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당거래>와 <내부자들> <공공의적2> <넘버3>와 tvN 드라마 <비밀의 숲> MBC <오만과 편견> SBS <펀치> KBS 2TV <마녀의 법정> MBC <히트> 등에서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은 모두 검사였다. 이 작품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검사 캐릭터가 특정 사건을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물론 위 작품들에 등장하는 검사 캐릭터들이 모두 '선역'은 아니지만). 이처럼 검사는 범죄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 매우 좋은 직업군이다.

하지만 11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검사내전>은 조금 성격이 다른 드라마였다. <검사내전>에서 검사는 대형 사건을 해결하는 정의의 수호자나 거대 권력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는 악당이 아니었다. 대신 주변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 그려졌다. 비록 SBS <낭만닥터 김사부2>와 tvN <블랙독>에 밀려 시청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검사내전>은 무거운 사건을 다루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검사내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진영지청 형사2부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이선균과 정려원은 말할 것도 없고 김광규, 전성우, 이상희 등 검사 역할의 연기자들과 안창환, 안은진 등 수사관 및 실무관 역할의 배우들도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시청자들에게 평소와 다른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 인물은 인간적인 부장검사 조민호를 연기했던 배우 이성재였다.

승승장구하던 배우 이성재, 인생작(?) <공공의적>을 만나다
 
 영화 <공공의적>의 한 장면.

영화 <공공의적>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1020세대의 젊은 대중들은 이성재는 악역 연기를 주로 맡는 연기파 배우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성재는 지금의 정해인이나 이종석 등 꽃미남 배우들 못지 않은 '로맨스의 왕자'였다. 특히 1998년 KBS 드라마 <거짓말>에서 보여준 배종옥과의 애절한 멜로 연기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종종 드라마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같은 해 개봉됐던 그의 영화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와 호흡을 맞췄다. 또 이성재는 1999년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야구 선수 출신의 리더 노마크를 연기했다(당시엔 유쾌한 코미디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만약 요즘 시대에 개봉했다면 <주유소 습격사건>은 '비현실적인 전개'나 '범죄 미화' 등으로 적잖은 논란이 됐을 것이다).

이성재는 한창 흥행 배우로 명성을 쌓아가던 1999년 말, 어느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출연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쓴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였다. 지금이야 "봉준호 영화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플란다스의 개>부터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재평가됐지만 당시만 해도 <플란다스의 개>는 전국 10만 관객에 그치며 주목받지 못했다.

이성재는 2001년 (한창 열심히 활동하던 시절의) 고소영과 함께 출연한 <하루>와 차승원, 김혜수와 함께 출연한 <신라의 달밤>을 통해 영화 배우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이성재는 2002년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선택을 감행했다. <공공의적>에서 겉으로는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지만 뒤로는 부모의 재산 상속을 노리고 직접 부모를 죽이는 폐륜아 조규환을 맡은 것이었다.

이성재는 당시 끔찍한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실제로 이성재는 <공공의 적> 개봉 이후 멜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물론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때마침 한국 영화계는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등 '연기 괴물'들이 차례로 등장했던 시기였다. 이성재가 멜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한 이후,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검사내전>에서 인간적인 면모 뽐낸 중견배우
 
 영화 <홀리데이> 스틸 컷.

영화 <홀리데이> 스틸 컷. ⓒ 롯데 엔터테인먼트

 
이성재는 <공공의 적> 이후 <빙우> <바람의 전설> <신석기 블루스>에 차례로 출연했지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2006년에는 1988년에 있었던 지강헌 탈주사건과 인질극을 모티브로 한 <홀리데이>에 출연해 또 한 번 큰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홀리데이>는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미화라는 비판 속에서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 

<공공의 적> 이후 10년 가까운 슬럼프를 겪은 이성재는 2013년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진솔한 기러기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며 극적으로 재기했다. 같은 해 드라마 <구가의서>에서 악역인 조관웅을 연기한 이성재는 작년 tvN에서 방영된 <어비스>에서도 천재 외과의사와 사이코패스 살인마 사이를 오가는 오영철을 연기했다. 

<검사내전>에서 이성재가 연기한 조민호 부장검사는 <공공의적> <구가의서> <어비스>에서 선보인 캐릭터와는 전혀 달랐다. 조민호 부장검사는 잔소리도 심하고 욱하는 성질도 버리지 못하는 기성세대지만 후배를 위하는 마음이 남 다른 속 깊은 직장상사다. 특히 동기이자 앙숙인 형사1부의 남부장(김용희 분)이 형사2부 검사들을 혼내기라도 하면 언제나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부하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조민호 부장의 진가는 큰 형 같았던 김인주 지청장(정재성 분)이 수원으로 떠나고 온갖 기득권을 누리는 최종훈 지청장(김유석 분)이 부임하면서 빛을 발한다. 조민호 부장은 부하직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새 지청장에게 무릎을 꿇다가도 부하직원들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다. "후배들 앞길 막는 선배가 되느니 그냥 검사 안 하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이성재의 눈빛에서 비열함 따윈 찾을 수 없었다. 10년의 슬럼프를 겪은 이성재는 지금도 여전히 여러 배역을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훌륭한 배우라는 걸 증명했다.
 
 JTBC <검사내전>의 한 장면. 조민호 부장검사는 자신의 안위보다 부하직원들의 존경을 선택하며 지청장에게 사표를 던졌다.

JTBC <검사내전>의 한 장면. 조민호 부장검사는 자신의 안위보다 부하직원들의 존경을 선택하며 지청장에게 사표를 던졌다. ⓒ JTBC

이성재 검사내전 조민호 부장검사 공공의적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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