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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회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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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 중에 홍어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도 드물다. 알싸한 그 맛에 '엄지척'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사람이 있다. 맛은 주관적이다. 맛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느낌이 다르다'일 뿐이다.

홍어도 출신지가 있다. 국내산 중에도 흑산도산이 있는가 하면 대청도산이 있다. 수입산에도 칠레산이 있는가 하면, 알래스카산과 뉴질랜드산이 있다.

홍어에도 '급'이 있다. 체중 8kg 이상을 1번치, 그 이하는 8번치까지 내려간다. 1번치라도 맛이 다 같지 않다. 소고기는 암소고기가 맛이 있듯이 홍어도 암치가 더 맛있다. 하지만 암컷만이 15kg급까지 올라가고 수컷은 7kg 이하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만만한 게 홍어 X"이다.

홍어 수컷은 생식기가 2개다. 뱃전에 잡아 올린 홍어가 수컷이면 어부들은 가차 없이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버렸다. 값이 안 나가는 게 올라와서 '재수 없다'는 칼질인 셈이다. 하지만 때로는 횡재가 터질 때도 있다. 생식기 2개에 암치 2마리가 같이 올라올 때다. 일명 '변강쇠 홍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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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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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레시피도 많다. 회는 기본이고 무침과 탕이 있는가 하면, 찜도 있고 전도 있다. 홍어는 열을 가했을 때 암모니아가 최고점에 이른다. 그래서 예전에는 잔칫날에 맞추기 위해 열기왕성한 두엄에 묻어뒀다. 

홍어에겐 삭힘의 미학이 있다. 매운맛에도 매운맛, 순한맛이 있듯이 홍어도 잘 삭힌 홍어와 푹 삭힌 홍어 그리고 생물 홍어가 있다. 김치도 지나치게 익으면 쉬어버리듯 홍어도 너무 삭히면 부패한다. 썩은 음식을 먹고 역겹다고 말하기 전에 잘 삭힌 홍어를 맛보고 그 맛을 평가해야 한다. 그것도 어려우면 자기 입맛에 맞게 생물 홍어로 하향조정해야 한다.

홍어는 삭힘의 정수다. 우리나라 음식은 발효음식이 대종을 이룬다. 홍어도 삭힘에서 맛이 갈린다. 홍어의 본바닥 흑산에는 생물이 대세다. 집산지 영산포에는 삭힘의 대가들이 포진하고, 광주에는 삼합의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홍어 맛에는 왕도가 없다. "묵은지에 홍어를 얹고 그 위에 삶은 돼지고기를 얹은 삼합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희들은 생물 홍어의 찰진 맛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라며 생물을 예찬하는 사람도 있다. "야, 야, 말 말어라, 홍어는 뭐니뭐니해도 코설주가 내려앉을 만큼 팍 삭힌 홍어가 최고야"라는 '암모니아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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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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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에는 등위가 있다. 소고기와 참치에도 부위가 있듯이 홍어에도 등위가 있다. 첫째 코, 둘째 애, 셋째 익이다. 제일 맛있는 부위는 코다. 하지만 마니아급이 아니면 도전하기 벅차다. 두 번째가 애다. '애가 탄다'는 말이 있듯이 애는 간이다. 보리를 넣은 애탕도 일품이지만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녀석이 아닌 생물 애를 참기름 한방울 떨어트려 소금에 찍어먹는 맛은 마니아만 아는 맛이다. 세 번째가 날개다. 오돌뼈 씹히듯이 오돌거리는 그 맛.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맛이다.

홍어는 제철 음식이다. 냉장이 발달한 현대에는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홍어는 근본적으로 한로(寒露)에서 한식(寒食)까지 겨울 음식이다. 남지나해에서 성장한 홍어가 산란을 위해 북상하다 개흙이 발달한 수심 80m 흑산 앞바다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이때 주낙에 걸려 올라온 녀석이 흑산 홍어다. 사랑을 마친 그 녀석들이 용케 흑산 앞바다를 벗어나 대청도 근해에서 잡히면 서해안산이다. 인간도 사랑행위를 하면 에너지가 소모되듯이 사랑을 만끽한 대청도 홍어는 빛깔이 곱지 않고 식감도 푸석푸석하다.

홍어는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이다. 눈, 코, 입, 혀, 목 넘김.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탁배기 한 사발을 입속에 털어 넣고 삼합을 씹을 때, 입속에 퍼지는 그 향! 그 어우러짐!! 이 맛을 아는 미식가들이 늘어나 이제는 지역 기호식품에서 전국구로 변신했다.

서울에서 나름 홍어 전문점이라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렇지만 생물 흑산 홍어를 손님상에 내놓는 집은 극소수다. 연말을 맞아 지인들과 함께 생물 흑산 홍어를 맛봤다. 인절미처럼 찰진 그 맛. 잊을 수가 없다.

태그:#흑산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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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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