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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18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찬호 공공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조직부장이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3.1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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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은 쿠팡맨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배송물량의 증가 탓도 있겠지만 동료 기사들은 쿠팡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본질적 원인이라고 꼽았다.

아침에 문만 열면 선물처럼 도착한 택배를 받아볼 때까지 무슨 과정이 있는 걸까.

쿠팡맨들은 하나같이 버텨낼 수 없는 배송 물량이라고 입을 모은다. 낮 배송에서 새벽 배송이 생기고, 새벽 배송도 1차 배송, 2차 배송으로 쪼개지고, 캠프가 24시간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체감하기에는 물량이 10배 이상 늘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물량이 많아지면 사람을 더 뽑으면 될 텐데 이마저도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2년을 버티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채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땅이 좋지 않아 작물을 재배하기 힘든데 거기다 씨만 왕창 뿌리면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쿠팡 측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코로나19로 급증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개인 택배 기사들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입사 후 트레이닝 기간에는 보통의 50% 정도의 물량만 배송하도록 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기사들은 신입도 베테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물량을 소화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 배송을 얼마나 빨리 하는지에 따라 계약 유지 및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다고 하니 비정규직 신분의 신입 쿠팡맨이 과연 적정 휴게 시간을 보장받으며 근무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쿠팡 노동조합은 한목소리로 새벽 배송을 중단하고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제 쿠팡과의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계약만 있고 사람은 없는 계약서를 바꾸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 택배를 받아 보는 소비자인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클릭 몇 번으로 하루 아침에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우리는, 그 편의성이 사실 누군가의 편의를 희생해서 얻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 우리는, 세상이 변하고 바뀌고 뒤집어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21세기형 전태일'을 마주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쿠팡에 있다. 사람 위에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일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시스템으로, 실제 근무 환경으로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고용주의 책임이다.

하지만 고용주가 그런 식으로 돈을 벌게 된 데에는 소비자의 도의적 책임도 있는 법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수요 없는 공급은 없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하루 아침에 새벽 배송이 나타난 게 아니고 왜 더 빨리 오지 않느냐는 소비자의 아우성이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새벽배송이 문제지만 사실 더 근본 문제는 소비자의 수요만 있으면 새벽배송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기업한테 돈 벌 궁리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회사는 다 하는데 너희는 하지 말라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소비자가 멈춰야 한다. 필요한 것은 사고 요구할 것은 하되 우리 역시 사람 위에 편의가 있는 게 아니라 편의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실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 정신이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한강의 기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속도만 봐도 그렇다. 다른 나라는 하도 검사를 못해서 확진자가 없다는데 우리는 줄 서서 검사 받는 시간도 줄이려고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진료소를 만들었다. '빨리 빨리'는 이유 없는 재촉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었고 이렇게 작은 나라를 '작지만 큰 나라'로 도약시킨 디딤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어디서나 '빨리 빨리'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빨리 지은 부실시공 아파트, 과도한 조기교육, 새벽 배송 모두 마찬가지다. 주거도 교육도 그리고 안전도 빨리 빨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조금의 기다림과 사람의 목숨을 맞바꿔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피곤한 밤 길로 쿠팡맨을 내몰아야 할까.

이번 일을 계기로 쿠팡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들 역시 우리가 소비자의 가면 뒤에서 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가면을 벗고 한 명의 노동자로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 위에 사람이 있고 싶은, 우리도 모두 또 다른 이름의 '쿠팡맨'이니까. 

태그:#쿠팡맨, #소비자, #권리,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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