산업화 절정기에 약 11만 명의 노동자가 종사했던 곳이다. 구로공단에서 섬유, 의복 등으로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대기업들은 당시 '수출만이 살 길'이라 외치며 어린 여공들의 노동력을 '갈아' 쉼 없이 공장을 돌려 수출물량을 맞췄다.

산업구조가 변화한 2000년대 들어 구로공단은 IT 위주의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했고,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공순이', '공돌이'로 상징되는 구로공단의 모습을 지워갔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해야 할 '진짜'를 찾아 다시 이곳에 왔다.

독재정권의 빛 좋은 개살구 '산업역군'도, 오빠의 학비를 대는 가련한 '공순이'도 아닌, '여성노동운동가' 언니들을 찾아서.

지난 9월 28일(토),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원과 일반 참가자 30명은 역사 탐방 첫 코스 '구로언니Ro'를 따라 걸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앞 수출의여인상 - 주)대협 - 대한광학 - 가리봉전자 - 닭장집 밀집지역 (가리봉시장 고개) - 구로동맹파업현장(서울통상 - 효성물산 - 대우어패럴) - 금천순이의집(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까지 돌아보는 것이 오늘의 코스.
   
 언니RO
 언니로맵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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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의여인상 앞에 탐방 참가자들이 모이자 유옥순 선배님(전 콘트롤데이타 부지부장)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당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린 여성노동자들은 정부미로 지은 밥을 먹으며 일해 번 돈을 집으로 송금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죠.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는 여공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한 달에 2번 정도 쉰 기억이 나요. 명절이 되면 회사 마당에 각 지역으로 우리를 고향까지 실어줄 버스가 줄 지어 서 있어요. 명절이 끝나면 다시 태워서 돌아옵니다. 얼핏 복지서비스 같죠? 실상은 '구속버스'였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 만나 며칠 지내다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안 돌아올까 싶어 태워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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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의 여신상 앞 유옥순 선배님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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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수출에 중점을 두고 진행된 한국의 산업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단기간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인공은 산업현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인간존엄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한 노동자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 또한 그랬다.

삼경복장 표지석 앞을 지나며 윤혜연 선배님(삼경복장,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재직)이 마이크를 잡았다.
  
"14살이 되던 해 2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했어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해서 2살 속여 봉제공장에 입사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잔업만 100시간 넘게 했고, 철야도 일상으로 했습니다. 작업하다가 다이(작업대) 위에 대충 옷 깔고 잠을 자는 생활을 8년간 했죠. 그때 좀 잘 자고 잘 먹었으면 키가 더 컸으려나요?(웃음)"

탐방객들 사이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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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아린 이야기를 농을 섞어가며 이어가는 윤혜연 선배님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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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서 탁 트인 공장 주변을 둘러보는 게 그나마 속을 푸는 방법이었어요. 기업들이 조경은 또 멋지게 해놨었거든! 고된 일상에도 우리는 야간 산업체특별학급 진학을 꿈꿨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봉제공장보다 대우가 좋은 전자회사를 가기를 희망했죠."

봉제공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며 작업물량을 해내고,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니며 졸업장을 따 기어이 전자회사(가리봉전자)에 취업했던, 그 야무진 소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일하고 배우며 얻는 보람만큼 고민도 깊어졌다고 한다. 물에 말면 쌀벌레가 둥둥 뜨는 구내식당 밥, 출퇴근 때마다 어린 여공들의 가방과 옷을 수색하는 사측의 비인간적인 처우. 회사는 급성장을 해도 제자리인 월급. 여성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이 같은 부당행위와 인권 유린을 숱하게 겪으며 단결해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조합을 만들려 한다는 이유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행을 붙여 감시하기도 했고요, 아침 조회 때는 공개적으로 나를 가리켜 '빨갱이'니 어울리지 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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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노동자에 가한 사측의 인권 유린을 보도한 내용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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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물산 노동조합원들은 회사의 협박, 폭행에도 굴하지 않고 철야농성을 벌여 저임금을 해소했다. 이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주장하고 나선 것은 불온한 사상을 지닌 빨갱이어서가 아니었다. 일하며 겪은 부당한 대우와 근로조건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며 문제의식이 생겼고, 노동조합을 통해 학습하며 의식의 성장을 이룬 결과였다.

윤혜연 선배님은 노동조합에 의해 회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지 보고 겪었다고 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밥. 정부미로 지은 밥에 익숙했던 여성노동자들은 개선된 식단이 '호텔밥' 같다며 수다를 떨곤 했다고 회상했다. 또 당시 가리봉전자 노동조합 협약서에는 노동자들의 휴일까지 기재되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행동에 나서면 사측의 태도가 바뀔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투쟁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당시 전두환이 유화정책을 펼친 때였고, 이를 틈타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민주화', '민주노조 결성' 등을 활발히 해 많은 성과를 이끌어냈다. 사측이 노조간부를 구속하고, 민주노조 와해 작전을 펼쳐 여러 시도를 했지만,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은 식당을 점거해 농성·파업을 이어가며 거세게 저항했다.

"임금협상을 주도하던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명을 해고하고, 정권이 이들을 구속까지 했습니다. 구로공단 민주노조 노동자들이 참지 않고 연대해 '구로동맹파업'으로 이어졌어요."

구로동맹파업은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정치적 동맹파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임금협상이 타결된 지 2개월이 지난 후 협상과정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의 파업을 문제 삼아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을 회사가 고소하고, 경찰이 6월 21~22일에 걸쳐 이들을 무차별 구속하자 구로 지역 노동조합은 거세게 항의하며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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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권 하나면 잔업, 두 개는 철야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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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24일에서 29일까지 6일에 걸쳐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부흥사 5개 노조가 동맹파업을, 다른 5개 노조가 지지연대투쟁을 벌였다. 대우어패럴 노조가 깨지면 다른 노조도 깨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만들어 낸 역사적인 연대투쟁이었고,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이었다.

현재 쇼핑몰이 대거 밀집해 있는 '마리오 사거리'라 불리는 곳이 바로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곳에 대우어패럴, 서울통상, 효성물산이 바로 이웃해 있었다. 대우어패럴과 효성물산이 마주 보고 있던 가리봉 오거리. 구로동맹파업 당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여성노동자들은 각자 회사 건물 창문에 매달려 수건을 흔들며 연대와 지지를 표시해가며 즐겁게 투쟁했다고 한다. 유옥순, 윤혜연 선배님은 이를 노동운동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 회상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보고서는 이 구로동맹파업을 두고 '아름다운 6일간의 만남'이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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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금천순이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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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순이의집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탐방객들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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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경찰과 사측에 의해 폭력 진압되면서 구로동맹파업이 6일만에 일단락되었지만, 똘똘 뭉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은 이 땅의 노동자들과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곧 투쟁의 주체임을 보여준 것이며, 노동자들은 이 경험을 향후 노동운동의 동력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역사가 책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종종 재조명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는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는 산업화의 흐름 속에 집안을 위해 희생한 착한 딸, 혹은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공순이'로 한정해 그려졌다. 이것은 언니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공순이'라는 별칭에 녹아 있는 멸시와 가련함은 언니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조합 활동을 훼방 놓기 위한 사측의 회유도, 구사대(노동운동 진압을 위해 사측이 고용한 사람들)의 무자비한 폭력도, 인간으로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언니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민주노조운동을 견인한 언니들은 용감하고 강인한 운동가였다.

노동운동가로서의 언니들을 제대로 알리고 기억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내년에도 언니Ro 탐방이 계속된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언니들의 진짜 이야기, 우리 언니들이 노동하며 투쟁한 이야기, 멋짐 폭발 대서사는 계속됩니다. 언니Ro에서 만나요!

** 구로언니Ro를 탐방해보니 구로 2,3공단은(현 금천구) 표지석조차 없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금천구청에 표지석을 보강해 세워줄 것을 요청했고, 금천구청이 이를 받아 들여 올 연말까지 구로지역 6곳에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다.

[관련 기사]
쉽게 잊힌 '1970년대 N번 시다'들의 이야기
[관련 링크]
 '언니Ro, 여성노동자운동 발자취를 따라서' 지도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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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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