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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9년 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릴 때 쌍둥이 남매는 태어난 지 12개월도 안됐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열흘이나 출근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당시 저는 육아에 치여 있어서 남편을 돌볼 형편조차 안됐습니다(심지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산후우울증이구나'를 깨달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옮길까봐 남편이 방 밖으로 물 마시러 나올 때조차 실눈을 치켜뜨며 짜증난 표정을 지었답니다. 그 덕분인지 저는 감염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나중에 남편이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다'며 서운한 마음을 살짝 내비쳐서 조금 미안하긴 했습니다.
 
신종플루 음성
 신종플루 음성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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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회복해서 출근한 지 얼마 뒤, 이번엔 쌍둥이 남매가 번갈아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건강하던 딸 아이가 무섭게 열이 나며 아파하더군요.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신종플루인 것 같다'며 검사를 하자고 합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미리 타미플루를 먹으라는 처방까지 받았어요. 이틀 뒤,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당시 저희 집에는 귀 체온계만 있었습니다. 버둥대는 아이들 때문에 체온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마형 체온계를 추가로 구입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평소 가격보다 20~30% 올랐습니다. 마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마스크나 손세정제의 가격이 치솟은 것처럼 말입니다.

줄줄이 강연 취소된 전문강사의 이야기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는 영업을 중지하고, 인근 유치원·어린이집 등에는 휴원령이 내려졌습니다. 각종 모임이 취소될 정도로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언론보도도 이어집니다.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 남편 회사에서는 회식을 지양하라는 권고가 있었으며 밖에서 점심을 먹지 말고 동료들과도 부딪히지 말라면서 한 달가량 도시락까지 지급됐다고 합니다.

외식산업뿐만 아니라 음악회나 영화·공연관람, 강연 등의 문화산업도 타격을 입습니다. 특정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더 쉽게 확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요즘엔 책을 출간하면 저자 강연, 소규모 세미나 등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합니다. 지난해 12월 생애 최초로 책을 펴낸 저는 2월 한 달간 주말마다 빡빡하게 강연을 잡아뒀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참이었습니다.

블로그 이웃이자 강의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아이 친구의 엄마(전문강사)로부터 오래전부터 예약돼 있던 기업 신입사원 연수를 비롯해 각종 승진자 연수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뒤, 초보 저자인 저의 강연도 당연히 취소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서울의 한 구립도서관에서 모든 세미나를 취소한다는 전화를 받으니 확실히 실감이 나더군요. 시국이 시국인만큼 책 홍보보다 위생·안전관리에 힘써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미나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편집자에게 전했습니다. 저보다 2배는 더 서운해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라는 안타까운 탄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쳤던 출판계 분위기를 전해줬어요. 출판사마다 사정은 달라겠지만 신간의 제작이나 배본 일정을 미룬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신종 코로나와 예기불안

당시에는 사람들이 아예 서점 나들이를 안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책만 알음알음 온라인에서 주문했는데,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등 사회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사고가 이어져 책 읽을 마음의 여유까지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10년 넘게 출퇴근 지하철 속 틈새 시간을 활용해 독서하는 습관을 가졌던 저 역시 마음이 불편한 시기엔 책이 눈에 안 들어오더군요. 편집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니 신종플루와 메르스로 5~7개월가량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입니다. 학교·학원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부모들의 한숨과 공포를 보고 있자니 어느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지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비슷한 공포감이 반복될 때마다 소독제·마스크·체온계 등의 보호 물품과 생수·간편조리밥 등의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고, 가격이 폭등하고, 허위정보가 확산되곤 합니다. 신종플루 이후 1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사람도 사회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바이러스 이후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고 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종코로나의 확산으로 '나도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고 생각되는 경우 생기는 불안증세인 예기불안(expectation anxiety , 豫期不安)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오히려 상황에 중독되면서 더 에너지 소모적인 불안을 조장하게 되곤 합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님의 책 <심야치유식당>에서 사람들은 소진된 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르기를 기다리기보다 최대한 빨리 보상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며 뭔가를 찾아헤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카톡방이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확진 환자가 1명씩 늘어날 때마다 관련된 뉴스를 공유하고 마스크값이 치솟는다는 정보에 마스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핫딜 링크를 공유하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것들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마스크
 마스크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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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지킬 수 있을지 책을 통해 답을 찾아봤는데요. 공포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었습니다. 다만, 꽉 채워 대비하려고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70% 정도만 채우고 약간의 여유를 의도적으로 갖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제가 70점 워킹맘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뭔가를 채워넣기에만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되레 불안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지현님은 같은 책에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도 쉬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오래전 읽은 책의 문구를 상기하며 저는 이 상황에 끌려다니기보다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확인하고,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점검해 보기로 한 거죠. 초보 작가로 신간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던 세미나 취소에 우울해하기보다 그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방법을 찾지는 못했지만 온라인으로 가능한 홍보 활동을 찾아야겠죠.

또한 방학 중에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정했어요. 수영장 강습은 당분간 쉬기로 하고 수영으로 채웠던 운동량을 대신할 것으로 줄넘기를 택했습니다. 얼마 전에 마련한 운동기구인 스텝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답답하다고 사용을 미루던 마스크를 가방에 늘 챙기며 착용하고,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더 철저하게 손을 씻고, 겨울이라 며칠씩 돌려입던 옷도 매일 갈아입는 등 위생관리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지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외식을 줄이고 냉장고와 냉동실의 음식을 활용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명절이 지난지 얼마 안 돼서 냉장고·냉동고는 차고 넘치는 상태였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지인은 극심한 황사 때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던 중국 사람들이 이번 신종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웃지 못할 풍경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집에 마스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체크했습니다. 다행히 이전에 마스크를 많이 사놨다가 덜 썼는데 이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됐네요.

앞서 언급한 전문강사님은 이번 신종 코로나로 강의가 취소돼서 갑자기 남게 된 시간에 출간하고 싶은 책의 원고를 다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취소되는 강연으로 소득이 출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입 파이프 라인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저나 전문강사님의 개인적인 결심들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밖의 상황에 우왕좌왕하며 사재기를 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소식을 찾아 헤매기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점검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일들은 매우 소소하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신종 코로나 확산 기사만 클릭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바깥의 우환(憂患)에 반응하며 마음과 일상이 휘둘리기보다 완벽할 수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하루하루를 70%만 채우는 일, 그게 바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nyyii)에도 실립니다.


태그:#70점워킹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반응과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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