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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봉
 이은봉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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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나를, 내 속창아리를
   여기 이렇게, 뻘겋게, 시뻘겋게
   마구 토해 놓았나,
   함부로 뒤집어 엎어버린 채!
         -이은봉 디카시 <영산홍 꽃무더기>


영산홍은 지금은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본래는 일본에서 자생하는 꽃이었다.

문헌에 의하면 이 꽃나무는 세종 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일본철쭉 두어 분을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보았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일본철쭉은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고, 다른 철쭉은 못생긴 여자의 대표인 모모(嫫母)와 같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다.

조선초부터 영산홍으로 불리었는데, 조선 중후기로 오면서는 선비들도 즐기는 꽃으로 알려지며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라는 것이다. 지금은 정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영산홍이다. 영산홍 꽃은 깔때기 모양으로 위쪽이 다섯 개로 갈라져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은봉 시인은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 꽃무더기를, 속창아리를 벌겋게 시뻘겋게 마구 토해 놓았다라고, 그것도 함부로 뒤집어 엎어버리 채라고 일갈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속창아리는 속창자의 사투리이다. "그것들이 잘났다고 나서는 꼴을 보면 나는 속창아리가 뒤집힐 지경이다."라는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이 뒤집어진다라는 말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정도를 넘어서 열불이 나는 상태이다. 시쳇말로 머리 뚜껑이 열리다는 의미이다.

한편 "속창아리가 없다", "속창아리가 빠졌다"라는 말도 있다.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오는 "장사해 묵자면 속창아리럴 다 빼놔야 헌다는 말도 있제만 그려도 농사꾼덜언 배곯코 살아도 장사꾼덜언 다 하로 세 끄니 찾아묵고 사는 법 아니여."에서도 확인되듯이 살아가지면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없음을 일컫는 의미다. 이 디카시에서는 결과적으로 속창아리가 빠진 형국이기도 하다. 어떻게 속창아리를 읽든 이은봉 시인은 디카시 <영산홍 꽃무더기>에서 '속이 뒤집어진다' 혹은 '속창아리가 빠졌다라'는 관습화된 말을 빛나는 비유로 새롭게 빚어 놓았다.

시인 셀리가 "시인의 말은 결정적으로 비유적이다"라고 말한 것은 관습화된 굳어진 의미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역할을 시인이 해내기 때문이다. 연산홍 꽃무더기를 속창아리에 비유함으로써 사사로운 개인 감정을 넘어서 오늘의 불의한 세태에 대해 불 같은 질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디카시의 속창아리가 화자 개인이 아닌 오늘의 한국사회의 속창아리가 뒤집어짐 혹은 없음의 환유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은 영상홍 꽃무더기라는 집단성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바른 눈으로 오늘의 세태를 응시할 때 누군들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는가.

이무튼 순간의 메타포가 빛나는 디카시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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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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