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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언론계가 선포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그해 9월 16일 발표한 '재난보도준칙'이다. 세월호 때의 잘못된 보도 태도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만든 것으로, 이번 코로나19에도 적용되는 지침이다.

재난보도준칙은 전문(서문)에서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제15조에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준칙은 충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사는 사태의 본질과 관계없는 중국인 혐오론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코로나19'나 '신종 코로나' 대신 '우한 코로나'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다른 언론사들도 '우한폐렴'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코로나19'나 '신종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우한'이란 명칭이 중국인과 우한시민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21일에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코로나19 보도준칙' 제2조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병명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19)'입니다. 보도 및 방송에서는 공식 병명을 사용해 주십시오.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표준 지침을 통해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 등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지역명을 넣은 '○○폐렴' 등의 사용은 국가·종교·민족 등 특정 집단을 향한 오해나 억측을 낳고, 혐오 및 인종 차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과도한 공포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월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지 않듯 대구 폐렴도 없습니다"라며 "코로나19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호소를 담은 말이었다. 혐오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표현을 자제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특정 지명을 담은 감염병 명칭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권영진 시장은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지 않듯"이라고 말했다. 물론 <조선일보>도 이젠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조선일보>는 '우한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퍼트리는 언론들
 
조선일보 1월 24일자 [만물상]
 조선일보 1월 24일자 [만물상]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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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의 첫 문장은 "깔끔하게 포장된 육류·생선을 파는 서구식 대형 마트가 중국에선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런 대형 마트를 불신하기 때문에 이용객이 적은 것이라고 위 기사는 말한다. 중국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도 손님이 많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위 기사는 중국에서 감염병이 퍼질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을 '사람과 금수가 엉키는' 인수(人獸) 공동의 생활방식에서 찾는다. 위 기사는 "광둥에선 닭치는 아파트 베란다가 드문 풍경이 아닌 것 같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과 동물이 엉키고 고온·다습한 데다 인구밀도까지 높은 것이다. 동물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전파되고 다시 사람끼리 번지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이 발생하기 좋다. 1968년 세계적으로 75만 명이 사망한 홍콩독감, 2003년 774명이 희생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0년대 조류인플루엔자가 광둥 일대에서 발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위 <조선일보> 기사는 중국의 현실과 합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사가 제정에 참여한 재난보도준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감염병 확산이 위생 수준에도 기인하지만 그보다는 면역력과 더 깊은 관련을 갖는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인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사태에 대한 이해력의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아오야마 시게하루 참의원
 아오야마 시게하루 참의원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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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코로나' 대신 '우한열' 쓰자"... 중국인에 대한 공포심 자극도

그런데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이 우연히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확산시키려고 애쓰는 세력이 존재한다. 일본 자민당(자유민주당) 등에 포진한 극우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 극우세력은 지난 한 달 동안 시진핑 주석의 일본 방문을 막기 위해서 노력했다. 코로나 19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을 반중국 감정으로 연결하려는 목적의식이 반영된 행동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시진핑의 국빈방문을 반대하다가 2월 중순부터는 아예 시진핑의 방문 자체를 반대했다. 시진핑의 방일이 결국 연기됐으니, 그들의 목적이 어느 정도 성취된 셈이다.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물 중 하나가 자민당의 아오야마 시게하루 참의원 의원이다. 지난 2월 그는 자민당 의원들이 5천 엔씩 성금을 걷어 중국에 보내는 일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 대신 '우한열'(武漢熱)이란 표현을 쓰자고도 주장했다. 그는 자민당 의원 53명을 보유한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의 대표간사로서 그런 활동을 벌였다. 보수파 국회의원 집단을 대표해서 반중국 활동을 벌인 것이다.

이렇게 극우적 지도층이 나서서 반중국 여론을 조장하다 보니, 일본 언론의 보도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19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평한 <주간 금요일 온라인판>의 2월 18일자 기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소동으로 중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도(新型コロナウイルス騒動で中国人嫌悪を助長する報道も)'는 <TV 아사히>의 1월 27일자 방송에 담긴 문제점을 지적했다.

"교토나 야마니시현 오시노핫카이 등 중국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관광명소의 영상이 나오면서,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기자가 체크한다. 대자연과 접촉하는 동안에 (마스크를) 벗은 사람을 비추면서 '마스크를 벗었습니다'라고 기자가 말하고, 같은 내용이 자막이 표시된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뻥 뚫린 앞면을 바라보며 마스크를 벗은 중국인을, 기자가 찾아내 '마스크를 벗었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에 내보냈다는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보도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 인용된 비평 기사.
 본문에 인용된 비평 기사.
ⓒ 주간 금요일 온라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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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세력에 동조해왔던 한국 보수언론

일본 극우세력이 반중국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중국의 급성장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한 일이다.

국비로 진행되는 벚꽃 행사에 지역구민들을 초대해 향응을 베푼 벚꽃 스캔들에 더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위상이 동요하는 아베 신조 총리를 돕는 한편, 코로나 19를 중국의 문제로 등치시킴으로써 도쿄 올림픽 취소론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흐름에 대해 한국 보수세력도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미래통합당도 '우한 코로나'란 표현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통합당 역시 중국인 입국 금지론을 펼쳤다.

코로나 19를 빌미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무능한 친중국 세력으로 몰아붙여 4·15 총선에 영향을 주려는 보수세력의 의도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의 분노를 북한·중국으로 돌리고 사태의 본질을 은폐며 사회 발전을 막아온 한·일 보수세력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아시아에서 반중국 분위기가 확산되어 일본 사회의 외국인 혐오론이 퍼지게 되면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 바로 재일한국인이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재일한국인들이 고초를 당해왔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일본 상황이 악화되면 재일 중국인보다 더 약한 재일 한국인의 처지가 위태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 극우의 중국인 혐오론과 보조를 맞추는 보수언론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일본 내 혐한론을 부추기는 일이 될 수 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 외국인이나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혐오를 조장하고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세력은 매우 근시안적인 행태다. 1923년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때 한국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규모 학살을 유도한 일본 정부와, 나치 집권 시절에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대량 학살을 자행한 독일 정부는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비난을 받고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고도 정치적 수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그런 전력도 한몫하고 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중국인 혐오론을 조장하는 보수 언론들은 결과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의 신변을 위태롭게 만들 뿐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와 활동 반경까지 훼손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이번 사태의 조기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불안과 불신을 유포시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태그:#코로나 19, #신종 코로나, #중국인 혐오, #언론개혁,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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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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