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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터크만(Gaye Tuchman)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는 뉴스라는 "창"을 통해 사회를 바라봅니다. 더욱이 소셜네트워크의 등장과 확산 속에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뉴스거리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들 혹은 이야기는 뉴스라는 창 밖에 머무르며 충분하고도 적절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진들은 노숙인, 입양인, 난민, 유학생, 청소년, 참사피해자, 여성, 이주민, 비인간적인 것(nom-human) 등 그동안 손쉽게 지나친 혹은 잊혀진 다양한 뉴스 밖 사회의 풍경들에 관심을 갖고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총 8분의 사회학 전공자 및 연구자가 아래와 같은 주제로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 기자 말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중 만들어진 인권선언의 제1조이다. 21세기에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국가의 이익 앞에, 계급의 이익 앞에, 자본의 이익 앞에. 인간의 왜곡된 욕망 앞에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은 언제나 '타자'의 존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좀 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면 원래 '나'라는 존재는 주체적 자아를 가진 능동적 인간이면서 누군가에게는 '타자' 적 존재이다. '나'라는 주체적 자아와 내가 아닌 '타자'는 어떤 조건이나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한 주체도 없고 영원한 타자도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간사회는 '공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이 사회구조는 타자를 재생산하면서 권력과 자본의 힘을 유지한다. 그리고 '타자'는 차별과 혐오,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역사책이 되어버린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준 인권선언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타자'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유령인간처럼 취급하거나 애써 모른 척한다.

'타자'의 재생산 구조와 의미

사회학에서는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 미시적 수준에서 거시적 수준으로 도식화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사고와 감정 등 일상에서 출발하여 집단, 조직, 사회, 성, 계급, 민족, 국가, 세계체제 등으로 확대하여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미시. 거시의 이분법적 분석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 국가의 부조리함, 지배 권력은 결국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일상의 삶을 지배하고 타자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들의 지배 방식은 폭력과 억압, 착취로 형태로 나타나며 '타자'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거나 희생양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타자'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이방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지만 '타자'가 놓인 상황과 조건, 문화, 역사성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균일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그람시(Gramsci)가 처음 사용했지만 탈식민주의 이론적 개념인 서발턴(Subaltern)은 '타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발턴은 하층민, 종속집단 등으로 번역되지만 이 용어는 식민지 경험과 상황을 고려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계급의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 인종 문제, 젠더 등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나는 억압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사회 혹은 한국사회와 연결된 '타자'의 문제 역시 오랜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만의 상황과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사회의 사회적 타자 '조선학교'
 
 
필자는 최근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대표 권해효)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 나고야의 조선학교 유치부. 초·중·고 학교 방문에 동행하였다. (참고로 몽당연필은 재일 조선학교를 알리고 조선학교와 교류 및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며 조선학교가 일본에서 부당한 차별과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국내의 시민운동 단체이다.)
그 차별 사회에서도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맑은 눈빛과 순수함에 존경심과 감동이 눈 앞을 가렸고, 대체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었는지에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의해 1945년 10월 만들어졌다고 하니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범 국가 일본의 패배와 패전국의 증오감에 휩싸인 사회에서 살아온 재일조선인은 먼저 학교를 만들었다. 후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를 하나씩 세워나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조선학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학교 초기에, 일본 정부의 학교 폐쇄령을 거부하고 저항에 나선 수천 명의 조선인이 연행되고 구속되었으며 오사카에서 16살의 김태일 소년은 일본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식민지 해방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온 대다수 조선인에게는 기쁨이 아니었으며 새로운 식민지의 연속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조선학교의 투쟁을 여전히 일상이 되었다.

우리학교(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부른다)는 2018년 현재 일본의 10개 지역에서 64개의 학교에 약 7천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해방 이후 학교 재정은 수업료와 동포들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으나 재정 악화와 여전히 일본 정부의 차별로 인해 더욱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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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것은 모든 차별과 배제에 맞서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학교 가는 길에 어린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까만 저고리와 치마가 일본 헤이트(혐오) 세력에 의해 찢겨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조직된 우익집단이 학교를 습격하고 모욕과 협박 등 그 수준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일본 우익정치와 군국주의가 강화되면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교 무상화 유치부 무상화 배제, 교육 보조금 중단

2010년 4월, 일본은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조선학교'는 무상화 교육에서 제외되었고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실행하던 교육보조금 역시 중단되었다. 교육의 평등권을 위배한 이유로 조선학교 학생을 원고로 오사카 등 5개 지역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재판 투쟁을 벌였지만 모두 패소하였다. 최근 일본 정부는 유치원, 보육 시설도 마찬가지로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UN 사회권규약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에서도 해마다 일본 정부에 시정 권고를 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일제 강점기가 없었다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들은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60만 명의 재일 조선인들은 남북의 경계인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이라는 폐쇄적 사회에서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해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멸과 차별의 서러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화자찬을 하지만 바로 내 옆에 있는 우리 학교에 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정책을 펼쳤다면,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일본의 극우 세력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여전히 오늘도 우리가 모르는 사회적 타자로 남아있다. 굳이 인권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어떤 이념도, 사상도, 계급도 한 사람의 배움의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당당한 주권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 의식은 적어도 내가 인간임을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태그:#뉴스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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