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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중 하나입니다.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다는 건 '행복'이지요.
 사군자 중 하나입니다.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다는 건 "행복"이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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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위치에서 세상을 본다는 건 '특권'이자 '행복'입니다. 왜 그럴까? 삶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배운 것들을 오롯이 천하에 다시 돌려줌으로써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맞서 싸워, 꿋꿋이 이겨낼 수 있는 도전 정신, 즉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느냐 하는 점이지요.

"경비일지, 이제 그만 쓰지."

어느 날 지인을 만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데요. 주위에서 다들 쉬쉬하고 있었을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그에게 물었지요. 왜 그렇게 생각 하냐?라고.

"경비란 걸 굳이 밝히면서 글 쓸 필요가 있나 해서. 경비가 무슨 자랑도 아니고. 약점을 감추려는 게 인지상정인데, 먼저 경비란 걸 밝히고 글 쓰는 게 옳나 싶어서. 대단하다 대단해."

실은 <경비일지>란 꼬리뼈를 달고 연재를 시작하기까지 살짝 고민이 있었지요. 고민은 단지, '삶의 진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와 '세상 허물을 올곧게 전달해 그것을 고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정당한 방법으로 일해, 올바른 대가를 받으면서, 떳떳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게다가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 속 분별일 뿐이지요. 이 분별에서 놓여나는 게 진정한 자유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경비일지>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본 세상을 솔직하게 전달하려는 방편이지요. 하여튼, 지인에게 다른 궁금증이 더 있었나 봅니다.

- 남편, 아버지가 경비라는 거 창피해 할 거 같기도 한데, 가족들은 아무 말 없어?
"별 말 없는데. 이게 반발할 일이에요?"

그 뒤, 가족 반응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쉼 없이 일 해온 아내는, 어떤 일이든 간에 남편이 일하는 자체를 고마워했습니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꾸준히 벌어다 주는 남편이 필요했던 게지요. 암튼, 아내의 생각 엿보기를 시도했습니다.

- 내가 경비라는 거 부끄러워?
"내가 부끄러울 건 없지. 그건 당신 몫이잖아."

- 내가 앞으로도 경비일 계속 할 거 같아?
"아니. 당신이 평생 해야 할 일들 중 하나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는 건,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고, 앞으로 치고 올라갈 상황만 남았다"는 식의 자기 위안·소아적 생각은 금물입니다. 자연은 항상 음(-)과 양(+)이 맞물려 가는 부침의 이치를 체득해야 천지 만물을 올곧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태공이 낚시로 소일하며 때를 기다렸고, 천명에 따라 재상에 올라 한 나라를 움직였듯, 모든 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외부조건에서 오지 않습니다. 모든 건 자기에게 있습니다.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게 '특권'과 '행복'임을 주장할 근거는 넘쳐 납니다. 그 중 세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낮은 자리가 '특권'이요, '행복'인 이유 세 가지

첫째,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까닭에 깨끗한 물부터 더럽고 혼탁한 물까지 물이란 물은 모두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하여 모인 물을 다시 정화하고, 더 나아가 대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역동성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보면, 자신을 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아량'과 '관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둘째, 무덤덤하고 자유롭습니다. 경비라는 낮은 일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위치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잴 필요도, 뻐길 이유도 없습니다. '겸손'해지지요. 상대방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던 간에 평등하게 인사하고 맞이하면 그만입니다.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섬기기면 되지요. 이로부터 얻은 게 세상 '편견'과 '굴레'로부터 벗어난 '자유'입니다.

셋째, 자신을 '알아차림'으로써 삶에 맞설 '힘'이 생깁니다. 밑바닥에서 본 삶에 대한 애증은 생명 본연의 끈끈하고 무한한 가치를 펼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게 좋은 것을 남에게 시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비로소 알게 되지요. 이 지점에서 진정한 인생 공부가 시작됩니다.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자유와 행복은 어떤 위치 혹은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모든 건 나에게 있더군요. 자기 본래 마음에. 다만 아둔한 인간들이 그걸 모르고 무지와 아집에 싸여 자신만이 제일이라 외치는 세상입니다. 삶을 즐기면 그게 바로 진정한 '특권'이요, '행복'이자, '자유'지요.

태그:#삶의 지혜, #행복, #자유,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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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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