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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십 평생 자식들 밥 지어 먹이는 일밖에 몰랐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애당초 몰랐다. 어느날 엄마가 "그때 내가 어땠는 줄 아니?"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저렸던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오늘 택배로 너한테 마스크 보냈어."

큰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다. 나한테? 마스크? 왜? 나는 '나에게 마스크를 보낸 것이 맞냐'고 재차 물었고, 언니는 나.에.게. 마.스.크.를 보낸 것이 맞다고 했다. 아… 그제서야 지난 주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언니는 내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것을 구한 우편으로 언니네 식구들이 써야 할 마스크를 덜어서 보내주었다.
▲ 언니가 우편으로 보내 준 마스크 언니는 내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것을 구한 우편으로 언니네 식구들이 써야 할 마스크를 덜어서 보내주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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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몸이 된 마스크, 식구도 못 준다? 

요즘 온통 마스크 때문에 난리다. 마스크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코로나19에 걸릴 것들처럼 말이다. 신문이나 방송은 하루가 멀다하고 마스크 품절 사태를 보도한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3~4시간 줄을 섰다', '새벽 6시부터 나와서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도 마스크를 못샀다' 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즈음 우리집에도 마스크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나는 예전에 미세먼지 대비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마스크가 남아 있어 어떻게든 아껴 쓸 참이었고 되도록 외출을 삼가할 작정이었다. 2~3시간 줄을 서면서까지 마스크를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연일 쏟아지는 '마스크 대란' 보도들을 접하니 살짝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 둔 마스크도 달랑 두 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약국이나 편의점 근처를 지날 때는 자동으로 마스크 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날도 집 근처 약국 세 곳과 편의점에 들렀는데도 마스크를 사지 못한 채로 엄마댁에 갔다. 저녁 먹고 드라마까지 늘어지게 보고 난 후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동생에게 말했다.

"나 마스크 하나만 줘. 오면서 약국을 세 곳과 편의점 두 곳을 들렀는데 마스크를 못 샀어."
"안돼. 집에도 몇 개 안 남았어. 이거 엄마 쓰셔야 돼."  
"그러지 말고 하나만 줘."


하지만 동생은 요지부동이었다. 동생은 작년 말 미세먼지가 한창 극성일 때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KF95마스크를 박스 채 구매했는데 지금도 꽤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10개나 나눠줘서 코로나 발병 초기부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던 터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해 봤지만 이번엔 아예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알았어. 나 그만 가볼게."

나는 갑작스럽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섰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는 "이거 써라, 여기 아직 2개 남아 있어" 하면서 나를 따라 일어나 현관까지 따라 나섰다. 엄마의 손에는 아직 마스크 2개가 들어 있는 마스크팩이 들려 있었다. "아냐, 엄마. 내일 나가서 사지 뭐. 갈게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엄마 집을 나왔다.
 
내 집 주변에서 마스크를 살 수 없었는데 운좋게 연천의 작은 약국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외진 곳의 약국까지 마스크가 공급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유약국은 마스크 오부제 시행 첫날에만 마스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렸을 뿐, 다음날부터는  사람들도 마구 몰려오지 않고 마스크 보유량도 충분하다고 했다.
▲ 연천의 한 약국 내 집 주변에서 마스크를 살 수 없었는데 운좋게 연천의 작은 약국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외진 곳의 약국까지 마스크가 공급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유약국은 마스크 오부제 시행 첫날에만 마스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렸을 뿐, 다음날부터는 사람들도 마구 몰려오지 않고 마스크 보유량도 충분하다고 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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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때문에 엄마 속까지 뒤집어 놓았다 

깜깜한 밤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오는데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한 장 줘도 될텐데, 식구끼리 너무 야박하네'라는 섭섭함이 솟구쳤던 것이다. 그러나 섭섭함은 그때 잠시뿐 그 일은 곧 잊어 버렸다. 그로부터 한 사흘 정도 지났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별일 없지? 아직도 화난 거 안 풀렸어?"
"화는 무슨… 나 화 안 났어."
"너 그때 화나서 가서 전화도 안 하고 오지도 않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 엄마 나 지금 운전 중이야. 나중에 전화할게."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엄마는 혼자 속을 끓이면서 나의 연락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내게 전화를 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엄마는 옛날에도 그랬다. 내가 무슨 일로 방에 틀어박히면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이유도 묻지 않았고 나오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냥 기다려 주었다. 정작 당신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팔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식들의 안색을 살핀다. 어느 자식 하나 낯빛이 안 좋으면 이유를 묻지도 못하고 혼자서만 애를 태운다. 자식이 많아 말 한 마디가 혹여 누구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일까 말 한 마디도 아끼고 고른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너무 짠해서 눈물을 흘리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철없는 애처럼 팔십이 넘은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엄마에게는 자식 다섯이 다 목구멍에 걸려 있는 생선가시이다.

어떤 날은 첫 번째 가시가 걸리고, 어떤 날은 중간 가시에 찔린다. 허구한 날 찔리고 찢어지고 상처입으면서도 삼키지도 못하고 빼내지도 못한다. 목에 걸린 가시 때문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낸다. 엄마는 그런 존재인가보다.

마스크로 새삼 깨달은 가족의 사랑, 그리고 연대 의식 
 
 마스크 5부제 시행 후 연천의 한 약국에서 구입한 마스크. 자신의 구입일에 신분증만  제시하면 전국 어느 약국에서나 2장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다.
▲ 마스크 5부제 시행 이후 구입한 마스크  마스크 5부제 시행 후 연천의 한 약국에서 구입한 마스크. 자신의 구입일에 신분증만 제시하면 전국 어느 약국에서나 2장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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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닷새 후쯤 큰 언니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언니도 '마스크 해프닝'에 대해 들은 것이 분명했다.

"마스크 구하기 힘든데 왜 보내? 언니네 써야지."
"너 마스크 없다며?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 그 얘기 들으니까 짠해서… 형부랑 애들 모르게 보내는 거야."
"나 삐진 거 아닌데…"
"엄마 집에도 안 가고 전화도 안 한다며? 그게 삐진 거지."
"나 마스크 샀어. 일이 있어서 연천에 갔다가 거기 약국에서 샀어. 그날이 마침 내가 살 수 있는 날이더라구."
"그래? 잘했네. 막내도 엄마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섭섭해 하지 말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니고, 건강 잘 챙겨."


아, 왜 그렇게 눈물이 솟구치는지. 모두에게 미안했다. 엄마는 상한 내 마음이 걱정일 것이고 동생도 편한 마음은 아닐 것이다. 큰언니는 자기 식구들 쓸 마스크를 덜어서 나에게 보냈으니 그만큼 마스크를 아껴쓰든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마스크 하나 때문에 식구들에게 누를 끼쳤다. 코로나19와 마스크 때문에 작은 사달이 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의 따스함을 진하게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다.

곳곳에서 나눔과 연대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따뜻한 뉴스가 들려온다. 내가 쓸 마스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수제마스크를 만들어서 기증을 한다.

대구의 한 호텔 사장은 무료로 객실을 제공하고 의류공장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와 보호복 공장으로 전환하고 24시간 풀가동한다. 작은 연대의 움직임은 큰 희망의 등불이 되어 코로나의 종식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스크 해프닝이 내게 불러온 변화다.

태그:#팔순의 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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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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