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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국내 확산 조치가 상향되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지나는 버스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국내 확산 조치가 상향되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지나는 버스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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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이거, (평소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건데 이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러선 중요한 물건이 됐어요!"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317호 법정. 제3형사단독 김춘호 판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왜 '마스크'를 거론하며 피고인의 논리를 지적했을까.
 
이날 법정에선 관세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의약품 도·소매업체 A 과장의 선고공판이 진행됐다. A 과장은 회사 수출업무에 종사하던 중 2018년 2월 20일부터 2019년 1월 16일까지 총 24회에 걸쳐 관할 세관장에 신고하지 않고 의약품 2759개(한화 약 2억 3000만 원)를 수출했다.
 
그런데 A 과장은 재판을 받던 도중인 지난해 12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김 판사에 신청하기도 했다. 위헌법률심판은 법률이 헌법에 반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으로, 재판 당사자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김춘호 판사 "미신고 수입-미신고 수출, 차이 있지만..." 
 
A 과장은 관세법 제282조 3항의 '추징'과 관련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해당 조항에 따라 미신고 수출품을 몰수할 수 없을 경우 국가는 범인으로부터 물품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할 수 있다. 이는 미신고 수입품에 대한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A 과장은 '고의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수출업무 담당 직원에게 물품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또 '수입에 비해 수출은 국내 경제나 생태계, 국민의 건강, 안전의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비하므로 수입과 수출과 관련된 범죄를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영등포구청역 인근 약국의 모습이다. 기존에 있던 방역마스크는 모두 품절된 상태고, 남은 마스크는 아동용 방역마스크 포함 총 4개다. 옆에 비치된 것은 방역마스크가 아닌, (방한용) 면 마스크들이다.
 영등포구청역 인근 약국의 모습이다. 기존에 있던 방역마스크는 모두 품절된 상태고, 남은 마스크는 아동용 방역마스크 포함 총 4개다. 옆에 비치된 것은 방역마스크가 아닌, (방한용) 면 마스크들이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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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판사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A 과장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김 판사는 "국제 거래가 국내 거래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점"이라며 "해외로 물품을 수출하려는 사람이 수출업무를 하면서 그와 관련된 행정적인 제약이 있는지 여부에 관해 살피지 않고 업무상 미숙이나 과실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감면받으려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판사가 '마스크'를 거론한 것은 '수입에 비해 수출이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는 A 과장의 주장을 지적하면서 나왔다. 우선 김 판사는 "마스크 이거, 평소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건데 이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러 중요한 물건이 됐다"라며 "이처럼 (평소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특정한 시점에 다른 사정에 의해 크게 문제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물건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필요한데 그게 과도하게 나가면 안 되므로 관세당국에서 (수출과 관련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마스크와 같은 물건을) 함부로 신고 없이 수출해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점에서 볼 때 '무조건 수출을 많이 하면 나라에 좋은 것이다'라는 접근은 맞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도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형사처벌의 경우) 미신고 수입행위의 불법성과 미신고 수출행위의 불법성에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바, 따라서 수입신고와 수출신고가 그를 통해 확보하려는 행정목적상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일단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수출이라고 하여 그것이 국내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 측면에 미치는 영향이 마냥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품이 국외로 수출되는 경우라고 하여 그러한 물품의 판매에 따라 취득하게 되는 부가가치만을 중시할 순 없다"라며 "그러한 물품의 종류나 그 물품이 사용되는 시기에 따라 (중략) 그 물품의 일정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 또한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중요시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이후 마스크, 손세정제 등이 신고 없이 대량 해외로 반출되고 이에 따라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관세청 등 당국이 집중 단속에 나선 상황이다. 
 
한편 김 판사는 A 과장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김 판사는 "벌금 200만원, 추징금 2억 551만 6850원의 선고를 유예한다"라고 밝혔다. 선고유예는 범행이 경미한 피고인에 대해 일정 기간 선고를 미루고, 피고인이 그 기간을 사고 없이 보내면 선고를 면하는 제도다.
 
김 판사는 ▲ 범행이 업무상 미숙으로 인해 벌어진 점 ▲ 미신고 수입에 비해 미신고 수출의 경우 해악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점 ▲ 피고인이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은 것 외에 미신고 수출로 인한 직접 취득한 이득이 없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태그:#마스크, #서울중앙지법, #관세법, #김춘호,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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