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아주 오래 전 큰 주택의 뒷문 쪽으로 출입하는 지하방에 살았던 적이 있다. 방 두 개에 부엌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비좁은 입구 한 켠의 주방. 그곳에 3년을 살았다.

어느날 한 번은 비가 엄청 많이 내려 하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부엌을 온통 잠기게 했다. 다행히 방의 문턱이 높아서 방까지 들어오진 않았지만 위험했던 정도였다. 그러다 비가 그쳤고 나는 부엌에 가득 찬 물을 퍼내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10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진행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일궜다. 영화에도 내 경험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했다.

폭우가 내리는 장면에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반지하 방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밤새 대저택의 거실 탁자 밑에 숨죽이고 있다. 간신히 저택에서 탈출해서 터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주한 계단, 그 밑으로 물줄기가 쏟아진다. 그 물줄기는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잠겨버린 집으로 창문을 타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그 집을 보는 순간, 물에 빠져 호흡할 수 없는 느낌과 함께 나의 예전의 궁핍한 살림살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아직도 물을 무서워 한다.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10개월 정도 배웠다. 사실 물을 극복한다는 의미보다는 허리가 안 좋아서 운동 차원으로 수영을 택한 것이었지만, 이참에 물의 공포를 극복하자는 취지도 강했다. 하지만 10개월 배운 수영은 그로부터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기생충>이 보여주는 계급은 모두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이었다. 반지하 집도 그렇지만, 무엇을 해도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가난도 그랬다. 막 결혼해 아무것도 없이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때의 우리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참혹했던 장면은 밤늦게 대저택에 찾아온 문광(이정은)이 벨을 누르는 신이었다. 비굴한 웃음을 띠며 들어온 그는 허겁지겁 지하로 내려갔다.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간 미로 같은 공간에는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 사채업자를 피해 숨어 사는 남편은 그곳이 편하다고 말한다. 살 수 있다면 그곳에서 계속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한다.

기택네 가족과 문광네 가족의 바람은 전혀 색다른,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두 가족의 가난한 현실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지며 상대방을 향한다. 분노의 칼날은 목적성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약자의 분노는 전혀 우아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방식으로 제멋대로 마구 날뛴다. 문광의 남편 근세의 분노나 기택의 분노가 그렇다.

미국에서 영화평론가들은 점점 가속화되는 빈부 격차와 계급 격차를 영화가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의 영화가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현실 그 자체였다. 이제는 이전의 힘들었던 기억은 많이 퇴색됐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격차와 점점 더 극복하기 어려워진 현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각본상 수상 소감에서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첫 오스카"라고 하며 감사를 표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감에 감동을 받았다. 또 "같이 후보에 오른 감독들과 트로피를 5 등분해서 나눌 수 있으면 나누고 싶다"고도 말했다. 내 것, 나의 성취라는 생각보다 영화적 영향력을 말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오스카의 영예가 주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채널은 평소 전혀 선호하지 않는 채널이지만 딸의 말대로 '국뽕'의 마음가짐으로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아 시상식을 내내 지켜봤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마치 나의 마음이라도 되는 양 뿌듯했다. 밤새 축하주를 들이키며 맘껏 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 <기생충> 관계자들께, 영화팬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기생충 봉준호 오스카 지하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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