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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해상에서 발견된 아파트 4층 높이의 참고래에 대한 부검이 3일 오전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9년 12월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해상에서 발견된 아파트 4층 높이의 참고래에 대한 부검이 3일 오전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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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였다. 제주 비양도 인근 바다에서 죽은 고래가 바다를 떠다니다 어부에게 발견되었다. 바다의 로또, 수천만 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가십성 보도가 이어졌다. 누군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부러움 섞인 논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반전이 생겼다. 밍크고래인 경우 발견한 이가 처분하여 목돈을 쥘 수 있었지만, 다른 어종인 경우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동원된 전문가들은 DNA 조사 결과를 근거로 밍크고래가 아니라 참고래라고 판단했다. 로또라던 행운이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어선에 끌려 포구로 들어온 고래는 어린 암컷이었고, 길이 12.6m, 무게는 약 12t이었다. 거대한 크레인이 참고래의 꼬리에 묶은 줄을 들어 올리자, 아파트 4층 높이의 거대한 몸이 거꾸로 수직으로 드리워졌다. 다 클 경우, 길이가 20m에 육박한다니, 경이(驚異)를 넘어 경외(敬畏)로울 따름이었다. TV는 가설 천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검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어린 암컷 참고래의 거대한 몸뚱이는 천천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18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숙종조 당시 제주를 다스리던 이는 '영천 이 목사'라 불렸던 이형상이었다. 그는 참으로 다스림에 바지런했던 인물이었다. 1702년(숙종 28) 3월 제주로 부임했는데, 임기 안에 유교적 관념에 맞지 않던 제주의 거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 뜯어고쳐놓고자 했었다. 그 결과 제주의 식자층들에게서는 무한한 존경을 받았고 하층민들, 특히 제주 전래의 무속신앙을 가졌던 이들에게는 무한한 저주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그리 바빴던 이 어른이 부임하던 그 해 10월, 제주를 일주하는 순력을 시작했다. 음력 10월이었으니, 날은 제법 쌀쌀했을 것이다. 그 요란했었을 행차가 서쪽 두모리에 이르렀을 때, 바닷가에서 고래를 만났던 모양이다. 재임 동안의 그의 일기, ≪탐라록≫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보인다.


<두모촌에서 고래를 보고>

부드러운 뺨까지 이어진
층층 주름 잡힌 살,
낮은 머리 뾰족한 뼈
조롱박 같은 꼬리.

하늘로 치솟은 갈기
가지런한 억센 수염,
코에 붙은 이빨
부릅뜬 눈.

몸통은 넓고 높아
누각 세운 듯하고,
척추는 길게 휘어
굽은 제방 같구나.

수컷인지 암컷이지는
성기를 찾아보면 되고,
만근의 기름은
살찐 배에 많다지.


내용으로 보아, 제주사람들이 직접 바다로 나가 잡은 것 같지는 않고 죽어 바다로 떠밀려 올라온 고래의 사체를 본 듯하다. 과문한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의 옛 기록 중 고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관찰했던 기록은 처음이다. 실학적 사고로 충만했던 어른답게 차근차근 고래를 살펴나가며 그 크기에 놀라고 생김새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시는 이색적인 크기와 생김새에 놀라는 경이(驚異)에서 곧바로 기름이라는 쓸모, 즉 실용으로 넘어가고 만다. 맛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예전 제주사람들은 고래고기를 먹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 어른은 고래기름에 대한 지식까지는 가지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든 오래된 물건이나 자연물에도 영적인 것이 깃든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제주인 경우 유독 그 여운이 길고 짙게 남아있는 것 같다. 길을 걷다가 간혹 멋모르고 이상한 기운에 끌려 당(堂)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오래전에 버려져, 당임을 증거하는 아무런 물건이 없다 해도 본능적으로 이곳이 당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지인 중 동자석을 연구하는 이가 있는데 그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찾아낸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막걸리였다. 동자석을 살피기 위해 묘소로 들어서면 우선 무덤에 술을 한잔 붓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했다. 아직까지 만물에 깃든 영령을 인식하고 예우한다는 것, 이는 분명 제주 특유의 사고 중 하나일 것이다.

요즘 인간중심주의라는 말이 종종 회자된다.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말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까지를 인간의 소유로 여긴다는 비판이다. 근대를 넘어 현재까지 이 단어는 단 한 번도 그 지위를 의심받았던 적이 없었다. 그 탓에 우리들 역시  경이를 넘어 경외로 넘어가는 법을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듯하다. 경이를 넘어 경외까지 나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돈이 된다면, 고래정도야 얼마든지 잡을 수 있고 오름 정도야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으며 나무 정도야 얼마든지 잘라내 길을 새로 낼 수 있다고 여긴다. 먹고 사는 일, 누군가의 생계가 달렸으니 그럴 수도 있다지만, 더 심각한 일은 그러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사실이다.

바다의 로또인 셈이지만, 로또라고 말하기 전에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고 생명에게 잠깐 모자를 벗고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할 순 없을까? '환경수도'를 자처하는 곳이라면 이런 구호가 공허한 언사가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자연감수성 혹은 생명감수성 정도는 갖춰야하는 것이 아닐까? 서쪽 해안을 차로 도는 일이 새로운 볼거리로 즐거워졌다는 말을 듣고 있다. 간혹 바다 가까이에서 뛰노는 돌고래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언젠가는 쪽빛 제주 앞바다에서 물을 뿜으며 느긋하게 유영하는 고래를 만나 보는 일도 애초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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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들의 아빠. 학생이면서 가르치는 사람. 걷다가 생각하고 다시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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