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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나는 X세대, 동생은 Y세대, 신입사원은 밀레니얼 세대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끼니 세대'라며 푸념을 한다고 한다. 끼니라는 말에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당신들의 청춘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20대에 결혼한 엄마는 끼니를 준비하며 평생을 보냈다. 엄마의 끼니 없이는 아버지의 월급봉투도, 자식들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엄마는 60대까지도 '연예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이 몹시도 짧았기 때문이다. 나는 놀랍게도 그 사실을 몇 해 전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돼지고기 반찬을 앞에 두고 고구마를 드실 때, 우리에게 양보하려는 줄 알고 속상한 마음에 같이 먹자고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어머니의 뒤늦은 고백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다.

"뭐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생선은 물론이고 돼지고기도 비린내 때문에 못 먹었어. 오십이 넘어서야 돼지고기도 생선도 조금씩 넘어가더라."

우리 삼 남매는 성장기엔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를 먹었다고 한다. 세 아이의 넘치는 식욕을 감당하기 위해서 엄마는 비린내를 참고 끼니를 준비했다.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거뜬했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세끼를 챙겨 드셔야 했다. 아버지의 끼니에 대한 집착은 강박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평생 숙원이 내 자식만큼은 절대 밥 굶기지 않는 것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저녁에 술 약속이 있어도 집에서 끼니를 먹고 나가던 양반이었지. 어릴 때 집밥을 못 얻어먹고 자라서 그래. 힘들어도 안쓰러워서 내가 챙겨줬었어."

자라면서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엄마의 고단함이 안쓰러웠다.

첫 해외여행 떠난 엄마의 고백
 
 엄마의 청춘과 맞바꾼 끼니가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참으로 곤궁했으리라.
 엄마의 청춘과 맞바꾼 끼니가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참으로 곤궁했으리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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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 터울의 나와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남동생이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끼니 전쟁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막냇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우리는 수세식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겨울 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설거지를 해야 했다.

"아이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걸 어찌해냈나 싶다. 진이가 학교 마치고 내 논 도시락 설거지도 못 했는데, 너희 둘이 각자 도시락 2개씩 들고 밤 10시에 들어오면 눈앞이 깜깜했다. 요즘처럼 급식이 있나 여분의 도시락이 있기를 했나. 오늘같이 춥던 날에도 설거지를 안 하면 내일 새벽에 우리 새끼들 도시락을 못 싸는 거지. 그래도 하루도 안 거르고 했다. 어떤 때는 정말 하기 싫었어. 설거지도 밥도."

엄마는 육십을 한참 넘기고서야 10명의 어릴 적 친구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엄마! 대만에서 뭐가 젤 좋았어?"
"너무 신기하더라! 밥을 안 해도 되는 게. 호텔에 딱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싶더라. 그게 젤 좋더라."


여행 마지막 날, 할머니가 된 엄마들은 좁은 한 방에 모여서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내일 끼니 걱정이 없으니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삼 남매는 고향을 모두 떠나 객지에 자리를 잡았고, 아버지는 몇 해 전 돌아가셨다. 혼자 계실 어머니를 모두가 걱정했지만, 엄마는 슬픔을 딛고 일어섰다. 

"아침은 과일, 점심은 마을회관, 저녁은 먹고 싶으면 먹고 밥하기 싫으면 안 먹는다. 삼시 세끼 끼니 걱정 안 하니 너무 좋다. 소화도 오히려 잘 된다. 내 걱정은 말아라."

엄마의 노동이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곤궁했으리라

아내의 음식 솜씨가 좋지만 가끔 엄마 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그 마음을 꾹 참고 시골에 갈 때마다 맛집을 찾아다닌다.

"아들! 오랜만에 왔는데 엄마가 해주는 밥 한 끼는 먹고 가야지."

엄마는 이미 신발을 신으시면서 나에게 진심으로 묻는다.

"다음에. 다음에 해줘요."
"그럴래?"


웃으면 따라 나오시는 엄마를 보면 한없이 죄송스럽다.

20년 넘는 회사생활이 고되기도 했지만, 주말이나 휴가 때는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들은 남편과 자식들이 쉬는 휴일에도 끼니를 준비했다. 엄마의 끼니가 통장에 잔고로 남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에게 사랑으로 누적되었다. 엄마의 청춘과 맞바꾼 끼니가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참으로 곤궁했으리라.

끼니 걱정을 더 안 하게 된 엄마는 기어코 다른 걱정거리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이신다. 오늘은 며칠 전에 남대문에서 먹은 만두를 엄마에게 택배로 보내야겠다. 고생한 울 엄마의 한 끼를 이렇게라도 책임져주고 싶다.

엄마,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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