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팔공산에 위치한 우리집
▲ 팔공산에 위치한 우리집 팔공산에 위치한 우리집
ⓒ 박영숙

관련사진보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벽하게 하고 있는 대구의 1인이다. 팔공산 아래 동네에 살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남편과 아이 둘은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간당간당한 것은 매일반이다.  

산동네에 살고 있는 여유로 이곳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고도 산책을 나갈 수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코로나19에게 아직 '미지의 땅'이다. 주말이 되면 시내에서 아파트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팔공산 도로에 줄을 잇기도 한다.

시어머니 계시는 요양원에 간식을 보내고

대구 상황에 대한 숨 가쁜 뉴스를 접하며, 큰 긴장감 없이 편히 지내는 데 대한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뉴스 보기와 집청소, 마당 정리, 남편 도시락 싸기 등 손가락에 부스럼이 생길 정도로 일하긴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주변분들 이야기를 접하면 마음이 많이 옥죄인다.

"2월 17일부터 학원 문을 일찌감치 닫았어. 그게 잘한 일 같더라구. 월세 140만 원 등 문 닫고도 한 달 나가는 돈이 200만 원이야. 더 이상 수강료가 들어오지 않으니, 언제까지 마이너스를 안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18년간 학원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야."

속독학원을 하는 친구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잡초를 뽑으며 나눈 이야기다. 봄이 오니 잡초는 바이러스만큼이나 재빨리 마당 한 가득 진을 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양쪽 집안 어른들이다. 시어머니는 큰 길 건너편 요양원에 계시는데, 면회가 금지된 것이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우리 내외만 알아봤는데, 이제 어머니한테 가면 우리도 몰라보지 싶다."

치매 병중이신 어머니를 걱정하며 남편과 푸념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은 200명이 넘는 노인들에다가 그들을 돌보는 직원이 100명이나 되어서, 자나 깨나 코로나19로부터 무사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안녕들 하신지요? ○○○씨 며느리입니다. 벌써 5주 이상 면회를 못 가서 엄니 안부도 걱정되지만, ○○요양원 근무자분들의 고생과 건강이 엄니 못지않게 걱정됩니다. 고맙습니다. 뭔가 마음을 보태고 싶은데, 저희가 갈 수도 없고 해서, 상큼한 컨디션 유지하시라고 다크초콜릿을 조금 보냈습니다. 모자라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보호자님! 너무 많이 보내주셔서 선생님들 너무 좋아하세요. 보호자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잘 먹겠습니다. 행복해요~ ^^" 


자그마한 성의 표시에 대해 요양원 간호사님께 분에 넘치는 답장을 받았다. 그만큼 고달팠다는 반증이리라.

근처 경산에 홀로 계시는 친정아버지는 올해 구순이다. 그곳 역시 얼마 전에 '재난관리지역'이 되었다. 다행히 요양사가 지금까지는 무탈히 왕래하고 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으신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마스크도 필요 없어서 긴 줄 행렬에 서계시지 않아도 된다. 장을 좀 봐서 들르겠다는 내 말에 친정 아버지의 말씀이 단호하다.

"동네 사람들이 외부에서 오는 거 싫어할 수 있다. 경로당도 문 걸어 잠그고 전부 집에만 들어앉아 있다. 오지 마라."

친정아버지 가져다 드리려고 싸 놓은 보따리를 다시 풀었다.

지역 병원에 부족하다는 항균 티슈를 보내고
 
경북대 병원에 항균티수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접하고 항균티슈를 보낸대 대해 물류팀 담당자가 보내온 메시지와 사진
▲ 항균티슈 기증에 대해 보내 준 감사 메시지 경북대 병원에 항균티수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접하고 항균티슈를 보낸대 대해 물류팀 담당자가 보내온 메시지와 사진
ⓒ 박영숙

관련사진보기

 
대구 상황이 특히 안 좋다 보니, 다른 지역에 있는 지인들과 외국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나 메시지가 우리 집에도 자주 온다. 대구를 돕겠다고 고구마 상자를 보내오고, 의료진들이 감염될 각오를 하고 속속 대구로 들어오기도 한다.

넘치는 환자들을 받아주기 위해 광주와 경남, 서울 등지에서 병상을 내어주는 일들이 연일 가슴을 뜨겁게 했다. 달빛동맹을 맺은 광주에서 온 119구급차를 시내에서 보기도 했다. '대구 폐렴'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보다 '대구 파이팅!', '힘내라 대구!'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우한을 봉쇄한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대구에 그러지 않았다. 동장이 직접 마스크를 전달해 주려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우리 집까지 왔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왔다.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받은 후로 이렇게 정부 배급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참으로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먹먹했다.

'밖에서도 우리 대구를 돕는데 우리 지역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무시장에 가서 남천과 반송을 사서 마당에 심었다. 장미와 능소화도 담장 근처에 심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울했던 기분을 통째로 날린 뿌듯한 경험이었다. 지역 병원에 항균 티슈조차 부족하다는 보도를 접하고, 기부코너를 통해 필요한 티슈를 주문해서 부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있을 하자!
 
택배기사님께 드린 음료수
▲ 홍삼엑기스 택배기사님께 드린 음료수
ⓒ 박영숙

관련사진보기


요양원 종사자들을 감동시켰던 다크초콜릿을 지인 간호사를 통해 ○○병원에도 드렸다. 택배기사님들께는 홍삼엑기스를 포스트잇 메모와 함께 드렸다. 착한 임대인 노릇을 하고 싶어도 건물은 소유하고 있지 않아 대신 학원하는 친구 월세를 부담해주었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소확행'을 하다 보면 '나비효과'를 낳을 수 있겠지 기대하면서.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종식되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대다수의 국민들, 특히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희망한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요즘, 우리의 원래 일상이 어떠했는지는 돌아보는 시간도 됐다. 늦게 마치는 직장, 학원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도처에 발달한 밤문화로 인해 귀가 시간이 오후 10시 이전이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집에서 식구들 기다리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분들과 프리랜서 종사자께는 미안하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식구들이 정상적으로 퇴근하는 일상을 맞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식구 모두가 앞산에 오르기도 했다. 이것만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천과 반송을 심고 나서 밤에 비가 내렸다. 아침에 풀잎마다 물기가 반짝인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뜻이리라.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대구에 사는 나의 코로나19 대처법이다.
 
마당에 심은 반송
▲ 반송 마당에 심은 반송
ⓒ 박영숙

관련사진보기

 

태그:#코로나19, #코로나, #대구코로나, #힘내라대구, #대구 파이팅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