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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마스크 대란을 일으켰다. 마스크 공급이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젠 편의점, 대형 마트에서 마스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치과들조차 당장 마스크가 부족한 실정이다. 급기야 정부는 마스크 공급을 공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생산량 80%를 일반 약국, 농협 하나로마트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

정치는 한정된 사회적 재화를 배분하는 행위다. 우리나라에서 마스크는 하루에 1천만 개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5천만 명이 넘는 우리 인구를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치다. 생산된 마스크를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고도의 정치 행위로 마스크를 합리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정된 재화를 배분하는 여러 가지 정치철학적 논의를 소개한다.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목적론 등 서로 다른 사상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은 올해로 출간 10주년이다. 10년이 된 책이지만, 마스크 대란에 처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마스크 분배,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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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 마스크 분배의 해답이 될 수 있나?

공리주의는 국민 전체의 행복 극대화를 우선시한다. 공리주의자에 따르면 여러 정책 사이에서 고민될 때, 우린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 모로 가도 국민 행복의 총량이 가장 큰 게 옳기 때문이다.

현재 시행 중인 마스크 5부제는 공리주의에 가까운 정책이다. 모든 국민에게 마스크가 일주일에 2개씩 분배된다. 나이, 건강 상태, 거주 지역 등 다른 변수들은 상대적으로 덜 개입된다. 국민 한 명, 한 명은 어쨌든 마스크를 착용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환자 위주의 마스크 공급보다 '마스크 5부제' 아래에서 국민 전체의 행복감이 가장 높다.

문제는, '공리주의적' 마스크 5부제에선 꼭 필요한 곳에 마스크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령의 중증환자들이 몰려있는 요양병원에선 마스크가 부족해 안달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구매해 독거노인들에게 배포하던 마스크도 정부가 공영으로 전환해, 독거노인들은 마스크를 구할 길이 막혔다. 전체 공리를 위해 취약 계층이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행복 총합을 늘리다가 누군가 희생될 수 있다는 걸 공리주의의 단점으로 꼽는데, 딱 그 모양새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들 간 자유로운 거래를 추구한다. 자신이 만든 마스크에 어떤 가격을 매기든 뭐라 할 수 없다. 내가 번 돈으로 비싼 값 주고 마스크를 구매해도 문제없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마음이 맞으면, 얼마든 거래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사적 거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이 균형적인 시장 가격 아니던가. 이들에 따르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는 건 자유를 침해하는 주제넘은 행동이다.

하지만 자유지상주의는 판매자만의 자유인 게 문제다. 가격 폭등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구매자에겐 자유가 없다. 마스크 하나를 1만 원에 공급한다고 하자. 이때, 구매자들은 과연 진정한 자유의지로 돈을 꺼내 드는 것일까? 아니다. 건강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꺼낸 것에 가깝다. 소비자들이 마스크 폭리에 분노하면서도, 억지로 지갑을 여는 이유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와 목적론이 생각하는 마스크 분배 정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나의 직업, 성별, 나이, 건강 상태 등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 뒤로 가보자는 것이다. 장막 뒤에선 모두가 원초적으로 동일한 상황이니, 여기서 합의된 게 정의로운 분배 원칙이다. 마스크 품귀에 닥친 지금, 이들은 무지의 장막에서 우리가 어떤 합의를 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장막 뒤에서, 우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마스크를 배분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극빈층에 속해도,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면역력이 약한 환자일 때도 마스크를 넉넉히 받아야 한다.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이처럼, '낮은' 이들도 '반드시' 마스크를 받아야 함을 역설한다.

따라서 이들은 마스크 5부제 하에서도 요양병원, 독거노인에게 마스크가 돌아가게 조치를 할 것이다. 2개 살 수 있는 마스크를 1개로 줄이든, 마스크 10부제로 전환하든, 재화가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하니까. 행복 총량이 높아도, 낮은 자들이 마스크를 얻지 못하면 정의롭지 못하다.

목적론에 따르면 재화는 그 목적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고급 플루트엔 좋은 연주란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 재화는 플루트를 가장 잘 부는 사람에게 가야 한다. 축구장엔 축구란 목적이 있다. 그 때문에 축구장은 공을 잘 차는 이에게 돌아가야 한다. 해당 재화의 목적을 살피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목적론적 마스크 분배를 위해선 마스크의 목적을 살펴야 한다. 마스크의 목적은 병균과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는 걸 막는 것이다. 즉 건강을 사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균과 바이러스의 침투에 약한 이들에게 마스크가 돌아가야 한다. 면역력이 약한 취약 계층, 다양한 보균자와 사투를 벌이는 일선 병원들이 대표적이다.

요약하자면, 공리주의는 취약 계층의 희생이 담보돼야 한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이 마스크를 구매할 진정한 자유를 침해한다.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의 치명적 약점이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낮은 이들에게도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목적론은 마스크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취약계층과 병원에 먼저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스크 5부제, 꼭 정답일까?

마스크 대란을 보며 강원도 영월에 사는 아흔 가까운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글씨도 못 읽고, 거동도 불편하며, 혼자 사는 당신이 마스크를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자체가 조금씩 챙겨준다지만, 마스크가 공용으로 전환돼 언제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마스크 분배 정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다. 대다수 시민은 지지를 보낸다. 어쨌거나 싼 가격에 마스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중앙 정부가 마스크를 통제해, 지자체조차 마음대로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다. 관할 지역 취약 계층에게 배포되던 마스크도 끊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지팡이 짚고 마스크 사러 나온 노인들도 있다. 마스크가 반드시 필요한 요양병원, 치과에도 마스크가 없다. 이건 정의롭지 못하다.

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와 목적론에서 마스크 분배 정의를 찾아보려 한다. 이에 따르면, 지금처럼 독거노인, 요양병원 등 취약계층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져야 한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우리가 이룰 합의이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 사수'란 마스크의 목적엔, 취약계층이 가장 적합하다. 즉 면역력 약한 취약계층에겐 '무조건' 마스크가 배분돼야 정의롭다.

요양병원, 독거노인 등에게 마스크가 먼저 분배되면, 일반 시민들은 불편을 느낄지 모른다. 마스크 5부제가 10부제로 바뀔 수도 있다. 2개씩 사던 마스크를 1개로 줄여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회적 재화는, 낮은 곳으로도 '반드시' 흘러 들어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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