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5 15:26최종 업데이트 19.12.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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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9일 오후 당선 직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극도로 혼동스러운 시기에 5월 대선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출발했다. 촛불 정부로 한참 인기가 높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성공하기를 기원했던 것 같다. 이제 딱 절반을 돌아서 후반기로 넘어가는데, 중도층의 상당 부분은 이미 돌아섰다. 20대 청년층도 더 이상 지난 촛불집회 시기처럼 우호적이지 않다.

앞선 정권들은 예외 없이 반환점을 돌 때쯤이면 내리막을 걸었고, 마지막 해에는 극도의 레임덕에 시달렸다. 하던 대로, 관성대로 하면 문재인 정부도 이런 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연 지금 시점에서 액셀을 밟고 떨어진 속도를 올려서 다시 피치를 낼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전반기를 경제의 눈으로 돌아보면 여러 가지가 아쉽지만, 그 중에 제일 아쉬운 것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과도 안 좋았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도 좋지 않았다. '핀셋' 대책을 쓴다면서 별 효과도 없을 대책을 대대적으로 포장했었다. 이제는 손을 쓰기에는 서울 지역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은 너무 높은 곳으로 가버렸다.
 
실물 경제도 좋지 않다. 트럼프발 무역분쟁 등 해외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타고 넘어가려는 선제적인 노력도 거의 없었고, 신규 기술투자라고 해봐야 백화점 식에 실행 여부가 단기적으로 불투명한 수소차 같은 데에 너무 많은 힘을 걸었다. 평화 경제라는 말에 많은 것을 걸었지만 결국은 북한의 반발만 샀고,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의미가 좋다고 해서 단기 성과마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가뜩이나 정책 동력이 떨어진 상태로 집권 후반기를 맞게 되었다. 나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여주던 전반기의 이낙연 총리는 물러나고, 새로운 총리가 청문회를 맞게 되었다. 주52시간 노동 등 기존의 개혁은 지지부진하거나 후퇴하는 중이고, 새롭게 의제로 올라온 개혁과제는 신통치 않거나 별 거 없다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도 2년 반이나 남은 임기를 그냥 버티거나 때우면서 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때우면서 시간을 보냈다가는 정말로 다음 대선이 어려워진다. 경제적 이유로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다.

반환점 돈 촛불정부, 돌아선 중도층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전반기 경제에서 가장 아쉬운 점 두 가지를 짚어보고 싶다. 우선은 경제 정책을 비롯한 많은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너무 없었다는 점이다. 민주당 정부인데, 정책의 민주주의는 아직은 거리가 좀 멀어 보인다. 청와대 일각이든 아니면 정부 고위직이든, 자기들끼리 쑥닥거리면서 밀실행정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표하는 게 여전히 정책 라인이 일하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불안하면 살짝 언론에 흘려보고, 그야말로 '간 보듯이' 사람들 눈치를 살폈다. 이건 행정적 절차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의 밀실행정처럼 정책 라인이 움직이는 것은 문재인 정부 답지 않다.
 
토론회를 비롯한 각종 공론화 과정이 귀찮기는 해도 시행 이후의 부작용을 많이 줄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당장 WTO의 농업 개도국 지위 포기 과정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시간이 많았어도 그냥 숨기고 회피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형식적인 공청회 한 번 하면서 "했다", 그런 건 군사정권 시절에나 하던 일 아닌가.

당사자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하는 정책 라인의 소극적 태도, 그건 1인당 3만 달러를 넘어선 한국의 행정 절차에 어울리지 않는다. 싫고 귀찮아도 당사자들이 지친다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토론하는 게 정책의 민주주의다. 그런 건 싹 생략하고 우리의 '진정성'을 믿어달라,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공중파 등 언론에서도 좀더 심도 깊고 다면적인 경제 분석 등 정책 얘기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사람들이 뉴스의 일각에서 보는 경제 얘기는 너무 단편적이고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시작되는 최초와 과정에 대해서 사람들이 살펴보기가 지금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요즘 용어대로 하면 '적폐청산'은 지나간 일의 반성에 관한 것인데, 그에 비하면 정책 대안에 대한 얘기는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다.

지나간 정권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런 미래에 대한 얘기가 너무 없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정부의 '결정'과 그에 따른 단기적 '결과'밖에 없다. TV를 비롯한 언론에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고, 다양한 대안의 가능성에 관한 고민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선진국 경제는 "이게 맞다", 그렇게 단답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익을 본다. 그리고 지금 테이블에 올려져 있지 않은 많은 대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3의 길 같은 것을 찾을 수가 있다. 정치 지평이 여야로 갈린 것처럼 언론도 싹 갈려서 "맞다"와 "틀리다", 두 가지 얘기밖에 없는 언론 환경이다.

다양한 가능성과 가보지 않은 길을 타진하는 것, 그게 선진국 언론의 또 다른 기능 아니겠는가? 싸우는 과정만 보여주고, 얘가 맞을 것 같아 아니 쟤가 맞을 것 같아, 그건 경제 방송이 아니라 그냥 '싸움 중계'에 불과하다. 정권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공영방송도 지난 몇 년을 좀 뒤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토론을 하면 법은 자연히 따라온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부동산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지난 수년간 정부가 하는 얘기는 "우리는 잡을 수 있다", 이 얘기 하나밖에 없다. 언론의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된다. "집 살까요, 말까요?" 따져보면 정부든 언론이든 잡는다, 못 잡는다, 사야 된다, 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얘기 말고는 한 게 없다.

여러 나라가 각각의 문제로 부동산 버블에 대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아파트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택지 조성부터 하는 박정희식 '분양제'와 이에 연동된 청약 저축으로부터 나온다. 한때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제도인데, 일본도 부작용이 심해서 없앤지 오래된 제도다. 우리만 지금 분양제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로 한국의 자가주택보급률은 53~56% 사이에서 변한 적이 없다. 마치 자연율과 마찬가지이고, 집을 많이 공급하든 덜 공급하든, 임대주택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이 비율은 유신경제 이후로 변한 적이 없다.

보유세와 거래세의 장기적 비율과 함께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같은 문제부터 좀 더 근본적으로 분양제에 대한 접근까지, 문재인 정부라면 이 정도는 검토하면서 종합 대책과 장기적 플랜 같은 것을 잡아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 실제로는 제도 검토와 대안 제시는 하나도 없고 '두더쥐 잡기 게임'만 임기 전반기 내내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법률을 실제로 바꾸고 안 바꾸고 이게 정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전히 개도국 시절의 의회주의에 갇힌 생각이다. 21세기의 제도는 법보다 많은 시민들의 폭넓은 합의와 이해 같은 것이 우선이다. 토론과 대안 제시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형성되면 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대표적인 게 학교 급식이다. 그게 법으로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상식으로 한 것이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끌고가는 것도 권위주의적 시각이다. 많은 토론을 해서 사람들의 상식이 형성되면 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인데

문재인 정부 후반기, 조급하게 성과를 내고 엄청난 결과를 위해서 매진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좀더 근본적으로, 부동산을 비롯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더 깊이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장기적인 방향에 많은 시민들의 의견이 수렴해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이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성과물이기를 바란다. 그게 선진국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법률에 있고 행정절차와 내규에 있는 게 아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방법이야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모아나가는 정책적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이 정부 하반기의 결과물이기를 기대한다.

그건 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이 그냥 그렇게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수많은 위원회들이 좀더 시민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경청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시민사회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정책 민주주의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대한 조급증을 잠시 내려놓고, 충분히 많은 대안들을 다층적으로 같이 토론하는 절차들을 정착시키는 것, 그게 문재인 정부다운 정책 민주주의의 성과물이다. 정부 내부 문건이나 공기업 내부 문건에서 VIP라는 단어가 자꾸 나오고, BH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위의 눈치를 보는 것, 결국 그게 군사주의식 밀실행정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는 현 정부도 바뀐 게 거의 없다.

정책의 민주주의, 정책 한 건 한 건의 성과보다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넓고 개방적으로 운영하는 것, 그게 후반기 정부의 성과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건 경제의 외부 조건이 안 좋아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절반을 넘는 고공행진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다음 정권에 넘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밀실행정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몇 년 후에 우리가 회상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정부가 되기를 여전히 기대한다.
 
청와대 경제관료들과 고위직 경제관료들, 도대체 왜 군사정권 시절처럼 구중궁궐 데스크에서 정책을 하려고 하는가? 타운홀로 나오고, 시민들 사이로 나서고, 먼 미래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일을 왜 문재인 정부에서 못하는가?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더라도 과정에 대한 논의마저 생략하는 것, 촛불 정권에 어울리지 않는 폐쇄적 행정 아닌가? 집권 하반기에는 다른 과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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