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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담임 업무를 맡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기사로 소년원의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기자말]
보호처분 중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은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대전소년원
 보호처분 중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은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대전소년원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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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반에 승수(가명, 15)라는 학생이 있다. 절도로 소년부 법정에서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고 대전소년원에 왔다. 유아기에 어머니가 가출해 편부 슬하에서 성장한 승수를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폭행했다. 결국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한 후 보육원에 맡겨졌다. 

며칠 전, 승수 앞으로 우편물이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책 4권과 손편지 2장이 들어있었는데, 보낸 사람은 2명의 경찰관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절도를 했어요. 동네 슈퍼에서 컵라면과 껌을 훔치다 걸렸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아저씨들이 절 지구대로 데리고 갔는데, 제 사정 이야기를 듣고 훈방해주셨어요. 그때 경찰 아저씨들이 해장국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 헤어졌어요.

한 달 후에 경찰 아저씨들이 쌀과 과자, 음료수, 양말을 사 들고 제가 생활하는 보육원에 찾아오셔서 저한테 용돈도 주시면서 격려해주셨어요. 한 달에 한 번 후원물품을 가지고 오셨고 시설 보수공사 할 때는 작업복을 입고 직접 일을 도와주시기도 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저를 돌봐주셨고, 제가 소년원에 들어왔는데도 생활 잘하라고 좋은 책과 함께 편지를 보내주시고 있어요."


승수가 처음 비행을 저질렀을 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은 경찰이었다. 승수도 경찰 아저씨들이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시는 것에 고마워하고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족이 없다는 좌절감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초등학교 때 진단받은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가 악화되어 마음을 잡기 힘들었다.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전거와 스마트폰을 훔쳤고 오토바이를 절취해서 무면허로 운전하는 등 점점 비행에 빠져들었다. 결국 승수는 7호 의료소년원 처분을 받았다.

"제가 소년원까지 왔지만 경찰관님들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분들이에요. 또 제가 학교생활에 적응 못할 때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소개해주셔서 센터 선생님이 제 멘토 역할을 하고 계세요."

센터 선생님은 승수에게 면회를 오고 보호자 역할을 하며 수용 생활을 하는 승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경찰관들이 승수에게 쓴 편지에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며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

소년법의 이념, 국친사상
 
소년원 학생들이 대전소년원에서 군고구마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소년원 학생들이 대전소년원에서 군고구마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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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승수는 군고구마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다며 담임인 필자를 졸랐다. 평소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동료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승수가 군고구마 봉사를 자원하다니! 이유를 물어보았다.

"저도 이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또 사람들한테 군고구마를 나눠주면 보람 있잖아요!"

교실에서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벌점을 받거나 생활관에서 동료들과 다툼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관둔다는 조건으로 군고구마 나눔 봉사를 시키기로 했다. 프라모델을 잘 만드는 소년(관련 기사 : 죽으려 뛰어내린 12살 소년, 그의 아픈 과거)과 담임인 필자, 3명이 군고구마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승수는 필자가 직접 디자인하여 주문 제작한 군고구마 봉사팀 유니폼인 후드티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었다.

승수, 프라모델 소년과 함께 군고구마를 구워서 생활관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데, 웬 초등학생이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그날 법원에서 7호 처분을 받고 입원한 신입 학생이었다. 

고사리 소년은 만 12세로 초등학교 6학년인 촉법소년이다. 영아기 때부터 보육원에 맡겨져 성장한 고아였다. 처음 절도를 한 것은 승수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소년이 아빠라고 부르는 보육원 교사의 돈 5만 원을 훔쳐서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소년은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애초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제멋대로 교실을 나가서 수업 시간 대부분을 운동장에서 혼자 놀거나 쉬는 시간에 나온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보냈다.

고사리 소년에 대한 정신과 소견은 품행장애,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경계선 지능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해 왔지만, 산만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지속되어 어린 나이임에도 결국 소년원 처분을 받았다.

승수는 고사리 소년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고 잘 챙겨주었다. 고구마도 제일 크고 잘 익은 걸로 주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승수에게 처음 손을 내민 분들은 경찰이었고, 고사리 소년에게는 필자와 대전소년원 선생님들이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 소년법의 이념은 국가가 가정과 학교를 대신해 비행 청소년을 보호하는 국친사상이다.

소 도둑 되기에는 너무 어린 바늘 도둑

청소년 집단 폭행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촉법소년(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라는 여론이 빗발친다. 전체 소년범죄 중 촉법소년 범죄는 약 0.1%이다. 이중 언론에 보도되는 살인 등 특정 강력범죄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생계형 절도나 경미한 학교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다. 만약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답변을 받은 소년법 폐지 청원대로 소년법을 폐지한다면, 승수와 고사리 소년은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절도한 것 때문에 혼나고 야단을 맞다 보니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속 훔치게 됐어요."

고사리 소년이 받는 스트레스는 자신을 지지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의 부재와 학교의 무관심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10대들의 집단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면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사회관계 장관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대책 마련을 고심한다.

청소년 범죄는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법 개정만이 아닌, 공교육의 역할과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배려 및 지원, 결손가정과 가정폭력,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와 분배, 비행초기 단계 청소년 선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변해야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도 나올 수 있다. 

고사리 소년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축구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는 정말 열심히 뛰었어요! 축구 선수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아프리카에 기부하고 싶어요.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고 안 치고 이런 곳에 절대 오지 않겠습니다."

"소년원에 들어와서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니?" 또래보다 체구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고사리 소년에게 물었다. 촉법소년인 바늘 도둑은 소 도둑이 되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라면이 먹고 싶어요! 선생님, 오늘 상담했는데 라면 안 주나요?"
 
[보호처분]
1호.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명령
4호. 단기 보호관찰
5호. 장기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 (6개월)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단기 소년원 송치 (6개월)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 (2년)  

덧붙이는 글 | 전국 10개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의 약 30%는 정신질환·지적장애로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ADHD, 조현병, 품행장애 등의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입니다.


태그:#소년법, #소년원, #학교폭력, #촉법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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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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