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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재난은 전에 없던 형태로 출현하여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며,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고,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동시에 한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인류는, 국가는, 개인과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두드러진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 확진자별 동선공개와 개인정보 문제, 재난회복과 사회공공서비스 등 '재난이 머무른 자리'를 사유해본다.[기자말]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고 나면, 공공보건의료체계와 사회서비스의 공공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고 나면, 공공보건의료체계와 사회서비스의 공공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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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비평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2009년 저작 <지옥 속에 출현하는 낙원>(A Paradise Built in Hell, 국내에는 2012년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은 여러 종류의 역사적 재난 사례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서로를 돌보며 어려움을 이겨나갔는지 그려냈다.

많은 경우, 지배 엘리트들은 민중을 패닉에 빠져 허둥대기나 하는 '2차적 재난'으로 간주하면서 강압적 통제를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시민들의 생생하고 자율적인 에너지는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생동감을 잃곤 했다. 

나는 이 책을 1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회에서 '재난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중에 읽었다.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로는 복잡한 사회적 재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고,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걸맞는 '재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연구팀의 결론이었다. 시민참여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관료주의의 경직성, 지배 엘리트의 민중 불신을 비판하는 솔닛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의 메시지들에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었다. "매일의 일상이 이미 재난 상태라, 실제 재난이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주장이 그러했다. 매일의 현실이 이미 재난인 사람은 실제 재난이 닥치면 해방은커녕 '초특급 울트라 재난'에 처하게 된다. 현재의 코로나19 유행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정당한 제도와 권력의 공백이 생겨난 곳에서, 자율적 평화보다 카오스적 폭력, 특히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번져나갔던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제도화된 권력이자 합법적 폭력의 유일한 담지자인 국가에 대한 비판이, 국가가 끼어들지만 않으면 개인들이 알아서 협력하고 잘해나갈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 위험하기조차 하다. 

'거버넌스' 작동은 '거버먼트' 책무 위에 가능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대형 재난들, 예컨대 대구 지하철 화재, 허베이스피릿호 기름 유출, 세월호 참사, 메르스 유행 등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하거나 책임을 포기했을 때, 따뜻한 개인들의 협력으로 고통을 극복하기는커녕 문제 해결이 지연되면서 극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었다.

재난 앞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기존 질서와 제도를 넘어서는 협력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지만, 이러한 자발성과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거버먼트'(정부)의 책무성이 필수적이다. 

이는 현재의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헌혈센터로 달려갔고, 고생하는 의료진과 방역팀에게는 응원의 도시락과 간식이 답지했다. 더 필요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양보하고 안부를 챙기는 모습은 인간 존엄성의 의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따뜻함만으로는 현재의 공중보건 위기를 다룰 수 없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 상황을 정부의 힘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위기 상황일수록 '좋은 정부'가 중요하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위기소통이나 반응성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박근혜 정부에 비해 탁월하다. 그럼에도 오래된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왔던 보건의료와 사회서비스 부문 공공인프라에 대한 저투자와 저개발, 시장 의존이 그것이다.   

우선 공공보건의료체계의 취약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공공병상만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환자에게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나 적절한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 보니, 단기간에 많은 코로나19 환자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병원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역사회 돌봄, 즉 '커뮤니티 케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큰 문제로 드러났다. 만성 정신질환자들은 시설에 장기간 '수용'될 수밖에 없었고 청도대남병원 집단 감염 같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노인 요양은 민간 시설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으며, 현재 지역사회 집단감염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도 화재나 노인 학대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인과 노인 단독가구는 물론, 지역아동센터까지 문을 닫으면서 가정에 홀로 남겨진 어린이들이 돌봄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에서는 학교가 문을 닫으며 아이들의 돌봄 공백을 우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입시학원들의 휴원율은 5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의미심장하다. 
 
 공공성은 단순히 소유 주체가 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절차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가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성은 단순히 소유 주체가 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절차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가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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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 공공화 논의에 필요한 세 가지 원칙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고 나면, 공공보건의료체계와 사회서비스의 공공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보건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체계에 속해 있으니 민간병원도 사실은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은 기만적이다.

병·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요양시설이든, 재원은 공적으로 조달하지만 소유 주체가 민간이고 심지어 그 숫자가 압도적일 때, 정부는 이를 제대로 통제하거나 조율할 수 없다. 당장 모든 기관을 100% 국유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에서 최소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릿수'는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반적인 공적 통제가 가능해진다. 

둘째, 당장 공적 소유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 소유 기관들에 대한 통제와 협력 체계를 보다 꼼꼼하게 마련해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민간자원들을 위기대응체계에 편입시키는 경험을 했다.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역할분담, 협력체계가 잘 확립된 지역도 있고, 소통이 엉망인 지역도 있었다. 지역사회 돌봄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빠르고 정확한 대규모 검사체계는 공공과 민간의 수준 높은 협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 한 세기 만에 겪는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빠짐없이 대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대비의 원칙을 마련하고 사전에 민간 부문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해두는 것만으로도 초기 혼란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적 소유가 바로 공공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의료전문가들의 초기 경고를 무시했다가 유행을 증폭시킨 중국의 사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한정된 국가기관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검사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일본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공공성은 단순히 소유 주체가 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절차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가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독재, 심지어 최근까지도 반동적인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했던 한국 사회에서 국가를 공공성의 유일한 담지자로 맡겨두기란 여전히 찜찜하다. 국가 부문이든 민간 부문이든, 민주적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사회, 노동조합의 감시와 통제가 절실한 이유다.

민주적 공공성은 평소에도 국가와 시민사회가 맺는 바람직한 관계의 모습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공중보건 위기 같은 사회적 재난에 처했을 때 제도화된 돌봄과 자발적 연대가 함께 작동하여 사회의 회복력을 증진시키도록 만드는 기반도 바로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재난이 머무른 자리에서①] 코로나19 대응, 국민국가 프레임 벗어나야
[재난이 머무른 자리에서②] '확진자별 동선 공개' 어떻게 볼 것인가
[재난이 머무른 자리에서③] "조롱 말라" 권영진 시장, 우기는 황교안 대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명희님은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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