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의 새 유니폼.

축구대표팀의 새 유니폼. ⓒ 나이키

 
최근 한국축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엠블럼과 축구대표팀 유니폼이 새롭게 발표됐다. 그런데 반응이 심상치 않다. 너무 파격적이다 못해 난해하고 기괴한 해석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엠블럼을 교체한 것은 19년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제작한 기존의 '백호 엠블럼'이 축구공에 앞발을 얹은 호랑이의 용맹한 모습을 내세웠다면, 새 엠블럼은 얼굴에 초점을 맞춰 축구장을 형상화한 네모를 배경으로 축구 전술을 상징하는 육각형 모양의 호랑이 얼굴을 내세웠다. 국내 브랜드 개발 전문기업 샘파트너스가 제작을 맡아 기존 엠블럼에 비하여 복잡한 무늬나 글씨를 배제한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한층 극대화한 것이다. 

엠블럼 교체와 함께 2020년부터 사용할 축구대표팀의 새 유니폼도 공개됐다. 축구협회는 최근 나이키와 2031년까지 2400억 규모의 파트너 계약을 갱신했다. 재계약 이후 첫 선을 보인 나이키의 새 국가대표 유니폼의 콘셉트는 '한류'였다.

홈 유니폼은 상의 상단이 흰색과 분홍색으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차 짙은 붉은색으로 변화하는 물결무늬 형태다. 한국 고유의 컬러인 붉은 색에 특히 옷깃과 소매는 검은색으로 처리해 한국 축구 대표팀 고유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세련미를 추가했다. 원정 유니폼은 흰 바탕에 검정색 가로 무늬를 적용하며 백호를 형상화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KFA) 브랜드 아이덴티티 발표 행사에서 정몽규 회장과 신입 직원들이 새 앰블럼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KFA) 브랜드 아이덴티티 발표 행사에서 정몽규 회장과 신입 직원들이 새 앰블럼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새 엠블럼과 유니폼이 공개된 이후 정작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요약하면 '맙소사'에 가깝다. 제작사는 새 엠블럼이 백호를 구현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사자나 고양이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게 문제다.

방송 예능이나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에서 보면 액자에 랩을 씌워놓고 오직 얼굴만으로 뚫게 하는 게임이 종종 등장한다. 새 엠블럼은 마치 얼굴만 내민 고양이가 죽을 힘을 다해 랩뚫기 게임을 하느라 찌그러진 표정을 연상시킨다. 위엄보다는 오히려 연민을 자아내는 표정이다. 전 엠블럼에서 당장에라도 그라운드를 호령할 듯하던 백호의 용맹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 엠블럼은 마치 놀이공원 마스코트를 보는 듯이 그저 귀엽기만 할뿐이다.

유니폼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예쁘기는 하지만 디자인에서 한국적인 정체성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축구대표팀 유니폼은 기능성이나 화려한 패션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라를 대표하여 출전한다는 점에서 그에 걸맞는 품위와 무게감이 있어야한다.

마치 색을 입히다가 만듯한 홈 유니폼은 한국축구 특유의 강인함과 열정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유약해보인다. 가장 최악은 원정 유니폼으로, 백호라기보다는 사파리의 얼룩말이나 기린을 연상시킨다는 악평이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에서부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용맹한 기운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맹수들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초식동물을 연상시키는 여리여리한 느낌에 가깝다.

섣부른 변화는 필연적으로 진통을 부르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20년 가까이 팬들에게 익숙해진 엠블럼이 갑자기 교체되었으니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대표팀 유니폼이야 바뀔 때마다 팬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게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바뀐 새 엠블럼과 유니폼이 '한국축구의 얼굴'이라는 상징성에 걸맞은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다. 시대 변화에 걸맞게 어느 정도 트렌디함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가벼워 보인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나라의 축구협회들이 오래된 엠블럼이나 유니폼 디자인을 설사 바꾸더라도 되도록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전 정보나 설명 없이 바뀐 한국축구의 엠블럼과 유니폼을 보고서 '태극전사'나 '호랑이' 같은 고유의 이미지를 떠올릴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오죽하면 팬들 사이에서는 새 유니폼과 엠블럼을 '상대의 전투의지를 무력화시켜서 아예 싸우기도 싫게 만들려는 큰 그림'이라고 조롱섞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유니폼과 엠블럼은 아이돌의 무대의상도, 패션 아이템도 아니다. 아무리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고유의 정체성을 흔들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축구팬들이 이 난해한 엠블럼과 유니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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