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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명이 채 안 되는 도시에 한 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2천만 명이 넘는다면? '과잉 관광(Over Tourism)'의 사례로 베네치아의 사례가 해외 유수의 언론에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는 특정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교통 체증과 주택난, 쓰레기 문제, 폭등하는 물가 등, 사실상 정주 공간으로서의 도시 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도시마다 숙박비 등에 인두세 형식의 '관광세'를 부과하는 이유다.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등 유명 관광지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여길 만큼 비싸다.

하루에 한 사람당 적게는 2유로에서, 많게는 6유로에 이르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도 현지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도시마다 '관광세'를 속속 도입하거나 대폭 인상하고 있다. 거칠게 말해서,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가격은 턱없이 비싼데 시설과 환경이 엉망인 숙소가 부지기수다. 비용에 걸맞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혹여 베트남이나 타이 등 '가성비 높은' 동남아 여행에 길들여진 관광객들이라면 이탈리아에 와서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도심의 허름한 공동주택을 사들인 뒤 대충 개조해 호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집이었던 공간을 애써 분리하는가 하면, 곧게 서기 힘든 비좁은 다락방에 침대를 끼워 넣은 채 관광객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휴가철 로마에는 로마 사람들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엔 유적과 박물관 등이 몰려 있는 도심은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장사꾼들의 호객행위로 종일 시끄럽다. 밤낮으로 인산인해인 트레비 분수 옆 성당에서 달랑 4명의 신자를 앉혀두고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씁쓸한 표정이 겹친다.

이탈리아는 관광객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로마 공화국 광장 지하철 역 안에 붙은 출입구 안내판이다.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모르는 지하에서, 이것만 봐서는 어디로 나가야할지 당최 종잡을 수 없다. 출입구에 그 흔한 번호도 없다.
▲ 지하철 내부의 안내판 로마 공화국 광장 지하철 역 안에 붙은 출입구 안내판이다.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모르는 지하에서, 이것만 봐서는 어디로 나가야할지 당최 종잡을 수 없다. 출입구에 그 흔한 번호도 없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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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갑'이 아니다. 혹자는 '애먼 돈 뜯기고 뺨 맞는' 기분이라며, 여행의 불편함을 성토하기도 한다. 당국은 관광객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거의 없고, 사람들 또한 불친절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탈리아에선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유럽 내에서 가장 소매치기가 많은 나라라는 점도 사실일지언정 각자 조심하면 되는 것이니 이 글에서 차마 탓하진 못하겠다. 문제는 낯선 관광객의 입장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여행 중에 '눈 뜨고 코 베였다'며 고통을 호소하게 될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 몇몇 지인들로부터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패키지여행이 더 낫다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다. 초행자가 이탈리아를 자유여행 하게 되면 '경험'과 '고통'을 맞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짐짓 겁을 주기도 했다.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해외여행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닌데, 그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하지만 숙소와 교통편, 박물관 등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자만을 이내 후회하게 됐다. 이탈리아로의 여행 준비는 그들이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선 예약 문화가 정착돼 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칫 교통편을 구하지 못하거나,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면 입구에서 표를 구하기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조차 예약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정도다.

인터넷 예약은 사실상 의무지만 공짜는 아니다.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별도로 2~5유로 가량의 예약비를 추가로 받는다. 문제는 환불을 받기는커녕 예약 시간을 변경하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번 예약이 완료되면, 도중에 여행 일정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어로 된 예약 창을 순간 잘못 이해하고 클릭해도 낭패다. 모든 진행 단계마다 영어로 변환시켜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해야 하며, 이전 창과 같을 것이라 예단하면 곤란하다. 하물며 날짜나 요일을 착각한 경우라면 두고두고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여행 준비 과정에서 겪었던 일이다. 순간 예약 문의 창을 열어 일자 변경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지만, 열흘이 넘도록 가타부타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박물관이나 유적 입장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비싸다. 한 번 잘못 클릭한 대가로 우리처럼 돈 몇 만 원을 날리게 된다면,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기분이 상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예약비는 그저 여름철 성수기에 승차권이나 입장권에 포함되는 비용, 즉 '웃돈'을 얹어주는 것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비수기라면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면 아침 조금 일찍 길을 나서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곧, 성수기에 이탈리아 여행은 '비추'라는 이야기다.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도 들쭉날쭉해서 당최 종잡을 수 없다. 승차권 관련 문의를 위해 기차역을 찾아갔는데 근무자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시시와 같은 유명 관광지의 기차역조차 언제 찾아오라는 팻말만 덩그러니 붙여놓은 채 창구가 닫혀있었다. 근무 시간이 천차만별이어서 관광객이 그들에게 일정을 맞춰야 한다.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건 어디든 같았다.

심지어 관광안내소조차 문이 닫힌 곳이 많아 적잖이 애를 먹었다. 근처 주민들에게 부러 물으니, 겨울철 비수기라서 그렇다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긴 아시시에서 머문 사흘 동안은 저녁에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워 늦어도 오후 4시엔 저녁식사를 해야만 했다. 마트나 카페조차 없어 마치 수도승처럼 해가 지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기차 타다가 경찰에게 잡혀갈 뻔한 사연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인터넷으로 기차표나 입장권 등을 예약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환불이 힘든 경우가 많고, 규정이 조금씩 달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 문제의 지역 열차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인터넷으로 기차표나 입장권 등을 예약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환불이 힘든 경우가 많고, 규정이 조금씩 달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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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벌금을 내기도 했다. 기차 내 검표 과정에서 다짜고짜 무임승차라며 30유로나 되는 벌금을 추징 당한 것이다. 올해 만 13세인 딸이 아동 할인을 적용받는 건 불법이라며, 벌금 납부를 거부하면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을러댔다. 검표원이 보여준 규정에 따르면, 성인과 아동의 기준은 만 12세였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이탈리아는 철도의 운영 주체에 따라 할인 기준 나이가 제각각이다. 우리로 치면 KTX인 '이딸로'는 만 13세이고, 국영 철도는 만 14세까지 할인을 적용받는다. 그런가 하면, '레지오날레'라고 부르는 지역 열차는 만 12세로 규정되어 있다. 당시 탔던 기차가 지역 열차여서 본의 아니게 불법을 저지른 꼴이 된 것이다.

여행 일정에 맞춰 기차의 종류와 시간을 선택한 것일 뿐인데, 세부 규정을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같은 나라 안에서 기차의 종류에 따라 할인 규정이 다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 때 나이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정작 우스꽝스러운 건 따로 있다. 다른 지역 열차에선 타자마자 승무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한 뒤 추가 요금을 내겠다고 했더니, 그때는 착오로 그런 거라면 내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음부턴 예약을 할 때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똑같은 회사의 직원일 텐데, 규정을 적용하는 건 그때그때 다른 셈이다.

순간 '경험'과 '고통'을 맞바꾸게 될 거라는 지인의 말이 실감났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승차권 파는 곳이 드물어 미리 사둬야 한다는 점, 오래된 검침기에 기차표를 펀칭할 때는 표를 기계에 넣기만 해서는 안 되고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그어야 한다는 점, 똑같은 220V 전압에 콘센트 모양이 같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알게 된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전압이 220볼트로 우리와 같지만, 문제는 콘센트의 '폭'과 플러그의 '두께'다. 대도시의 숙소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을 고려해 사진과 같이 겸용할 수 있도록 폭과 두께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 이탈리아 전기 콘센트 모양 전압이 220볼트로 우리와 같지만, 문제는 콘센트의 "폭"과 플러그의 "두께"다. 대도시의 숙소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을 고려해 사진과 같이 겸용할 수 있도록 폭과 두께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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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버스 승차권을 구입할 때마다 편도냐, 왕복이냐를 묻는데, 다시 돌아올 계획이라면 무조건 왕복표를 사야 싸고도 편리하다. 결코 상인이 바가지 씌우려는 게 아니다. 또, 콘센트의 두 구멍 사이의 간격이 넓어 별도의 어댑터가 필요한 숙소나 카페가 많다. 로마나 피렌체 등 대도시면 몰라도, 소도시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어댑터는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다.

흔히 이탈리아 사람들을 두고 '조상 잘 만나서 호강을 한다'며 시샘하곤 한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인데다, 도시마다 없던 세금까지 만들어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전 세계 사람들이 애면글면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건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다. 그곳엔 '경험' 외에 '고통'을 몇 갑절로 보상해주는 '배움'과 '감동'이 있다.

태그:#오버투어리즘, #이탈리아 여행, #이탈리아 기차표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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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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