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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학번 윤정모  졸업사진 (오른쪽이 엄마다)
▲ 66학번 윤정모  졸업사진 (오른쪽이 엄마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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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예대(현 중앙대의 전신) 문예창작과 66학번 윤정모. 엄마의 대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등 깜짝 놀랄 만한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교과서에서 보았지만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역사 속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엄마 대학교 때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대체 얼마나 오래된 사람인 건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친일행각으로도 모자라서 전두환을 찬양했던 서정주 선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인간으로선 좋은 분이었지. 나는 전혀 몰랐어. 선생님이 친일파였는지 말이야. 친일했다는 것도 나중에 친일 문학론을 읽고 나서야 알았어. 1980년도에 선생님께서 전두환을 옹호했을 때 설왕설래했어. '전두환이 총칼을 들이밀고 강요했다', '노망이 든 거야', '엄청나게 큰 돈을 받았을 거야', '살인마를 옹호하다니, 이 나라에 함께 산다는 것이 창피하다', '이건 정말 C급 코미디다' 등 말이 많았어."

1972년 도망치는 차 안에서 들은 유신 선언

엄마는 졸업 후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문예출판사, 범우사, 동서문화사, 신태양사 등을 다녔다. 월간 <다리> 산하 범우사에 다닐 때는 주로 이념에 관한 서적들의 교정을 보았다. 이 시절에는 제목에 '혁명'이나 '의식'만 붙어도 무조건 판금이 되었다. 번역서를 많이 내던 문예출판사에서는 곡식과 식물에 대한 책 <녹색혁명>을 출판했는데 혁명이라는 단어 때문에 광고가 나간 다음 날 바로 판금이 되기도 했다. 임헌영(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씨는 <상황>이라는 책을 범우사에서 출판했고, 엄마가 그 책에 대한 교정을 보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엄마는 교정을 보면서도 내용이 어려워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1972년 유신이 발표되던 날이었다. 당시 신문사에 근무하던 임헌영씨가 황급히 사무실로 뛰어왔다.

"쿠데타입니다! 피해야 해요!"

<다리> 발행인은 당시 국회의원 김상현씨였다. 그날 편집회의를 주관하던 김상현씨는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을 자기 차로 피신시켰다. <다리> 주간이자 범우사 사장이었던 윤형두씨와 엄마, 임헌영씨가 차로 대피했다. 일행은 라디오를 들었다. 박정희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유신에 대한 선언과 취지를 낭독했고 그 순간 탱크가 광화문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가 어디였는데 탱크 소리까지 들었어?"

내가 물었다.

"3.6빌딩, 지금 세종문화회관 바로 뒤였어."
"그래서 차로 대피한 사람들 다 잡힌 거야?"
"아니, 윤형두씨가 재빨리 사무실로 돌아가서 문제가 될 만한 원고와 문서들을 챙겨 왔어. 자기들은 도피해야 하니까 그 문서들을 우리 집에 좀 숨겨두라고 했지. 이후 <다리>지가 폐간되면서 내가 숨겼던 원고도 쓸모가 없어졌어. 아무튼 그날 탱크 소리와 박정희에 제대로 놀란 나는 '유신은 불의다' 이 생각만 했어. 알잖아. 장준하 선생, 인혁당 사건 등 사람 죽이는 게 너무 쉬운 시대였거든."

  
'유신 찬양' 교정에 분노하다
 
엄마가 출판사에서  작업했던 책들
▲ 엄마가 출판사에서  작업했던 책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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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엄마는 라디오 대본을 소설로 바꾸거나 출판사에서 외주로 나오는 교정 일을 했다. 1976년 이른 봄, 엄마는 모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A씨의 소설 교정을 맡았다. 이례적인 것은 교정지가 넘어오기 전에 저자가 먼저 술과 저녁 대접을 했다. 그 자리에서 저자가 '어떤 소설을 쓰면 제법 큰 돈을 받을 수 있는데 해보겠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흔쾌히 수락했다.

며칠 후 저자의 교정지가 왔는데 그 내용이 '유신 찬양'이었다. 엄마는 교정을 보다 말고 근처 공중전화로 달려가 항의했다. '교수가 되어서 데모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몰아 불일 수 있느냐'고 소리쳤다. 저자는 부드러운 말로 변명했지만 엄마는 교정지를 도로 가져가라고 일갈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쓰라고 한 소설도 그런 내용이었던 거야?"
"맞아. 집필 청탁자 이름이 박누구였는데 나중에 보니 박정희 조카인가 그랬어."
"우와, 우습고 무섭다."
"우스운 건 뭐고 무서운 건 또 뭔데?"
"그때 코가 꿰었으면 엄마의 모습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우습고, 엄마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람도 만났다는 게 무섭고..."


이후 엄마는 친일파 문학론을 보게 되었고, 엄마가 좋아했던 문인 대부분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친일파 잔재들과 거기에 기생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어진 군부 독재의 폭압에 대한 것들이 왜 여태 정리되지 않는지 늘 궁금하다고 했다. 엄마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했듯이 우리도 이제 제대로 청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내 손을 잡았다.
 
20년후 임헌영선생과 함께 친일잔재청산
▲ 20년후 임헌영선생과 함께 친일잔재청산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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