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 20:36최종 업데이트 20.04.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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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루즈 야전병원에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있는 지중해 감염전문대학병원(IHU Mediterranée Infection)을 이끄는 디디에 하울 교수는 3월 17일 놀라운 소식을 세상에 타전했다. 2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아래 클로로퀸)과 항생제 아지트로마이신을 함께 투약한 결과, 코로나19 환자의 75%가 6일 만에 치료되었고, 투약하지 않은 그룹에선 같은 기간 10%만이 치료되었다는 자신의 임상실험 결과였다. 그날 이후 프랑스 의학계는 물론, 프랑스 여론은 의사 디디에 하울과 '클로로퀸'이라는 약을 둘러싼 논쟁의 폭풍에 휘말렸다.

많은 의사들이 24명이라는 숫자는 과학적 결과를 말하기에 지나치게 적은 숫자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또 하울 박사가 실험 결과의 주관적 해석을 방지할 수 있는 실험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과 클로로퀸이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이란 점을 근거로 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디에 하울 박사를 지지하는 의사들은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엄격한 임상실험을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더라도, 현재로서는 클로로퀸이 치료시간을 현저하게 단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이 약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클로로퀸은 1930년대에 나온 약으로, 의사들은 이 약을 잘 알고 있고, 그 부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 약을 일반의들이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처방할 수 있게 된다면 병상과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지역에서 최선의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확대→ 제한→ 확대→ 제한... 논쟁을 혼란으로 키운 정부

이러한 의학계의 논쟁을 전 국민적 혼란으로 키운 건 다름 아닌 마크롱 정부였다.

3월 17일 디디에 하울 박사의 발표가 있던 날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지금으로선 의학적으로 클로로퀸이 코로나19의 치료제로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없지만, 치료제 사용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24일에는 과학위원회의 논의 후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인 위급한 환자들에 대해서만 한정해서 치료를 허가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확대를 위해선 적어도 6주가 소요되는 정밀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에 디디에 하울 박사는 "중증단계에 돌입한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클로로퀸은 아무 효과가 없다"며 정부 방침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디디에 하울 박사로부터 클로로퀸 치료를 받고 완치된 니스 시장, 우파 국회의원 등이 하울 박사를 강력히 지지하고 나섰다. 확진 판정을 받고 펄펄 끓는 고열 속에 투병하던 간호사가 클로로퀸 투약 이틀만에 씻은 듯 나았다는 증언을 비롯, 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제로서의 탁월한 효능을 입증하는 환자와 의사들의 증언이 SNS에서 앞다투어 이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3월 26일 클로로퀸의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또 다시 다음날인 27일 병원에 입원한 중증 환자에 대해서만 의사의 엄격한 통제 하에 투약이 가능하다는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입장을 정정했다.

이러한 세간의 논란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도록 기름을 부은 사람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3월 19일 그는 디디에 하울 박사의 실험 결과에 고무되어 클로로퀸을 "의학품 역사상 가장 큰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클로로퀸 효능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 클로로퀸을 약국에서 구입해 투약한 한 60대 부부가 한 사람은 사망에, 또 다른 사람은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되기도 했다. 과다복용할 경우 심장에 위험을 가할 수 있는 부작용을 그들은 간과했다.

그러나 3월 25일, 뉴욕주의 의사 제프 젤렌코 박사가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투약한 결과, 사망자 0명, 입원환자 0명, 인공호흡기사용 0명이었으며, 500명 모두 완치되었다고 트럼프에게 자신의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하늘이 주신 재능"이라며 하울 박사의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젤렌코 박사는 "10%의 환자에게서 구토나 설사 등 경미한 부작용이 발견되었다"며 "현재로선 이 약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언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항생제 아지트로마이신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 사용 승인(3월 29일)하기에 이르렀고, 독일 바이엘사는 미국에 클로로퀸 100만정을 기증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의 클로로퀸 시장을 싹쓸이하며 사들이기에 나섰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는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클로로퀸 처방하겠다" 의사들의 반격
 

TGV 고속열차로 코로나19 환자를 이송중인 프랑스 의료진. ⓒ 연합뉴스/EPA


마크롱 정부가 과학위원회의 의견에 근거, 하울 박사의 연구결과를 불신하며 클로로퀸의 사용확대를 저지하고 나섰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3월 31일 하울 박사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모두 1291명의 환자들에 처방한 결과, 그 중 단 1명이 사망했고, 1명이 아직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완치되었다고 발표했다. 그의 병원 앞에는 매일 수백 명의 환자들이 진단과 처방을 받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정부의 통제방침에도 불구하고, 하울 박사의 처방을 따르기로 했다. 하울 박사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이같은 병원의 리스트를 SNS를 통해 전달하며, 더 많은 병원들이 불복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중이다.

한편 앙제대학병원은 3월 31일, 32개의 프랑스의 다른 병원들과 함께 참여를 희망하는 1300명의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보다 확실한 클로로퀸의 효과를 얻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약을 확대하겠다는 신중론에 서 있는 의사들이다.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마크롱 정부가 가능한 치료제의 사용마저 차단하고 나서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은 앞다투어 정부를 "살인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3월 26일엔 '코로나 희생자'라는 협회가 결성되었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맞서 초래한 수많은 스캔들을 밝히고, 시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최대한 수집하여, 정부를 대상으로 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법원에 쌓이는 고발장  

이미 그 전부터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부 관료(에두아르 필립 총리, 보건부 장관들)들에 대한 시민들 고발장이 법원에 접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1일 기준 총 11장의 고발장이 법원에 쌓였다. 

특히 정부가 일반의들이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클로로퀸을 처방할 권리를 금지하자, 여기에 항의한 600여 명의 의사들이 정부를 향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4월 3일 기준 프랑스의 확진자는 총 5만9105명이며 사망자는 4503명이다. 

야당들도 국회 차원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을 질타하기 위한 '조사위원회' 설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한 인적, 물적, 의학적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만반의 대비가 되어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의료진과 시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프랑스 정부의 행위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해 혐의로도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휘자들에게 그 잘못을 묻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소송의 릴레이를 맹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3월 26일 18개의 노조연합, 환경, 시민 사회운동 단체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독트린(정책)이 만들어온 무질서의 세계를 이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태적, 페미니스트적, 사회적"으로 새로운 질서 속에 건설될 수 있도록 모든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모으자며 당장 실천해야 하는 사항들과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의 경영을 온전히 경제적 역량에 맡김으로써,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코로나19 위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심각한 단점을 보여준다. 이 위기는 폭발할 준비가 된, 화약 위에 어른거리는 불꽃이다. 이에, 사회적 생태적 비상 사태를 인지하고 수년 전부터 경보를 울려온 우리는 정책차원의 중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이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에 신자유주의 체제를 대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점부터, 의료 인력들 보호를 포함하는, 공중 보건을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들이 시행되어야하며, 이는 경제적인 고려에 앞서 당장 실천되어야 한다. 전염병 확산을 늦추기 위해, 노동계는 시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상품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만 동원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활동은 지체 없이 중단되어야 한다.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국가의 재정적 대응은 분야에 관계없이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향하고 노조, 노동자 대표들과 그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사회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있는 심각한 위기를 피하려면 해당 기간 동안 모든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을 돕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 특히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한다."

"너무 늦기 전에, 금융 시장을 무장 해제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본 통제, 투기적 자금 운용 금지, 금융 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 마찬가지로 은행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더 엄격한 은행 고유의 업무와 금융 투기 비즈니스의 분리가 필요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금융 시장에 750억 유로(103조)를 추가로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금은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위해 쓰여야 하며, 이 자금이 2008년 이후처럼 금융시장의 투기와 긴축 재정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된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달라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공공병원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의사 지난 2월 27일, 프랑스의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파리의 공공병원 Hopital la pitie-salpetrie를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이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프랑수아 살라샤가 프랑스의 공공병원을 긴급히 구해야 한다며, 시급한 재정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 동영상 캡처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프랑스 도시엔 일시적으로 환호성이 흘러넘친다. 박수 소리와 함께 "브라보", "메르씨"… 사람들은 저마다 창가에 나와 목소리와 악기를 이용해 환호를 더한다. 코로나와의 전쟁에 맞서 몸을 던지는 의료진들을 위한 감사의 향연인 동시에, 서로 지치지 않기 위한 응원의 목소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런 응원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을.

<리베라시옹>이 3월 31일 발표한 여론 조사에서 프랑스 시민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고 답했다. 69%의 시민들은 지금의 생산과 소비시스템의 속도를 늦춰져야 하며, 70%가 금융시장과 주주들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91%가 공공 병원을 강화시키고, 88%가 맑은 물과 공기를 지키기 위한 전환을 필요로 하며, 76%가 생태다양성을 확대하고, 82%가 공공교육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수의 시민들은 경제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해온 신자유주의 집권 세력의 무능과 사회적 구멍을 코로나 사태가 명백히 입증했다고 판단한다. 로비스트들로 뭉쳐진 마크롱 정부에게 온전히 사회의 운용을 맡겼다간 이 환란을 헤쳐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건설과 함께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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