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광주전라

포토뉴스

순천 원달재에 활짝 피어있는 매화. 산등성이의 구름과 어우러져 환상경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이다. ⓒ 이돈삼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이다. 거리에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경제는 휘청거린 지 오래다. 일상도 매한가지다. 코로나19 탓이다.
 
코로나19를 뚫고 달려온 새봄만이 예외다. 산하를 하얗게, 샛노랗게,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에도 어느새 새싹이 나오고 있다. 초록의 물이 들기 시작했다.
 
원달재를 넘는다. 원달재는 승주에서 월등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하얀 구름이 스멀스멀 산등성이를 넘고 있다. 비구름은 화르르 피어난 매화를 어루만지고 있다. 수줍은 매화가 상그레 미소 짓는다. 풍경이 장관이다. 매향을 머금은 구름이 한동안 발길을 붙잡는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걱정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산의 중턱인데도 겉옷이 거추장스럽다. 산정을 넘던 봄바람과 구름이 불러왔을까.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비구름이 넘고 있는 원달재 아래 순천 월등마을 전경. 지난 3월 7일 풍경이다. ⓒ 이돈삼
   
산골로 매화를 보러 가는 길이다. 강물을 따라 흐르는 섬진강변의 매화 꽃물결이 부담스런 요즘이다. 올봄엔 꽃축제가 취소됐지만, 그래도 주말과 휴일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매화의 유혹을 견뎌 낼 재간은 없다. 자분참 집을 나섰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계월마을
 
목적지는 계월마을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매화마을이다. 지리적으로는 구례에 가깝다. 순천에서 구례 방면으로 송치를 넘으면 왼편에 있다. 구례구역에서 순천 방면으로 괴목역을 지나도 된다. 송치 못미처 오른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 매화가 흐드러져 있다. 섬진강변의 청매실농원처럼 산자락이 아니다. 평지에 넓게 퍼져 있다. 마을 주변이 온통 매화밭으로, 마을과 매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순백의 매화가 마을의 돌담과 조화를 이뤄 더 멋스럽다. 유연하게 구부러진 산길과 밭두렁이 매화밭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어 더 정겹다.
  
상업적이지 않은 소박한 계월마을의 매화. 봄비가 내린 지난 3월 7일 오후 풍경이다. ⓒ 이돈삼
   
봄비가 내리는 계월마을의 돌담 풍경. 지난 3월 7일 오후다. ⓒ 이돈삼
 
섬진강변의 매화는 3월 들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계월마을의 매화는 이제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 계월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섬진강변의 매화보다 늦게 핀다. 섬진강변의 매화가 시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흐드러진다.
 
지난 3월 7일,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주말에 계월마을을 찾았다. 봄비가 내리는 탓도 있지만, 정말 한적했다. 찾는 발길이 거의 없었다. 마을의 돌담길과 밭두렁을 싸목싸목 거닐며 차분히 매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봄날의 호사를 맘껏 누렸다.
 
꽃도 다른 데보다 소박하다. 상업적이지 않다. 계월마을은 소문난 여행지가 아니다. 마을에 변변한 문화재나 유적이 없다. 가게도 하나 없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매향도 훨씬 더 그윽하다. 마을과 매화밭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랑산과 문유산, 병풍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매화 향이 쉽게 이 산을 넘지 못한다. 매향이 마을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매향이 더 깊고 그윽하다고 '향매실마을'로 불린다. 매화를 보면서 진한 매향을 가슴 깊이 호흡할 수 있다.
 
하늘 파란 날, 매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더없이 좋다. 맑은 날은 물론, 비가 내려도 운치가 있다. 호젓한 매향에 취해 잠깐 낮잠이라도 자면 더 좋다. 나만의 매화밭이다.
  
섬진강변에 활짝 핀 광양 청매실농원의 매화 풍경. 지난 3월 8일 해질 무렵이다. ⓒ 이돈삼
   
계월마을에 세워진 이택종 선생 공적비. 이택종은 순천매실 산업화의 효시로 통한다. ⓒ 이돈삼
 
순천매실은 광양보다도 조금 늦다. 광양매화는 1930년대 김오천 선생이 일본에서 매실나무를 가져와 심은 게, 지금 청매실농원의 출발이었다. 김오천은 홍쌍리 명인의 시아버지다.
 
순천매화는 1960년대 중반에 처음 심어졌다. 계월마을 출신 이택종이 일본에서 살다가 1964년에 아주 귀국하면서 매실 묘목을 갖고 들어와 심었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보급되면서 순천 전역으로 퍼졌다. 계월마을이 순천매실의 효시다.
 
마을에 이택종 선생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그의 공적을 기려 세워 놓았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농어촌인성학교 주차장에 있다. 고인이 심은 첫 번째 매실나무는 이문삼거리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가 건강하다. 매화를 벙글벙글 피워 탐스럽다. 봄비를 맞아 조금 오긋해진 꽃도 어여쁘다.
  
이택종 선생이 처음 심었다는 매실나무. 지금 매화를 활짝 피우고 있다. 계월마을에 있다. ⓒ 이돈삼
   
봄비를 맞은 매화. 이택종 선생이 심은 매실나무에 핀 매화다. ⓒ 이돈삼
 
계월마을은 과수마을이다. 과수를 재배해서 먹고 사는 산골이다. 옛 모습이 여구히 남아 있다. 어릴 적 고향 같다. 계월리는 망월, 외동, 계영 3개 마을이 합해져 만들어졌다. 계영의 계(桂)와 망월의 월(月)을 따서 이름 붙었다. 임진왜란 때 전주 이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마을을 문유산과 바랑산, 병풍산이 감싸고 있다.
 
월등, 계월 지명도 예쁘다. 마을의 지세가 둥근 달을 닮아 월등(月燈)이다. 달그림자가 계수나무에 걸린다고 계월(桂月)이다. 밤에 달그림자가 마을 앞 산등성이에 걸리는 모습이 넋을 앗아간다. 정말이지 황홀경이다.
 
계월리는 상동, 외동, 이문마을로 이뤄져 있다. 100여 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다. 귀농·귀촌을 이유로 들어온 사람도 꽤 있다.

편의점, 모텔도 하나 없지만 참 이쁜 마을
  
계월마을을 지키고 선 느티나무 고목. 평소 마을사람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 이돈삼
   
봄비가 내리는 계월마을의 돌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 이돈삼
 
마을 가운데에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한 그루도 아니다. 두 그루다.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다. 암수가 서로 몸이라도 합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이 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의 돌담도 멋스럽다. 유연하게 구부러진 모습에서 옛 추억이 떠오른다. 반듯하지 않아서 더 정감이 가는 골목이다. 매실나무뿐 아니다. 마을에 복숭아나무, 감나무, 밤나무도 지천이다.
 
만발한 매화가 질 때쯤 복사꽃이 피어난다. 감꽃과 밤꽃도 잇따른다. 봄에서 여름까지 꽃동네를 이룬다. 초여름엔 매실, 여름엔 복숭아를 딴다. 가을엔 감과 밤을 수확한다. 과수를 재배해 생계를 이어가는 산골이다.
  
계월마을의 돌담 풍경. 시간의 흔적과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배어난다. ⓒ 이돈삼
   
봄비가 내리는 날의 계월마을 모습. 이택종 선생이 심은 매실나무 앞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 이돈삼
 
문유산 군장마을 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도 맑고 깨끗하다. 바위에 붙어있는 다슬기가 보인다. 여름엔 다슬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수심이 깊지 않아 물놀이를 하기에도 좋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찾는 발길이 많지 않다. 한적해서 더 좋다.
 
계월마을은 여행지가 아니다. 술집, 찻집은 물론 편의점, 모텔도 하나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어쩌다 찾아오는 외지인들도 '마을이 참 이쁘다'고 입을 모은다. 불편함을 외려 매력으로 꼽는다. 호젓한 곳을 찾는 요즘 여행 추세에 맞춤이다. 참참이 찾고 싶은 마을이다.
  
한옥이 줄지어 선 계월마을 입구. 최근에 지어진 집들이다. ⓒ 이돈삼
 
태그:#계월마을, #매화, #순천매화, #이택종, #순천여행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