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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 크게 발달했다. 일본에서 추리 소설이 발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20년대에 이미 에도가와 란포가 데뷔했고, 전후에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크게 흥행했다. 오늘날에도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가 열렬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추리물에는 살인자가 있고, 탐정이 이를 해결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넣거나, 민속적인 요소를 넣는 작품도 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좀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도 있었다. 대개 어떤 존재가 추가되든 추리 소설의 중요 요소는 살인과 문제 해결이다.

하지만 어떤 소설은 엽기적인 살인사건 없이도 잔인하고 무서운 내용을 전개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곳을 다루면서도 읽는 사람이 식은땀을 내게 하는 소설도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이 바로 그렇다. 
 
병아리사회보험노무사히나코
 병아리사회보험노무사히나코
ⓒ 미즈키히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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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는 노동 환경에 대한 추리 소설이다. 새내기 사회보험노무사인 주인공 히나코가 회사에 대한 자문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문제의 근원을 추리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히나코가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6개의 단편을 묶은 것으로, 육아휴직, 산재,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등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히나코는 26세 여성으로, 사회보험노무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회보험노무사는 기업의 노동보험 및 사회보험 전반에 관련된 서류 작성을 대행하고, 노무에 관련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히나코는 원래 파견직으로 일하던 사무원이었다. 하지만 파견된 곳에서 모종의 사건을 겪게 되고, 이후 자신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3년간 노무사 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합격해서 노무사 사무소에서 월급을 받으며 노동과 사회보험에 대한 회사의 고민을 상담하게 되었다.

사회경험도 부족하고, 노무사 생활은 처음 하는 히나코의 별명은 병아리다. 히나코는 열정은 가득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비해 관록과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요청받은 사안에 대해 넘치는 호기심과 의욕으로 사건을 조사해간다. 어리디 어린 히나코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끝내 사건의 진실을 찾으러가는 이야기다.

이 책에 대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표지의 색깔과 캐릭터가 귀엽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히나코는 분명 귀엽고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다. 하지만 다루는 내용은 무겁다. 솔직히 책의 몇몇 부분은 읽다가 아찔한 부분이 들 정도다. 일반적으로 겪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근로계약관계에서 회사와 간부가 가지는 힘, 알력까지 표현된다.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읽어지지 않는 책이다.

주인공 히나코는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회생활 선배들이 히나코를 이용하려 든다. 히나코는 어려서 무시받고, 사회경험이 짧아서 무시받고, 여자라서 무시받는다. 하지만 어린 히나코는 사회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묘한 견제 심리나 타인에 대한 등 떠밀기는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어려움도 있다. 노무사 사무소에 자문을 요청하는 곳은 회사 측이다. 문제는 법령에 대한 자문이나 상담을 요청한 회사도 사실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노동 법령을 지키거나, 근로자를 배려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힘들다니, 그럼 그만두게 한다는 말인가요?"
"그만두게 하고 싶은 건 아니야. 내가 직접 면접 보고 뽑은 우수한 인재들이라고. 하지만 스스로 나가는 거야. 그야 그럴 만도 하지. 힘든 일이고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니까. 어쩔 수 없어."
"지금까지 그랬습니까?"
"아이를 키우는 사람? 전혀 없었어. 결혼을 하면 다 그만뒀으니까." -122P
 
히나코가 일하는 사무소는 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자문을 행한다. 때문에 소속된 노무사나 직원들은 자문을 요청하는 회사의 비위를 크게 거슬러서는 안 된다. 직접 사건에 대해 조사할 의무도 없고 회사의 감정에 대해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히나코는 이런 이중의 어려움 속에서도 갈등의 배경을 추리하고, 다른 이들이 숨기는 사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겠다는 일념 하에 자신이 아는 정보를 총동원한다. 정보가 부족하면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라도 사건에 대해 파악한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회사 측에 근로관계법령에 준수되는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 책의 배경은 일본의 회사다. 한국의 회사와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히나코가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자문이기에, 작중에서 등장하는 갈등은 우리 주변의 일터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육아휴직이라면 질색하는 사장, 비정규직 차별 등 몇 가지 사례는 너무 우리에게 가까워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폭압적이고 무례한 태도를 반복하지만 고칠 생각이 없는 상사, 타인의 예를 보고 상황을 가늠하려는 직원들의 모습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아찔하다. 귀엽게만 봐서는 큰코다치는, 살벌하고 정신이 번쩍드는 소설이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은이), 민경욱 (옮긴이), 작가정신(2020)


태그:#근로, #노동, #노무사, #일본,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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