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 12:18최종 업데이트 20.01.06 12:18
  • 본문듣기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운전중 휴대폰 사용을 금하고 있다. ⓒ Intel Free Press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20개 주가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을 금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주에서 운전자가 휴대폰을 만지다 적발되면 꽤 큰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액수가 범칙금과 과태료를 합해 150불(약 17만 원)을 넘어선다. 이것도 단속에 처음 걸렸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부터는 금액이 30만 원 이상으로 뛰어오른다.

운전 중 전화사용을 왜 법으로 막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다수가 이유를 알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17년 사망사고의 14%가 운전 중 휴대폰 조작 때문에 발생했다. 전화기 사용이 교통사고를 유발할 확률이 음주 운전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하지만 자명한 사실도 시간의 안개 속에 서서히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사라진 후, 켜켜이 쌓인 과거의 먼지를 털어 사실을 캐내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는 생뚱맞은 '교훈'을 이끌어 낼 목적으로 역사를 동원하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때로는 무지 때문에, 때로는 계산된 동기에서.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이런 칼럼이 실린다면 어떨까?
 
"21세기 초까지 캘리포니아는 정보통신 산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아이폰'이라는 혁명적 기기가 탄생한 것은 물론, 트위터, 인스타그램, 스냅챗 같은 혁신적 모바일 서비스도 잇따라 선을 보였다. 하지만 운전 중 휴대폰을 써서는 안 된다는 '21세기 적기조례'가 혁신의 발목을 잡았고, 이런 시대착오적 규제로 인해 신산업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엉뚱하게도 150년도 더 된 영국 도로교통법이 한국에서 이런 수모를 겪고 있다. 1865년 제정된 '증기트랙터 운행법(Locomotive Act of 1865)'이 그 주인공이다. 이 법은 한국에서 '붉은 깃발법' 또는 '적기조례'라는 이름으로 기업인, 정치인, 교수, 언론인, 블로거, 트위터리안, 위키백과 편집자 등에게 연일 난타와 조롱을 당하고 있다.

이들이 침 튀기며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이 법은 '마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시대착오적 악법'으로, 자동차가 말보다 느리게 가야 한다고 규정한 '황당한 법'이다. 그러나 진정들 하시라. 당시에는 '자동차'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규제 대상이던 '증기트랙터'는 말의 속도보다 느렸다.

존재하지도 않은 자동차를 규제했다고?

생각해 보라. 칼 벤츠가 '최초의 자동차'로 불리는 '자동마차(Motorwagen)' 특허 출원을 한 시기가 1885년이었다. '붉은 깃발법'이 제정되고 20년이 지나서다. 최초의 자동차가 고안되기도 전에 '자동차 규제'를 시작했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될까?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코너에는 '붉은 깃발법'이라는 표제 아래 인상적인 삽화가 실려 있다.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터벅터벅 걷고 있고, 그 뒤에 컨버터블 승용차를 탄 기사와 승객이 열 받은 모습으로 머리에서 '증기'를 뿜고 있는 모습이다.
 

<동아일보>칼럼에 사용된 삽화. 19세기 중반에 제정된 법을 이야기하면서 20세기 자동차를 그려놓았다. ⓒ 동아일보


'시대착오'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그림 속의 자동차엔 20세기 초 포드가 생산한 '모델 에이(A)'와 '모델 엔(N)'이 뒤죽박죽 섞여 있기 때문이다. 반세기 가까운 시차를 간단히 뒤집는, (스스로 적절히 이름 붙인 대로) '횡설수설'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소품으로 테슬라 로드스터를 쓰는 격이다.

'붉은 깃발법'을 비난하는 글들에는 한결같이 20세기의 휘발유 차가 등장한다. 이렇듯 왜곡된 지식은 쉽게 퍼지지만, 한번 확산된 오류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문제의 증기트랙터(road locomotive)는 어떤 운송 장치였기에 정부가 나서서 운행규칙을 제시해야 했을까?

아래 사진을 보시라. 우리가 아는 '자동차'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 시민들이 이 운송 장치를 '연기 뿜는 악마(puffing devil)'라 부르며 혐오스러워 한 이유도 짐작이 갈 것이다.
 

'붉은 깃발법'의 대상이 된 것은 증기트랙터(road locomotive, traction engine)였다. 크고, 무겁고, 소음이 크고, 비효율적이어서 도시 교통수단으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사라졌다. ⓒ 공개자료


역사가 위 기계를 '자동차'로 부르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기차나 경운기를 '자동차'로 부르지 않는 이유와 같다. 영국정부가 '마부 일자리를 지키려고 붉은 깃발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증기트랙터는 말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1894년, 세계 최고의 증기기관 전문가였던 로버트 선스턴조차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말은 스스로 먹고, 스스로 통제하며, 스스로 길을 가고, 스스로 번식하는 데다가, 현존하는 어떤 운송장치보다 연료를 적게 먹는 경제성까지 지니고 있다."


당시 말의 유일한 경쟁상대는 기차였다. 증기트랙터는 증기열차를 도로에 적용하려는 야심찬 시도였으나, 크고, 느리고,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라는(엄청난 양의 물과 석탄 또는 장작을 싣고 다녀야 했다) 치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증기트랙터는 적은 연료로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휘발유차와 전기차에게 자리를 빼앗기고는, 도시 밖으로 밀려나 농업용 트랙터로 진화했다.

이 기계는 대형트럭의 몸집에 레미콘의 무게를 지녔으며, 증기기관차의 굉음과 공장 굴뚝의 연기를 뿜으며 돌아다니는 도로의 무법자였다. 그 때문에 영국 정부는 증기트랙터의 크기와 무게를 "폭 2.7미터, 무게 14톤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현대가 생산하는 국내 최대 체급의 덤프트럭 '엑시언트'의 폭이 2.5미터이고 중량이 11.5톤이다. 규제 이전에는 어떤 괴물들이 영국 시가지를 돌아다녔는지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붉은 깃발법'을 다룬 글과 그림들은 오류로 가득차 있다. 12년간 존속하다 사라진 법을 '30년간 유효했다'고 쓰거나,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자동차까지 등장시키기도 한다. ⓒ 강인규


증기트랙터는 육중한 무게로 (돌을 깔아 만든) 도로를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 말이 다니는 좁은 도로를 막고, 아무 때나 고압 증기를 내뿜어 말과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당황한 말은 승객과 행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뉴욕을 포함한 여러 주가 말 근처에서 경적을 울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게다가 증기 실린더가 폭발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2001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도 골동품 전시장에서 증기 트랙터 엔진이 폭발해 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증기 실린더 압력을 안전수치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시켰다.

증기트랙터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소리를 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S_CEoZLnwwI)
 

현대판 '붉은 깃발법'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대형트럭의 도심 주행을 제한하고, 고속도로에서 화물 자동차와 건설기계의 무게와 속도를 통제한다. 미국의 여러 주들은 대형 화물에 대한 추가 규제까지 두고 있다. 화물의 폭이 넓은 경우, 트럭 앞뒤에 두 대의 호송 차량을 동시에 운행해야 하는 규정이다.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노란색 표지판과 붉은 깃발(!)을 단 두 대의 차가 트럭을 호위하며 달리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에도 '붉은 깃발법'이 있다. 적재함보다 긴 짐(1.2미터)을 싣고 도로를 달릴 경우, 차 뒤로 삐져나온 화물 뒤에 붉은 기를 달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밤에는 깃발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위치에 붉은 등을 달아야 한다.

이 '붉은 깃발법'은 시대착오적 규제일까? 만일 이런 규제가 없다면, 철근이나 전봇대가 뒤따라오던 차량의 앞뒤 유리창을 꿰뚫는 사고가 빈번할 것이다. 사실 현대의 교통법규는 빅토리아 영국시대보다 더 까다롭다. 세계 여러 도시가 경적 사용 여부나 소음 크기까지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적은 증기트랙터가 뿜던 기차화통 소리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인데도 말이다.

현대인들은 자동차의 도입을 단순히 말을 자동차로 대체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말이 다니는 울퉁불퉁하고 좁은 도로대신) 고르고 넓은 도로가 있어야 하고, 신호체계와 교통법규가 마련돼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자동차 도입은 도시 전체를 재설계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재편하는 총체적 변화를 요구한다. '붉은 깃발법'에는 이를 위한 최초의 고민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영국을 포함한 유럽 대도시의 시내 교통수단은 단연 말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걸어 다녔고, ('놀이터'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시대이므로) 아이들은 도로에서 무리지어 뛰어놀았다. 운전면허, 차선, 신호등, 건널목 등이 탄생하기 전의 시절이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속도제한' 대상이 된 운송수단은 말이었다.
 

1885년 칼 벤츠가 특허를 출원한 자동차. '최초의 자동차'로 불리며, 삼륜에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 공개자료


'붉은 깃발법'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차를 말 뒤에 두었다'고 비웃지만, 말은 시속 5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있다. 19세기 후반 벤츠가 만든 가솔린차의 최고속도가 16킬로에 불과했고, 포드가 1903년에 자랑스레 공개한 '모델 에이'의 최대속력이 45킬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마차도 25킬로 이상의 속도를 거뜬히 낼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말의 전력질주(gallop)가 허용되지 않았다. 말이 걷는 속도가 시속 6~7 킬로미터이고, 보행자의 걷는 속도가 그 절반 정도 된다. 도시 인구 대다수가 이 속도로 이동하고 있고, 도로 폭이 좁아 추월할 공간을 내줄 수 없다면 대형 트랙터가 교통 흐름의 속도를 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시 내 시속 2마일(3.2 킬로), 도시 밖 시속 4마일(6.5킬로)' 규정은 이렇게 탄생했다. 도심지에서 말이나 행인과 마주칠 때, 기수가 앞에서 붉은 기를 들고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 규정은 1878년에 법 개정으로 사라졌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탄생하기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이후 자동차 기술이 발전하고 통행이 늘면서 영국 정부는 1896년에 법을 개정해 속도를 14마일(약 22킬로)로 높였다.

우리에겐 '붉은 깃발법'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토마스 파커가 만든 전기자동차. ⓒ 공개자료


'붉은 깃발법'이 혁신을 막아 영국 자동차 산업을 낙후시켰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산업혁명의 본산지를 일컬어 '혁신에서 밀렸다'라고 믿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당시 영국은 지금의 캘리포니아와 중국의 선전을 합쳐 놓은 '세계의 공장'이었으며, 혁신 그 자체였다.

애스턴 마틴, 롤스로이스, 벤틀리, 재규어, 모건, 랜드로버, 로터스…. 이 차들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영국은 1884년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발명한 나라다. '유럽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토마스 파커는 전기차뿐 아니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기 없는 연료 '콜라이트'까지 만들어냈다.

20세기에 '자동차 제국'으로 부상한 미국에는 영국 이상으로 까다로운 규제가 있었다. 예컨대, 일리노이주(이스트 세인트 루이스)는 1889년에 자동차는 물론 기차까지도 도시를 통과할 때는 속도를 시속 10마일(16킬로) 이내로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화물차나 화물기차의 속도 규제는 더 엄격해서, 시내에서는 6마일(약10킬로) 이하로 운행해야 했다.

내연기관이 급속히 발전하며 주행속도를 높여가던 20세기 초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코네티컷 주는 1901년에 시내 12마일(약19킬로), 교외 15마일(24킬로)로 속도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고, 많은 주와 시가 비슷한 속도규제를 도입했다. 미국 역시 1930년대까지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으며, 신호, 차선, 운전면허제도도 없던 상태에서 자동차가 시민의 안전을 크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혁신도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사람이 혁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영국내 제조업의 몰락을 다룬 <가디언> 기사. 70년대 대처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제조업 쇠퇴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 가디언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빠진 것은 맞지만, 그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왕조시대가 아니라, 1970년대 대처 정부에서 시작된 일이다. '경쟁력'을 외치며 공공영역과 기업의 인력단축에 나서면서 '강성'인 공장의 노동자부터 줄이기 시작한 것이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전체를 위축시킨 탓이다. 다시 말해, 영국 자동차 사업의 몰락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생계를 보호하던 규제를 허물면서 시작됐다.

타다와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사업을 부랴부랴 받아들이는 게 혁신이 아니다. 혁신의 목적은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만일 소수 집단의 이익이 크더라도 사회적 손실이 크다면 규제하는 게 옳다. 나는 타다가 지닌 근본적 문제를 비효율, 나쁜 일자리 확산, 불평등 심화의 측면에서 지적해 왔다. (이재웅 쏘가 대표가 말하는,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 http://omn.kr/1ji7s )

한국정부는 '규제혁신'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긴다. 정부의 역할은 변화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하면서 적절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혜택이 고루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 대해 '규제 철폐'가 최고의 대안이라면, 정부가 존속할 까닭이 없다.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 중심에 서 있던 19세기 영국 왕조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