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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판매한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로 큰 피해를 입고 부당함을 호소해온 일부 중소·중견기업들이 11년 만에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

금융감독당국은 신한은행 등이 손실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 등을 인정하고, 4곳 기업 피해금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13일 금융감독원은 키코 사건과 관련한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결정 내용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금융판 세월호'라 할 만한 대형 금융사건인 키코 사태는 지난 2007년 말 은행들의 권유로 키코 상품에 가입했던 수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파산한 사건이다. 키코는 원-달러 환율이 일정 구간 내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1500원으로 폭등하면서 계약한 돈의 2~5배를 물어주게 된 기업들이 줄도산했고, 이후 현재까지 기업들은 상품의 설계·판매과정의 사기성을 주장해왔다.

정성웅 금감원 부원장보는 "201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은행들이 피해기업들에 대해 배상했지만 아쉽게도 당시 (대출 중지 등 우려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기업들의 구제에는 미흡했다"며 "금감원도 소비자 피해구제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피해기업과 은행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키코 사건은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었다"며 "지금이라도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야말로 신뢰가 근본인 금융산업이 오래된 빚을 갚고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한 150억원, 우리 42억원 등 배상 결정
 
ⓒ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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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정과 관련해 분조위는 대법원 판례 가운데 키코 판매 과정의 불완전판매 책임에 대해서만 심의했다. 당시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키코 계약 자체의 불공정성과 사기성 여부는 이번 조정에서 검토하지 않았다.

분조위는 판매 은행들이 예상 외화유입금액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위험회피)를 권유·체결하면서 적합성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또 환율이 오를수록 기업이 무제한 손실을 볼 수도 있음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설명의무를 위반한 점도 인정됐다.

이에 대한 기본 배상비율은 30%로 적용됐다. 분조위는 개별 계약의 사정을 고려해 비율을 가감조정을 한 뒤 최종 배상비율을 정했다. 기업의 주거래은행이어서 외환 유입규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경우 등에는 배상율을 높이고, 기업의 규모가 크거나 파생상품 거래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낮추는 식으로 조정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4곳 기업에 대한 배상비율은 15~41%로 결정됐다. A기업의 경우 손실액의 41%인 42억 원, B기업은 20%인 7억 원, C기업은 15%인 66억 원, D기업은 15%인 141억 원으로 적용됐다.

이와 관련해 신한은행은 150억 원, 우리은행은 42억 원, 산업·KEB하나은행은 각각 28억 원과 18억 원, 대구·씨티은행은 11억 원과 6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조정 결과가 나왔다.

해당 은행과 피해기업이 20일 이내에 이 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이는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된다.

"키코는 명백한 사기... 검찰 수사 나서야"
 
13일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13일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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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이번 조정이 성립되면 은행 쪽과 협의해 나머지 피해기업 가운데 배상 대상이 되는 기업의 범위를 확정하고 자율조정을 유도할 계획이다. 김상대 금감원 분쟁조정2국장은 "전체 대상 기업은 739곳인데 실제 손해배상 대상이 되는 기업은 그 중 일부가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부분은 이번 조정안이 수용된 뒤 은행과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기업들은 앞으로 키코 계약의 사기성이 입증될 수 있도록 검찰에서도 적극 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사고를 치며 질주하는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달아준 것과 같다"며 "진정으로 금융선진화를 이루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들은 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죄에 걸릴 수 있다는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책임도 상당하다"며 "공대위가 제소한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검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조 위원장은 "우리는 키코가 명백한 사기라고 생각한다, 수사가 이뤄져야 은행들도 본인들의 죄를 반성하게 될 것"이라며 "또 이번 배상금이 (은행 등) 채권단 손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에서 세심하게 배려해달라"고 덧붙였다.

태그:#키코, #금융감독원, #금감원, #키코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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