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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십 평생 자식들 밥 지어 먹이는 일밖에 몰랐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애당초 몰랐다. 어느날 엄마가 "그때 내가 어땠는 줄 아니?"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저렸던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3년전 이사를 할때 엄마는 오래된 낡은 그릇들을 모두 정리했다. 엄마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낡은 그릇들이 슬펐던 기억이 난다. 여자들에게 그릇은 어떤 의미일까. 엄마에게 어떤 의미일까.
▲ 다양한 그릇들   3년전 이사를 할때 엄마는 오래된 낡은 그릇들을 모두 정리했다. 엄마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낡은 그릇들이 슬펐던 기억이 난다. 여자들에게 그릇은 어떤 의미일까. 엄마에게 어떤 의미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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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엄마는 대대적으로 부엌 살림을 정리했다. 30년 혹은 그 이상 넘게 묵은 엄마의 부엌살림은 대단했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엄마의 부엌에는 구석구석 정말 많은 살림이 쟁여져 있었다.

베란다 수납장에는 소쿠리와 채반, 양재기, 솥단지, 고무대야들이 크기별로 가득했고, 주방 찬장에는 스테인리스(스텐) 주발과 대접들, 사기 밥공기와 국대접, 접시들이 빼곡했다. 그밖에도 수저, 제기, 도시락, 보온병, 물병, 쟁반, 화채 그릇들이 쏟아져 나왔다. 찬장에서 꺼낸 그릇들이 주방 바닥에 산을 이루었다. 

동고동락하던 부엌 살림을 정리하던 날

쓰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그릇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제사와 추석, 설, 어른들 생신 등을 치르느라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써먹던 그릇들이다. 한껏 정이 들었던 그릇들을 내버린다고 하니 괜스레 싱숭생숭했다. 가족의 추억을 내다 버리는 것만 같았고 오랜 친구를 내치는 것만 같았다.

"엄마, 많이 섭섭하지?" 
"뭐가 섭섭해. 다 낡아빠진 그릇들인데..."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데 대답과 달리 엄마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시원함과 섭섭함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보다는 더 복잡한 깊은 감정의 굴곡들로 얼룩져 있었다. 
  
지난날 엄마는 언제나 부엌에서 동동거렸다. 허구한 날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기제사만 일년에 열 번이 넘었다. 기제사가 몰려 있는 봄에는 일주일 단위로 제사를 지냈다. 두부 부침, 동태전, 녹두전은 기본이고 여유가 있을 때는 동그랑땡과 두부전까지 부쳤다. 녹두전은 꼭 맷돌을 돌려 갈았다. 

추석에는 팥, 깨, 콩을 넣고 하얀 송편과 쑥송편을 빚어 꼭 솔가지를 깔고 쪄냈다. 설에는 묵은지를 다져서 30~40명이 먹을 만두를 빚었다. 

김치는 일년 내내 담갔다. 여름 오이지와 겨울 김장 김치는 기본이었고 계절에 상관없이 제사에 쓸 나박김치를 담그고, 계절마다 깍두기, 오이소박이, 알타리김치, 동치미를 담갔다. 심지어 봄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 담갔다.

엄마의 노동은 변변한 주방기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몸으로 때운 노동이었다. 하루 이틀의 명절노동에 남녀 차별을 논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요즘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평등과 착취'를 당한 셈이다. 

'뭐가 섭섭해'라는 엄마의 말은 '평생의 고단함'과 '억울함'에 대한 뒤늦은 토로가 아니었을까. 

80년 인생의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낸 엄마에게 주방 바닥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은 오랜 세월 엄마와 동고동락한 친구나 다름없었다. 찬장에서 그릇들이 꺼내져 나올 때마다 엄마의 추억도 고구마 넝쿨처럼 딸려 나왔다. 엄마가 마치 제품보증서라도 되는 것처럼 그릇에 얽힌 오래된 추억들을 소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오래된 그릇을 꺼낼 때마다 엄마의 추억도 딸려 나왔다
 
3년전 엄마는 평생 써오던 주방그릇들을 정리했다. 무겁고 더 이상 쓸일없다고 버린 화채그릇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 엄마의 화채그릇 3년전 엄마는 평생 써오던 주방그릇들을 정리했다. 무겁고 더 이상 쓸일없다고 버린 화채그릇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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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는 술을 잡수고 들어오시는 날도 밥은 꼭 집에서 잡쉈는데…" 하면서 스텐 주발과 국그릇을 가리켰다. 

엄마는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늘 주발에 밥을 가득 떠서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두곤 하셨다. 주발 뚜껑에 붙어 있던 밥알을 손가락으로 떼어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사기그릇에 밀려나 쓰지도 않는 스텐그릇들을 엄마는 최근까지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아버지를 기다리던 엄마와 우리들의 마음이 떠올라 엄마는 차마 그 주발들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접시는 진짜 좋은 건데…. 어찌나 튼튼한지 잘 깨지지도 않아."

엄마가 말한 '진짜 좋은' 접시들은 질 좋은 생활용품이 부족했던 시절 아는 사람을 통해 구입한 '미제' 접시였다. 1970~1980년대 미군 부대가 있던 동네에서는 영내 PX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심심찮게 거래되곤 했었다. 

"이 접시는 돈이 있어도 한 번에 많이 못 샀어. 물건 나올 때마다 몇 번에 걸쳐 사 모았는데, 나중에는 더 사고 싶어도 못 샀어." 

엄마는 한참을 '미제 접시'와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전에도 몇 번이나 들었던 얘기다. 엄마는 그 미제 접시들을 유난히 아꼈는데, 엄마에게 그 접시는 가난에서 벗어났음을 알리는 상징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의 얘기는 언제나 "돈이 있어도 못 샀어, 더 사고 싶어도 못 샀어"로 끝났고 표정은 뿌듯함과 자부심으로 옅게 빛나곤 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건 정말 버리기 아까워"라면서도 접시들이 무겁다며 이사하는 집에 가져가지 않겠단다. 엄마는 접시를 하나씩 집어들어 꼼꼼히 살폈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어루만지듯이.

엄마는 끝내 그 접시를 버릴 수 없었던지 올케에게 접시를 양도했고 올케도 기꺼이 접시를 접수했다. 

엄마와 꼭 닮은 엄마의 '못난이' 살림 
      
 엄마는 손잡이가 없는 국자를 김치통에 넣고 쓰기 좋다고 버리지 않고 지금껏 쓰고 있다.
▲ 엄마의 주방용품-손잡이 없는 국자  엄마는 손잡이가 없는 국자를 김치통에 넣고 쓰기 좋다고 버리지 않고 지금껏 쓰고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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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아래쪽에서는 뚜껑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냄비, 손잡이가 없는 곰솥, 손잡이 없는 국자 같은 것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런 걸 왜 여태 안 버렸어?" 
"거기에 행주 삶고 하면 얼마나 좋은데."

"이건 또 뭐야. 손잡이도 없는 국자를 왜 여태 가지고 있어?"
"그건 나박김치 풀 때 좋아."

"손잡이도 없는데 이 솥을 어떻게 들어?" 
"행주로 싸서 들면 돼."

멀쩡하지 않은 부엌살림들은 어쩐지 엄마와 닮아 보였다. 엄마는 평생 식구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손가락도 휘고, 다리도 휘고, 허리도 휜 볼품없는 노인이 됐다. 엄마의 그릇들도 그랬다. 색깔도 바래고, 짝도 안 맞고 심지어 꼭지까지 떨어져 나갔다. 

나는 엄마가 그 '못난이 그릇'들을 버렸으면 했다. 구지레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애잔해 보여서 말이다. 엄마도 그릇도.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냄비지만 쓰기 편하다고 지금도 쓰고 있다. 엄마에게 백만원 넘는 냄비를 사는 일은 정신나간 짓일 뿐이다.
▲ 엄마의 냄비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냄비지만 쓰기 편하다고 지금도 쓰고 있다. 엄마에게 백만원 넘는 냄비를 사는 일은 정신나간 짓일 뿐이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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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결국 이 못난이 그릇들도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로 가져왔다. 그리고 올 설에는 수정과 담글 곰솥이 필요하다는 내게 빌려줬다. "필요하면 너 아주 가져"라는 말과 함께. 난 이제 곰솥을 볼 때마다 꼼짝없이 엄마를 떠올리게 생겼다.

엄마의 부엌살림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출해졌다. 이사 온 이후로 새로 그릇을 사는 법도 없었다. 어쩌다 예쁜 그릇이 보여 하나 사라고 하면 

"언제 써먹는다고 그릇을 새로 사니?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충분히 써먹어."

라며 일축해 버렸다. 

엄마는 요즘 그릇 모으는 재미를 들였다. 사는 게 아니고 각종 체험관에서 개근상이라며 나눠주는 뚝배기나 사발, 컵, 밀폐 용기 같은 것들이다. 가끔은 우리에게도 하나씩 나눠주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는 그 그릇들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줄 안다. 엄마에게 부엌살림이란 하나같이 다 귀하고 값진 것들이다.

태그:#팔순의 내엄마, #팔순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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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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