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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플랫폼
 교토역 플랫폼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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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도쿄로

우키시마호 추도제 일행의 일본 현지방문 셋째날이었던 2019년 11월 5일. 그날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교토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이동해 유텐지에 안치된 고혼들을 참배하고, 가까운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간밤에 잠을 잔 교토 도큐호텔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2003년 한국방송대 일본학과 학생들과 역사탐방 때 하룻밤 묵었던 숙소였다.

느지막이 교토역으로 가자 집행부 요원이 승차권을 나눠주는데 확인해보니 '교토(京都) → 시나가와(品川)'였다. 귀에 익은 지명이었다. 나는 어려서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자랐는데 조부모님은 젊은 날 일본에 가서 시나가와에서 사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고생했던 얘기를 귀에 익도록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신칸센 승차권
 신칸센 승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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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신칸센 대합실은 열차 객실마다 달랐는데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거의 소셜미디어를 보고 있었다. 한국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이전 일본 방문 때는 거의 대부분 승객들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제 일본도 세계의 조류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대합실 한쪽 구석의 탁자엔 일본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꺼내 놓고 잠깐의 시간에도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자 신칸센은 3분간 배차로 모두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대인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우리는 이런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 열차도, 사람도, 시계 초침처럼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적응치 못하면 낙오하기 마련이다.

오전 10시 2분에 출발한 열차는 1분 1초도 틀림없이 낮 12시 12분에 정확히 도쿄 시나가와역에 멈춰 섰다. 나는 10여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셈인데, 그때보다 역 언저리 일대에 고층건물이 무척 늘어나 보였다.  

시나가와역

이곳은 도쿄만 부두와 가까운 곳으로, 해방 전에는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건너온 조선 사람들의 밀집 지역이었다고 한다. 젊은 날 나라를 잃고 상심하던 나의 할아버지는 동학계통의 보천교에 몰입해 전재산을 헌납했다. 그 뒤 살 길이 막막하자 혼자 도일했다. 아마도 이곳 부두에서 생계 터를 마련한 뒤 가족을 불러들였던 모양이다.

"너희 할아버지는 하루 일이 끝나면 정종을 두세 잔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돈을 아낀다고 한 꼬뿌(컵)밖에 마시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자주 영감을 추억하면서 내게 당신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아마도 시나가와 일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본인들에게 온갖 차별과 멸시를 당하면서 홀치기, 나토장사, 고물상 등 갖은 고생을 다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신칸센 객실에서 유년시절 할아버지·할머니의 추억을 더듬었다. 그 사이 물 찬 제비 같은 신칸센 열차는 어느 새 시나가와역에 닿았다.

역 앞에 마련된 전세버스를 타고 도교만 일대를 둘러 식당가로 갔다. 차창 밖 도쿄 시내와 부두를 두리번거리는데, 바다에는 부유물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세계 어느 항구를 가나 부두에는 갯냄새와 기름 냄새가 나거나 바다에는 이런저런 부유물들이 떠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의 도쿄만 일대는 그런 냄새도, 부유물도 보이지 않는 청정해역이었다. 게다가 하늘조차도 투명했다. 그저 일본인들의 환경보호 정신과 청결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유텐지 납골당에서 분향 헌화를 마친 유족 및 관계자들.
 유텐지 납골당에서 분향 헌화를 마친 유족 및 관계자들.
ⓒ 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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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마침내 한국에서 온 강제동원 유족대표 및 관계자들은 도쿄시 메구로구에 있는 유텐지(祐天寺)를 찾았다. 이곳 납골당에 안치된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희생 조선인 군인 및 군속,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영령을 위한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당초 이곳에는 조선인 희생자 유골 및 영령 2000여 위(位)가 수습 안치돼 있었다. 이후 한일 정부 간 합의로 유골 송환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도 700위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275위는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들이고, 나머지 425위는 북녘 조선인 희생자들이라고 한다. 북녘 출신 희생자들은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여태 고국에 봉환되지 못하고 있단다.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에 게시된 전시 자료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에 게시된 전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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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역사자료관

이후 우리 일행은 도쿄시 미나토구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으로 갔다. 이곳은 재일동포들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설립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일본 도항, 칸토대진재의 수난, 강제연행, 황국신민화교육, 해방 그리고 귀국과 잔류 등 재일동포들의 100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놨다.

일제강점기 때 약 200만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살다가 일본 패전 후 130만 명 정도는 귀국했다. 그러나 70만 명 정도는 일본 땅에 잔류하고 있었다. 곧 이들이 재일동포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계자는 우리 일행에게 재일동포들의 지난 100년의 피어린 역사를 눈물겹게 얘기했다. 
 
재일조선인들의 재산목록 제1, 2호인 요강과 놋그릇으로, 요강은 일본에 없기에, 놋그릇은 제사 지내고자 조선에서 가져갔다고 함.
 재일조선인들의 재산목록 제1, 2호인 요강과 놋그릇으로, 요강은 일본에 없기에, 놋그릇은 제사 지내고자 조선에서 가져갔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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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지문을 찍어야 했습니다."
"사할린 거주 일본인은 패전 후 모두 본국으로 돌아왔으나 조선인들은 거기에 남았습니다."
"재일동포는 선거권도, 참정권도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취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3D 업종에 종사하든지, 빠칭코, 불고깃집, 밀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재일동포 가운데 역도산, 장훈, 이충성, 정대세 같은 이는 운동으로 일본인을 이겼습니다."

"재일동포들은 어려운 가운데도 애써 번 돈을 모국을 위해 흔쾌히 기부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때는 500억 엔을 기부했고, 새마을운동 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주도 감귤 밭은 재일동포들이 보낸 묘목 덕분입니다."
"이런 재일 동포들의 고국에 대한 애향심을 정작 고국 동포들은 몰라주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그날 우리 일행은 그의 말에 따라 때로는 박수를 쳤고, 때로는 한숨을 쉬었고, 한때는 부끄러워했다. 나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닌 할아버지·할머니의 얘기이기에 한 마디라도 빠트리지 않고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재일조선인 <종소리> 대표 오홍심 시인(제주도 출신. 79)
 재일조선인 <종소리> 대표 오홍심 시인(제주도 출신. 79)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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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까지 와서 2005년 평양 민족문학작가대회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종소리> 시인회 오홍심 선생에게 문안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곧장 숙소로 달려왔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지난날의 회포를 푸는데 그때 평양에서 만난 시인 가운데 대부분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이제는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밖에 다른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이즈음에 와서는 조총련과 민단이 이전과 같은 반목 대립을 벌이는 일이 없다는 얘기가 가장 반가웠다. 언젠가 한 일본인이 쓴 칼럼의 한 구절이 내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너희 조선인들은 왜 남의 나라에서까지 와서 남북으로 갈라져 각목을 들고 서로 코피 터지게 싸우느냐? 그러면서 무슨 통일을 얘기하고 있나!"

나는 이제 고인이 된 <종소리> 전 대표 정화수 선생의 유시를 읊조리면서 도쿄만 숙소에서 눈을 감았다.
 
일본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청자
 일본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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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저고리
                   정화수

청자, 백자인가 일본거리에
색깔도 연한 치마저고리들
비둘기처럼 나란히 속삭이며 다니네

서리 같은 칼날들이 노리건만
의젓한 그 모습
조선의 딸들이 틀림없구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제는
바꾸어 입으라고 말리는 데도
갈기갈기 찢길지언정
민족의 넋 벗을 수 없다는 게지

우리 학교 다니면서 움트고 자란
그 넋을 지켜온 귀염둥이들
날개처럼 입고 다닌 교복이 아니냐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게지
백옥 같은 치마저고리
먹물을 덮어쓰고
통바지에 몸이 매여 끌려온 수난

다치지도 말아다오
잊지도 말아다오
오늘의 괴한들이 누구의 후예인가를
무엇 때문에 칼부림하는가를

살벌을 늠름히 헤치고 다니는
조선의 딸들아 기특도 하구나
나는 길을 멈춰
뜨거운 눈길을 한참 보낸다 

덧붙이는 글 | *박도 지음, 사계절출판사 펴냄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막 출시되었습니다.


태그:#유텐지,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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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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