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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 노조 탄압 사건' 수사 및 판결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2013년 특정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기부금 공제 내역을 바탕으로 해당 시민단체에 후원해 온 임직원들을 파악해 별도로 관리해 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향린교회 등 피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2월 28일 삼성 측은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후원내역 열람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습니다.

삼성 측의 사과에 대해 피해 시민단체들은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는 꼼수 사과"라 비판하고,"삼성 노조파괴 사건 판결에서 법원도 인정했듯이 삼성의 불법 사찰은 분명 수년간 지속적이었다. 범죄의 내용도 단순히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열람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이들은 개인정보보호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황입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서는 삼성의 불법 사찰 행태를 비판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의 목소리를 연속 4회 기고를 통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천 일 넘게 농성했습니다. 서초사옥 건물에는 사찰 범죄를 주도했던 '미래전략실'이 있었습니다. 국정농단 뇌물범죄, 회계 사기 범죄, 노조파괴 범죄, 그리고 전방위적 사찰범죄까지. 삼성의 온갖 범죄행위를 기획하고 집행을 관리했던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그 자체가 범죄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자가 바로 이재용입니다.

반올림 농성장에 대한 삼성의 사찰은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삼성 경비 보안요원들은 매시간 반올림 농성장 주변을 순찰했습니다. 그들은 무전기 너머로 실시간 보고하는 소리를 조심하지도 않았습니다.

농성장에 드나드는 피해 가족과 활동가들은 물론, 한 번 방문하러 온 이들도 삼성 건물 출입을 제한당했습니다. 누구나 드나들었던 삼성 홍보관은 물론, 빌딩 지하상가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농성장에 잠시 들른 후 딸에게 줄 케이크를 사려고 지하상가 제과점에 들어가려다 가로막혀 이유를 묻는 이에게 삼성의 경비 직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까 천막에서 나오셨잖아요."

농성장에 출입한 이들의 동선은 삼성 경비직원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됐습니다. 반올림 농성장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여러 대의 감시카메라가 바로 그런 데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고, 한 두 사람이 겪었던 일도 아닙니다.

삼성과 오래 맞서 온 직업병 피해자들은 삼성이 얼마나 꼼꼼하게 사찰하고, 집요하게 괴롭혀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딸의 죽음을 알리며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으로 제기했던 황상기 아버님이 첫 번째 피해자였습니다.

삼성은 치료비를 주겠다며 사표를 받아간 후, 유미씨 백혈병이 재발해 치료비가 간절해졌을 때 약속을 깨고 500만 원을 건넸습니다. 그랬던 삼성이 황상기 아버님이 시민사회와 만난 것을 사찰을 통해 파악하자마자, 관계 단절을 조건으로 10억을 제시했습니다. 삼성의 이런 행태는 오랜 기간 반복됐고 KBS <추적60분>에 그 장면이 찍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삼성의 꼼수 사과

직업병 피해자들은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당해왔습니다. 치료비 때문에 돈이 급한 피해자들에게 반올림과 관계 끊기를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하는 건, 삼성의 매뉴얼 같은 것이었습니다. 직업병 피해자를 위해 삼성의 유해환경을 증언하려 했던 이들도 삼성의 사찰과 괴롭힘 때문에 마음을 접곤 했습니다. 삼성의 회유가 어찌나 심했던지 재판에서 삼성 측 증인으로 나타나 반올림에 했던 얘기와 정반대의 증언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삼성의 사찰은 피해 가족을 도왔던 이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증거가 없었을 뿐 모두가 짐작했던 그 범죄가 지난해 삼성의 노조 파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심적 고통은 작지 않았습니다.

그 더러운 눈과 귀로 내 삶과 내 주변을 어디까지 엿보았을지, 훔쳐본 내용을 어떤 더러운 계획 속에서 검토하고 논의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합니다. 황상기, 이종란, 공유정옥, 엄명환, 이름이 드러난 건 몇 사람이지만, 삼성의 사찰이 이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범죄내용을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꼼수 사과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요구합니다. 직업병 피해가족과 활동가들, 반올림을 도왔던 조력자들에 대한 사찰 기록, 사찰한 반올림의 모든 활동과 이를 논의한 내용 일체를 삼성은 반올림에 알려주십시오. 그것이 삼성이 사찰 범죄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자,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입니다.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반올림, #삼성사찰, #미래전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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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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