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해 근로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시위에서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외쳤는데 빵은 여성들의 임금 개정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다. 그 후 1975년 UN에서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공식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성차별,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 이슈가 많아지고 사회진출이 높아지고 있지만 뚫지 못한 유리천장, 차별, 혐오는 여전하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찾아보면 좋은 영화를 소개한다. 좋은 영화란 성별을 나누지 않고 생각을 나누는 영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서로를 자세히 알아보고, 힘을 합치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희망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여성의 날 행사가 전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좋은 영화를 집에서 시청하는 방법을 권장한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또한 소개된 영화가 다가 아니라는 점도 전한다. 생각보다 다양한 영화에서 여성의 활약상,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삶, 여성의 사랑과 꿈을 다루고 있다. 이번 기회에 숨은 명작을 찾아보는 재미도 누리길 바란다.

<서프러제트> 여성 참정권의 시작과 성과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서프러제트>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말한 20세기 초 참정권 운동을 말한다.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서 접미사 ette를 붙인 말이 서프러제트다. 이 운동의 선봉에는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있었는데 초기 평화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점차 급진적인 전투적 투장으로 변한다. 이들은 창문을 깨고 물건을 부수고 폭탄을 던지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강경하게 나아갔다. 이들은 1918년 재산을 소유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는 성과를 낸다. 그러나 1928년이 되어서야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세탁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아동노동착취,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범하고 소심했던 그녀가 어떻게 서프러제트가 되는지, 사회의 부조리에 눈 뜨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모드는 14살 때부터 세탁소에서 일했으며 초고속 승진한 24세 기혼여성이다. 초고속 승진이라고 좋은 건 아니다. 이 일은 생명력이 짧다. 왜냐하면 만성 근육통, 피부병, 기침, 두통을 달고 살며 심하면 하퇴궤양, 화상, 폐암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남성보다 일을 더 많이 하지만 월급은 동등하지 않다.

오프닝에서 흘러나오는 남성의 연설이 인상적이다. 여성은 침착하지도 조화롭지도 못한 불안정한 상태라 투표권을 주면 사회 구조가 무너질 거란 주장을 펼친다. 아버지, 오빠, 남편이 여성을 대변하는데 왜 참정권이 필요하냐는 의문이다. 투표권을 얻어 사회 중요 인사가 되려는 어처구나 없는 이유라며 폄하한다. 여성들은 십수 년간 투표권을 주장했지만 묵살되기 일쑤였고, 이에 맞선 팽크허스트가 서프러제트를 이끈다. 서프러제트는 투쟁에 동참한 여성 노동자의 피 땀 눈물이다.

그래서 여성도 자신의 운명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들은 미래를 개척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얻어 낸 값진 권리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자신부터 움직이고 서로 연대하라는 메시지는 그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948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인 2015년 여성에게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히든 피겨스> 최초여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던 NASA의 여성들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은 <히든 피겨스>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NASA의 숨은 주역이었던 여성 수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최근 히든 피겨스 주인공 캐서린 존스가 101세로 별세하며 영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은 러시아와 2인 체제 우주전쟁을 하던 냉전시대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고를 깨고, 머큐리 프로젝트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해 전설로 남은 천재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겼다.

영화는 성차별, 인종차별이 심하던 1960년 미국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차별과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잡초처럼 굳건히 자라났던 흑인 여성의 활약은 시대를 넘어 위대함으로 남아 있다. 실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틱 한 이야기는 삶이 때론 영화 같다는 생각에 무게를 싣는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 '최초'가 아니면 넘을 수 없던 높은 벽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위험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발짝 나아간 주역들은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함께 해준 팀이 있어 가능했던 성과다. 두터운 편견을 깨고, 권위에 도전한 여성들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큰 웰메이드 영화다.

<피의 연대기> 모두의 생리, 피로 하나 된 자매애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 KT&G 상상마당

   
얼마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생리대 파문을 기억하는가. 그와 맞물리며 큰 이슈가 된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여성이라면 생리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당사자조차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연한 무지는 오히려 병을 키우기도 하는데 우리가 생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영화는 생리를 통해 여성의 건강, 역사, 종교, 세대별 나라별 문화까지 알차게 요약해 넣었다. 생리와 여성의 몸을 배우는 공부는 물론 체험하는 영화다. 특히 나라별 생리대의 다양성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리컵, 해면 탐폰, 스펀지 탐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목화 생리대, 라텍스, 이끼, 파피루스까지. 생리대의 변천사가 흥미롭다.

<피의 연대기>는 제목처럼 한 달에 한 번 흘리는 피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순한 생리 다큐가 아닌 여성으로서 몸을 바로 보는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생리에 관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기억, 정치적 속성과 역사를 경쾌한 톤으로 담아냈다. 생리는 여성 건강의 바로미터기이며 부끄럽고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다. 피를 흘려도 죽지 않으며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신비로운 마법이다. 때문에 잘 살핌으로써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은 교육용 다큐멘터리로 추천한다.

<조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여성 CEO
 
 영화 <조이> 스틸컷

영화 <조이>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성공한 여성 CEO 조이 망가노의 삶을 영화화했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인생역전을 꿈꾸는 대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조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성공 가도가 흥미롭다. 가난한 주부이자 가장이었던 조이는 이혼 후 방안에만 틀어박혀버린 엄마,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아빠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이혼했으나 얹혀살고 있는 전 남편은 물론, 사사건건 심사를 비틀어 놓는 이복 언니, 어린 남매까지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진짜 인생을 포기하고 일만 하던 조이에게 어느 날 실낱같은 빛이 찾아온다. 깨진 와인잔으로 뒤범벅된 바닥을 안전하게 닦을 방법을 고안해낸다. 바로 손으로 짜지 않고도 닦을 수 있는 걸레를 개발하며 홈쇼핑 론칭으로 초대박 히트 상품이 되기까지 과정이 드라마틱 하게 전개된다.

영화 <조이>는 한 여성의 눈부신 성공기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여성으로 태어나 대표, 발명가, 엄마, 딸,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현대 여성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있다. 기대지 않고 세상과 정면돌파를 이루는 우먼 파워의 산실이자 성공한 여성 기업가의 삶을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 LBGT 영화의 교본
 
 영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 스틸컷

영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는 1999년에 만들어진 성장영화이자 로맨틱 코미디다. 여성이자 소수자로서 어떤 불편, 위험, 슬픔을 견뎌야 하는지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10대 매건의 성정체성을 의심하는 부모가 정신개조캠프에 보내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동성애는 질병이라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참된 방향(True Directions) 프로젝트는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동생애자임을 인정하기 둘째, 성정체성 재발견하기 셋째, 가족 수업 넷째, 이성 이해하기 다섯 성생활 모의실습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지침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지속적인 쇠뇌를 가한다.

여성은 핑크 치마 유니폼을 입고 가사노동이나 아기 돌봄 방법을 배운다. 남성들은 파란 옷을 입고 운동경기나 차 수리 등 이분법적 성역할을 가르친다. 색깔과 역할을 엄격히 분리하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주입한다. 정신개조를 하지 못하면 경제적인 지원을 끊겠다는 부모의 압박에 사춘기 아이들은 결국 거짓말로 애써 합리한다.

이런 기상천외한 해프닝은 몸과 마음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며 끝난다. 어느 누구도 개인의 존엄성을 건드려서는 안되며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도,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영화는 사회의 억압 속에서 여성의 주체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LGBT 영화의 교본이기도 하다.
여성의 날 서프러제트 히든 피겨스 피의 연대기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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