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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이 '만화책'이 페미니즘 교과서로 채택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 '만화책'으로 기초, 기본수업하고,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은 요즘 페미니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교재가 부족할 걱정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서 책을 따로 인용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책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를 잘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작가 두 사람은 나와 같은 세대-몇 살 적다-를 살아온 사람이어서 내가 페미니즘을 배운 경로와 경험이 두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봐도 좋겠다.

작가 부부는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진보적 삶을 살고 있었고, 한국사회에서는 0.1%에 속하는 부자, 아니 '평등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대학에서 '운동권'이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보, 합리, 이성의 태도를 갖춘 청년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고도 이런 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남성인 이은홍은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진보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지만, 알고보니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사회의 관습에 길들여져 기득권의 공기를 숨쉬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평등은 개뿔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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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원, 이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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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80년대 중반-군대에서 전역하고-부터 선배들과 함께 사회과학 공부를 했다. 그때 정치경제학, 유물론철학, 민중사학 등을 깊게 배웠지만 '페미니즘'은 따로 공부하지 못했다. 지금도 소위 '386 운동권 세대'가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투쟁했지만, 정작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가부장, 남성우월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내 선배들도 그랬다. 그들은 누구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었고, '언드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그래서 경찰의 수배를 당해 하루가 멀다하고 도망다니던 투사들이었지만, 그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매몰된 사람들인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들도 이론적으로는 남녀평등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체화하지 못했다. 일상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론이나 주장은 오히려 독이 된다. 

80년대에는 '페미니즘'을 배우고 싶어도 마땅한 교재도 부족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책이 바로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이었다. 이 책은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지만, 아마 읽지 않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고, 여력이 없던 때였으니, '여성론'을 읽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여성론'을 읽고 페미니즘의 기초를 배웠으며, 이후 페미니즘 이론을 스스로 공부했다.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성이론'이나 '여성학'이라고도 했는데, 어떤 이름이든 남녀평등에 관한 저서나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 같은 책도 번역되어 나오고 있었다.

남성으로서 페미니즘 이론을 배우는 것이 '진보적 태도'라고 한다면, 나는 이론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체득했다. 내게는 누나가 있는데, 처음에는 한 명이었다가 내가 결혼하고 나서 누나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우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내게는 세 명의 배다른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있는데, 부모가 살아계시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을 돌보고, 살 수 있도록 온갖 힘을 쓴 건 누나였다.

큰 누나는 나와 13년 차이가 나는데, 실질적으로 '엄마' 노릇을 했다. 나는 자라면서 늘 엄마와 누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고, 남자로, 장남으로 아쉬움 없이 생활했다. 우리집은 매우 가난했음에도, 나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밥하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온갖 시시콜콜한 집안 일에서 해방된 상태로 지낸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큰 특혜였는지 전혀 몰랐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어머니가 모든 집안일을 했고, 어머니는 내가 50살이 될 때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결혼을 하고도 집안일은 어머니 차지였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직장을 다녔고, 지금도 다닌다. 반면 나는 결혼 전부터 프리랜서였고, 결혼하고 나서 직장에 취직했다가, 그마져도 몇 년 지나서 다시 백수가 되어 집안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 역시 무려 50년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며, 온갖 혜택만 받고, 살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서툴렀다. 게다가 내 의식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문제 일반에 관해서는 비교적 평등하고 진보적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생활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성우월주의자, 가부장사회의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나를 이해해주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아내가, 집안일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일은 내가 맡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다. 내가 지금도 늘 마음에서 누나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것은, 누나들이 동생인 내게 베푼 것에 아무런 보답을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누나들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존재로 인해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이중, 삼중의 억압과 불평등, 착취를 당하며 살았다. 내 아내도 여성이면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는 어머니, 누나, 아내의 삶을 보면서, 세상을 실제로 이끌어 가는 것은 여성인데, 여성이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불평등한 위치에 있으며, 남성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야 하는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을 성(sex) 대결로 몰고가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 학교교육이 근본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교육이라면, 어릴 때부터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으로서의 '젠더'를 구분해서 가르쳐야 하고, 성과 제더에 관한 어떠한 편견과 차별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 현상-여성혐오-을 좀 더 본질에서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회구성원을 분리하고, 경쟁과 대립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가족제도를 해체하고, 여성의 사회참여-이 문제는 여성의 삶에 있어 장단점이 다 있다-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사회화하면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값싼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며,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로 이어지는 해체의 과정은, 노동자의 개별화, 파편화를 통해 결집하지 못하도록 하고, 실업예비군(실업자)을 유지하면서 노동자 서로가 경쟁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남녀의 성(sex) 대결이 아니라, 남녀가 평등함을 지향하고, 서로 연대하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남녀의 문제보다 더 절박한 계급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이 여성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이라는 점에서, 노동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을 부르짖는 계급운동과 본질에서 같다.

다만 (노동자)여성은, 같은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남성에게 차별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은 노동계급 내부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계급의 단결을 목표로 할 때, 페미니즘은 남녀평등과 계급평등을 함께 달성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띄게 된다.

여전히,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는 '페미니즘'에 관한 전선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무지개보다 더 다양해서, 최초 페미니즘이 백인여성의 인권을 향상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처럼, 여성 내부에서도 계급, 인종, 민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남녀평등은 물론 인종, 민족의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착취-자본가의 착취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착취든- 없는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거대한 적인 '자본(가)'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남성은 사회구조의 기득권자로 분류되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남성도 자신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여성은 남성이라는 기득권세력과도 맞서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착취구조인 자본의 억압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의 고난을 겪고 있다. 많은 남성이 여성의 동지로 함께 싸우고 있지만, 강력한 체제권력(자본)을 움직이는 세력은 여전히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의 수호를 위해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있으며, 현실을 호도하고, 일부 남성을 끌어들여 여성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봉건시대에는 '유교'라는 지배논리를 통해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옹호, 유지해 왔으며, 자본시대에는 형식적으로 남녀평등을 말하면서도 제도와 의식은 여전히 봉건제에 머물러 있는 남성들로 인해 여성은 현대 민주주의체제에 살면서도 실질적 삶은 봉건제적 억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만화는 한국 현실에 맞는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적어도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나라에 사는 부부들과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덜 '개인주의적'이며, 덜 '민주주의적'이고, 집단주의와 유교의 찌꺼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 남성까지도 자유롭지 못하게 옭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부부, 남녀의 평등을 가로 막는 체제의 힘은 곧 남성지배권력과 '자본'의 결합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곧바로 거대한 남성지배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 것이다.

평등은 개뿔

신혜원, 이은홍 (지은이), 사계절(2019)


태그:#페미니즘, #그래픽노블, #여성해방, #남녀평등, #계급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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