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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를 냈다. 시인이 시집을 내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일도 아니다. 지난해 봄 청소년시집 <나는 고딩아빠다> 출간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집을 다시 냈으니 이전의 속도보다는 빠른 편이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덕재 시인의 네번째 시집
▲ 정덕재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표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덕재 시인의 네번째 시집
ⓒ 정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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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내면 독자의 반응이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시집의 경우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발문을 소재의 당사자인 아들이 썼다는 점에서 아주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집을 내기까지는 작가의 몫이지만 이후는 독자의 몫이다. 작품의 평가는 둘째치고 문장의 오류라도 지적받는다면 무척 부끄럽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것은 한 독자가 발견한 오타였다. 페북 친구로 잘 알고 지내던 한 분이 지적한 것은 필자가 의도하지 않은 비표준어였다.

독자가 찾아낸 표기 오류는 2쇄를 발간할 때 수정했지만 시를 쓴 당사자나 편집자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었다. 두 번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 이번 시집을 발간 하기까지 수차례 반복하면서 검토를 했다. 물론 출판사 편집자도 꼼꼼한 교정을 봤지만 이번에도 한 군데 잘못된 표기가 나왔다. 이번의 오류는 전적으로 작가 책임이다. 조사의 쓰임을 잘못한 오기이다.

꼼꼼한 독자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독자는 문제의 페이지를 핸드폰으로 찍어 전송해주었다. 이 분은 교정할 곳에 대한 인증샷과 함께 주변에 나누어줄 책 세 권을 추가로 주문했다는 답장도 함께 전해주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작가들이 책을 펴내면 대개는 평소에 책을 받았던 작가들에게 발송을 하거나 지인에게 나눠주곤 한다. 나는 이번에 대략 100여 권 남짓 발송했다. 물론 아예 발송을 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지만 오고 가는 상호부조같은 심정으로 책을 나눈다.

책을 받으면 제목에 대해 묻는 이가 많다. 이 책은 발간하기 전에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이벤트를 했다. '간밤에 나는 ○○이었는지 모른다'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야 할 낱말을 맞추라는 퀴즈 형식이었다. 댓글로 달린 답은 다양했다. 짐승, 시인, 좀비, 늑대 등등 페친들의 상상이 재미있었다.

시집을 발간하면 대개는 출판기념회를 한다. 나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개인 출판기념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책을 내는 게 대놓고 기념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들고, 수많은 기념회에 내 책까지 들이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넘어가지는 않는다. 지인들 서넛 둘러앉아 술자리를 갖는 정도이다. 그야말로 시집을 내는 게 술 핑계를 댈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아빠, 오늘 일찍 들어와?"
"왜?"
"그래도 나무 몇 그루 베어 냈을텐데 참회의 잔이라도 들어야지."


아들은 책을 펴낸 것을 두고 나무를 베어낸 일이라고 말한다.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단순하지만 적절한 표현이기는 하다. 그만큼 의미있는 책을 펴냈는지 자문해 보라는 뜻일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여러 잔 마셨고 스물 두 살 아들은 맥주를 여러 캔 마셨다.

나는 이번 시집을 펴내면서 시가 옷걸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함부로 구겨지는 세탁소 옷걸이의 운명 혹은 슬픔일지라도. 매달린 삶은 늘 위태롭기에" 누군가는 그 삶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모두의 삶은 소중하기에 누구에게나 매달릴 수 있는 옷걸이는 필요하다. 다만 악인의 옷걸이가 선인의 그것보다 더욱 단단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현실에서 시가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자문자답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던져야 할 질문임에는 분명하다.
 
오지 않는 그대와
기다리는 나 사이에
똠방똠방 떨어지는
한두 방울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의 핸드백과
내 주머니에
휴대용 계면활성제를 가지고 다닐 일이다
사랑은 늘 화학적이라서.
- 시 <계면활성제> 중에서 일부
 
처음에 내가 제안한 시집의 제목은 위의 시에 나와 있는 구절을 인용한 '고립의 시대에 사랑은 화학적이라서'였다. 출판사와 논의 끝에 제목은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로 바뀌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시집의 치명적 오타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2쇄에 들어가야 할텐데, 나는 무모하게 (?) 2쇄의 책무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정덕재 (지은이), 걷는사람(2019)


태그:#악인, #걷는사람, #시인, #걷는사람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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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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