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제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자체 243곳과 공공기관 307곳을 대상으로 언론사와 민간단체의 상을 받기 위해 지출한 예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한 전수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 5년 간 지자체 243곳 중 121곳, 공공기관 306곳 중 91곳이 언론사와 민간단체로부터 총 1145건의 상을 받았다. 그리고 광고비, 홍보비 명목으로 약 93억 원을 집행했다.

국내의 주요 언론사들은 해마다 10~30개 가까운 시상식을 주최하여 공공기관, 지자체, 민간기업, 정·재계 인사들에 상을 주고 있었다. 언론사가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시상식을 주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4일 방송된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 1부 '영업과 거래 사이...언론사-지자체 상(賞) 거래'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언론사 주최 시상식 실태와 독자를 속이는 기사형 광고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언론사들은 왜 상을 팔고 기사를 거래하는 것일까?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이날 방송은 언론사가 주최한 시상식의 상을 받기 위해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세금을 지출하는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등 7개 주요 언론사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약 64억 원을 받고 648개의 상을 수여했다. 조성훈 경실련 간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언론사가 주최한 상을 받을 때 적게는 건당 400만 원, 많게는 2750만 원까지 냈다. 가장 규모가 큰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의 경우 지자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매년 3억 원이 넘는 이익을 거뒀다. (정보공개청구의 대상이 아닌) 민간 기업들까지 포함하면 금액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국가브랜드 대상, 국가대표브랜드 대상 등 언론사들이 주는 상은 공통으로 국가브랜드를 발굴하고 발전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밝힌다. 그러나 현실은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언론사는 수익을 목표로 상을 신설하고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 기업, 정·재계 인사는 필요에 따라 이를 구매한다.

방송에 따르면 언론사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상을 받게 되었으니 홍보비, 협찬비, 심사비 등 명목으로 돈을 먼저 입금하라는 공문을 발송한다. 지난 6월 동아일보가 경북 경주시에 보낸 공문에는 "'2019 한국의 혁신대상' 최종심의결과 지자체 '규제개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라고 돼 있다. 공문엔 필수 제출 자료로 홍보비 600만 원과 계좌번호, 입금 기한이 적혀 있다.

지난 3월 경북 경주시가 조선일보로부터 받은 공문도 내용은 비슷하다. '2019 소비자추천 1위 브랜드'에서 '도시비전슬로건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었으니 홍보비로 800만 원을 기한 내에 입금하라고 적었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돈을 받은 언론사는 기사를 쓰기 위한 홍보 자료를 요구하고 마감 날짜까지 정해준다. 수상 이후엔 약속대로 기사가 나간다. 홍보비를 내고 언론사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경주시청의 관계자도 기사를 통한 '홍보 효과'를 강조한다.

"신문에 광고하려면 적어도 몇 천만 원은 쉽게 넘어간다. (이 정도 예산을 집행해서) 수상을 하여 전국적인 매체에 실리면 지역 브랜드에 굉장한 홍보 효과를 준다. 시의 중장기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공공기관 가운데 수상에 가장 많은 예산을 지출한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2014년부터 2019년 8월까지 4억 1천만 원을 썼다. 지자체 중에 상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세금을 들인 곳은 전북 고창군이다. 조사 기간 27개상을 타면서 3억 3천만 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고창군청 관계자 역시 '홍보 효과'를 꼽았다.

"수상한 것으로 홍보를 해서 농가들에 알린다. 또, 농가들이 마케팅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언론사의 상 장사는 오래된 관행이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언론사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사는 시상식을 주관하여 홍보비, 협찬비, 심사비를 핑계 삼아 엄청난 수입을 챙긴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수상을 통해 치적을 쌓는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민을 위한 홍보란 이유를 대지만, 정작 상패를 들고 수상하는 이는 시장 혹은 군수다. 보도자료에도 이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민을 보긴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CEO 대상',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대상', '대한민국 경제 리더 대상',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CEO 대상' 등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에도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예산이 사용되었다. 개인의 이력 한 줄을 늘려주기 위해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돈으로 산 수상은 지자체장과 공공기관장 등 개인을 선전하는 수단이나 선거공보물에 활용된다. 2018년에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재선 이상 지자체장 당선자 79명 가운데 49명이 본인의 선거공보물에 언론사나 민간단체가 준 상을 받은 사실을 적었다. 시상식을 돈벌이와 홍보 수단으로 삼는 기형적 구조를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는 '공생 관계'라고 비판한다.

"광고비가 떨어지면서 언론사들의 수익 구조가 안 좋아졌다. 이걸 뚫고 나가는 좋은 방법이 상이나 대회를 개최하여 협찬이나 후원 수익을 얻는 것이다. 언론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홍보력과 공신력을 이용해 부족한 수익을 채운다. 지자체는 상을 받아 홍보하고 공신력이란 후광을 더한다. 지역민들에게 중앙일간지에 기사가 나왔다는 효과도 얻는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언론사와 지자체, 공공기관 사이에서 이를 조율하는 역할은 보통 출입 기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이 기사를 매개체로 영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출입처와의 관계에서 기자가 가지는 존재감은 상당하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입장에선 언론사와의 관계 유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언론의 감시자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도리어 밀월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상 거래를 조율하는 업무는 기자들의 실적으로 매겨지기 때문에 기자가 느끼는 부담감도 엄청나다. 중앙일간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기자는 "(영업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기자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업무를 견디지 못해 다른 부서로 옮긴 기자가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경실련은 국민권익위원회에 해당 관행 전수조사에 나설 것,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정보공개에 불성실하게 응한 것에 대한 조사, 개인 수상에 지자체와 공공 기관 예산을 사용한 것에 대한 시정 조치, 다수의 정부 부처가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행사 후원에 참여한 것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 거래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상을 팔고 상을 사는 이상한 관행은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언론사의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언론개혁'은 시작된다.
저널리즘 토크쇼 J KBS 경실련 언론사 시상식 상 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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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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