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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친구 A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이는 이제 오십을 넘겼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이다. A는 긴 시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5년 전 어렵게 종지부를 찍었다.

A의 30, 40대는 그야말로 혹독했다. TV드라마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사연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제3자가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남편은 기본적으로 무책임했다.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건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혼 후에도 고단한 삶은 계속됐다. 경력단절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들어간 곳이 한 기관의 콜센터였다. 4대 보험이 되고 대출이 가능하다면서 그것만으로도 한숨 돌린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A는 150만 원 정도의 월급만으로는 딸과 친정 엄마와 함께 생활하기가 빠듯해서 퇴근 후에는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뛰었고, 그렇게 딸을 대학에 보냈다.

A의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랬던 A가 다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이상하다, 이 기분 뭐지  
 
 A의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랬던 A가 다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A의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랬던 A가 다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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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연결해 준 친구의 말을 들으니 상대방이 성실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일단' 안도했다. 그 이후로 A의 연애 진행 상황을 간간히 듣기만 하다가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달라진 A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때깔이 달라져 있었다. 사랑을 주고받는 이의 얼굴은 얼마나 빛이 나는지. 20대 이후로 처음 보는, A의 행복하고 자신감 있는 얼굴이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와의 결혼생활에서도 분명 짊어져야 할 몫이 있을 테지만,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낸 A의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핀 걸 보니 '무조건' 좋았다.

그날 우리는 A의 새출발을 왁자지껄하게 축하해줬다. 그러다 주제가 자연스럽게 결혼을 안 한 나에게로 향했다. 오래 된 친구들이라 나에게 결혼 관련해서는 가타부타 이야기를 안 한 지 오래 됐지만, 이날은 상대적으로 내가 '큰 걱정거리'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애정 어린 현실 조언을 듣고 집에 오는 길. 난데없이 쓸쓸해졌다. 친구의 인생이 이제야 겨우 풀린 것에 대한 안도감이나 흐뭇함과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분명 나름 잘 지내고 있었고, 이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만족하는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부족한 삶으로 둔갑했다.

한 친구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A가 부럽네"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금세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벼운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 내가 친구들 중에 제일 끝에 서게 된 것 같고, 왠지 무언가에 진 것 같고, 어쩐지 이생망인 것 같았다.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인정할 줄 아는 법이다. 그들과는 무엇이 더 나은 인생인지에 관해 은근한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당신이어서, 나는 나여서, 당신은 당신의 삶이기에, 나는 나의 삶이기에 행복할 따름이다. 당신과 나는 같지도 않고, 같을 필요도 없다. 행복의 이유도 다를 것이고, 그것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행복한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의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 정지우 작가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젊을 때에는 남들이 가진 건 나도 가져야 안심이 됐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남과 다른 걸 받아들이는 건 내가 우월할 때뿐, 빠지거나 뒤지는 것으로 다르긴 싫었다. 나이가 들면, 나와 다른 사람의 비교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내 몫의 삶과 행복에 자족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성숙함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옵션처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을 흔드는 크고 작은 바람은 언제나 불기 마련이고, 그 바람의 강도는 늘 내 선택에 따라 허리케인이 되기도 하고, 미풍에 그치기도 한다. 이제는 누군가가 잘 되는 일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만 아니라면, 부러움에서 시기심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잘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복병을 만난 것이다.

A의 재혼과 함께 불어온 바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쩌면 나는 결혼 생활로 어려움을 겪었던 친구를 보며 위안을 삼았던 건 아니었을까. 나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위안받는 것 질색인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우열을 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싶었다.

부러운 건 지는 게 아냐

쓸 데 없는 신경전을 치르지 않으려면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삼지 않기. 이 말은 정지우 작가가 위의 책에서 말한 것처럼 "타인의 행복에서 좋은 영향을 얻어 나 스스로도 행복하고자 애쓰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불던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왜 부러우면 지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왜 행복이 지고 이기는 승부가 됐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나아갔다. "부러워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거나 가지고 싶어하다"이다.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으로 각성되는 자신의 결핍을 실패나 패배로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내 것이 아닌 행복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도 내 몫의 행복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내 것이 아닌 행복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도 내 몫의 행복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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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아닌 행복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도 내 몫의 행복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발에 기대 잠든 강아지의 온기를 느끼며 책 읽을 때, 폭풍이 몰아치던 날 혼자 있는 나를 위해 비바람을 뚫고 오다 비싼 안경까지 날려버린 친구를 맞이하던 순간, 동네의 친한 언니와 편한 복장으로 만나 커피 한 잔 할 때, 방송작가로서의 내 안위를 걱정하던 직장 후배에게서 "얼마 전 꿈에 언니가 아주 예쁘고 좋은 옷을 입고 나왔어요. 힘들 때마다 제 꿈을 꼭 기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서 보내는 깊은 밤 고요한 시간, 내가 쓴 글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감사의 인사를 읽을 때, 생계형 단순 노동 아르바이트를 7시간 정도 하고 퇴근할 때...

일상에서 반짝거리는 내 몫의 행복들이다. 그 행복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맞다. 나는 이렇게 나만의 행복을 얻는 방법, 행복을 느끼는 기술을 부지런히 배워나가면 되는 거다.

내 삶이 결핍이 많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보여서 무언가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의 새해 소망은 바로 그거다. 서로를 부러워할 수 있는, 그래서 더 멋지고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아무런 비웃음이나 열등감, 시기나 조롱, 질투나 피해의식 없이 바라봐주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의 삶에는 내가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어느 지점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도 나의 삶을 어느 면에서는 부러워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가 더 멋진 삶으로 인도되어가기를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사람과 좋은 오후를 보내고 싶다." - 정지우 작가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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