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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한국의 여러 매체에도 출연하고, 글도 정말 많이 쓰고 있다. 라디오 방송에선 다들 작가라고 소개를 한다. 하긴 에세이나 번역서도 몇 권 썼고, 특히 작년에는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이라는 소설까지 출간했으니 이 호칭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공무점(工務店) 경영자라는 본업이 있다. 공무점이라고 말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오는 한국인들이 있다. 공무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행정 관련 일을 한다고 계속 생각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쉽게 말하면 인테리어업이다. 전기, 수도, 가스 관련 설비도 다룬다.

이 일의 성패는 일을 많이 따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대금 수령이다. 써 놓고 보니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일반소매업이야 고객이 물건 살 때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니 대금 수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BtoB, 즉 기업간 거래는 약간 다르다.

각 업종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 업종은 보통 착수금 절반 정도를 받고 공사를 완성한 후 잔금을 받는다. 착수금은 상관없지만(착수금 안 주면 공사를 안하니까) 잔금은 보통 청구서를 제출한 달의 다음달 말에 결제된다.

착수금을 받지 않았다, 공사가 계속 들어왔다

그래서 괜한 잔머리 싸움이 벌어질 때도 있다. 공사 완료일이 어중간할 경우 야근을 해서라도 그 달 안에 끝내버린다. 예를 들어 오늘이 만약 4월 24일인데 공정이 90% 정도여서 이 추세로 간다면 5월 2일쯤에 끝날 것을 야근을 해서 28일에 끝내는 것이다.

그러면 29일에 의뢰인(갑)을 불러서 보여주고 바로 청구서를 작성하면 5월 31일까지 잔금이 들어온다. 청구서를 작성한 시점이 4월 29일이기 때문에 익월 말인 5월 31일까지 돈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5월 초에 청구서를 쓰기 때문에 6월말에나 잔금이 들어올 것이다.

우리같은 소규모 업자는 이 한 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빨리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갑님도 바보가 아니다. 가령 4월 28일에 공사를 끝냈으니 29일날 현장에서 만나자고 하면 시간을 끄는 것이다.

담당자가 출장 가서 없다거나 선약이 있다는 식으로, 물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에둘러 말한다. 자연스럽게 5월달로 넘기려는 것이다. 이 갑을 어떻게 요리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한데, 일단 갑이니까 기분나쁘지 않게 말하면서 읍소도 하고 뭐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

재작년 회사를 세우고 나서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좀 하다 보니 이게 보통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공언을 했다. 우리는 착수금 안 받을테니 그냥 공사 끝나면 입금기한을 2주 이내로 해달라는 식으로 영업했다. 그리고 이렇게 할 경우 일률적으로 공사대금의 5%를 디스카운트 해주겠다고 말했다.

보통 우리가 공사하는 업체들은 돈에 여유가 많은 경우가 많다. 아는 사람 위주로 하는데, 이 아는 사람들이 부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분들에게 굳이 한달 후 입금 조건 이런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일본사회의 관습이 그래왔기 때문에 그것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착수금을 안받고, 견적대금의 5%를 무조건 깎아주는 방식이 훨씬 금전적 이득이 된다. 어차피 줘야 할 돈인데, 한달 있다 주나 2주 후에 주나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5%를 깎아주는 것은 그들에게는 무조건 이익이다.

2019년 6월에 이런 식으로 방향전환을 했고, 큰 고객이 많이 생겼다. 공사가 계속 들어왔고, 착수금 안 받는다는 소문도 금세 났다. 갑들이 자기 친구들을 소개했다. 돈많은 갑의 친구들 역시 돈이 많았다. 또한 그들은 일반인이 그 세계의 내밀한 사정을 절대 알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보이는 업종에서 현금을 갈쿠리로 쓸어담고 있었다.

성매매가 금지된 나라에서 성매매가 벌어지는 이유
 
도쿄 시내의 파친코점
 도쿄 시내의 파친코점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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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초에 맡은 공사가 그런 쪽 일이었다. 도쿄의 유명 관광지 중 첫손에 꼽히는 아사쿠사 옆에 흔히 '요시와라(吉原)'라고도 불리는 '센조쿠(千束) 거리'가 있다. '소프란도(성인마사지업소)'로 유명한 특수 매매춘 거리다.

일본은 삽입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나온 게 소프란도라는 특수한 형태의 업장이다. 소프란도는 공동주택의 형태로 등록되어 있고, 내부를 들어가면 원룸 형태의 방이 보통 9~10개 정도가 있는데, 이 방을 업소 여자들이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빌리는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방을 빌려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지 않은가라는 법해석인데 실소가 터져나온다.

입구에 입욕료라고 해서 성매매 금액이 적혀 있고, 건물 밖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남자들이 서 있다. 누가 봐도 다 아는 성매매업소인데 못 본척 한다. 이런 것을 일본어로 '미나시(見做し)'라고 한다. '미나시'는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필수요소로, 이것이 소프란도나 파칭코 같은 막대한 규모의 돈이 오고가는 비즈니스와 연관되면 거대한 이권사업이 된다.

말 나온 김에 조금 적어보자면, 도박이 법으로 금지된 일본에서 파칭코는 도박이 아니라 유기업종으로 분류된다.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가게 안에서 돈으로 교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돈을 써서 오락(?)을 한 후, 자신이 획득한 메달이나 구슬을 가게의 경품(주로 금이 많은데, 이 금은 진짜 금이다)과 교환하는데, 이 경품을 가지고 근처의 경품교환소로 가서 교환하는 것이다.

실제 금이기 때문에 금을 교환소가 돈을 주고 사들이는 형식이다. 그렇게 경품교환소에 모인 경품(금)을 가게가 다시 사들인다. 가게→손님→경품교환소→가게→손님... 이 셋이 트라이앵글을 이뤄 무한루프를 한다고 해서 '삼점방식(3点方式)'이라고 부른다. 성매매가 금지돼 있지만 성매매를 하고, 도박인데 도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공사 다 마쳤는데 연락이 안된다, 아뿔싸!
  
소프란도 내부 공사 장면
 소프란도 내부 공사 장면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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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소프란도 공사를 2월초에 맡아 실제로 들어간 것이 3월초였다. 잘 아는 회장님이 소개를 해 준 곳이고, 요시하라에서 이런 점포를 8개 정도 운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현금흐름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관리회사조차 잘 아는 곳이라 무조건 공사를 받았지만, 처음해본 요시하라 소프란도는 공사가 매우 까다로웠다.

주로 경찰OB들로 구성된(이거 중요하다) 모 조합에 고급 과자를 사들고 몇 번이나 인사하러 가서 공사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 한 달이 걸렸다. 물론 뒤로 직접 현금 뇌물 주고 접대하고 그런 건 없었지만, 다른 공사들과 비교해서 확연히 달랐다.

이 조합은 150여개에 달하는 소프란도 업체가 매월 내는 조합비(상납금)로 운영되고, 이사진들은 하나같이 경찰, 혹은 공무원 출신들이었다. '아마쿠다리(天下り)'로 불리는 낙하산 인사의 실체가 중앙부처 큰 곳들이 아니라 이런 조그마한 동네에도 일일이 퍼져있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어제 공사 전과 공사 후 도면을 완성했고, 청구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어제 갑에게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안된다. 소개해준 회장님에게 연락을 했더니 "요즘 그 자식 연락이 잘 안돼"라고 말한다. 순간 안좋은 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오늘 아침에 관리회사로 전화를 했다. 그러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흘러 들어왔다.

"아, 거기 해약 통보가 얼마 전에 왔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결국 직격탄을 맞네요. 그 사장님이 이번 달에 한 업소당 5백만엔씩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6개는 정리하고 그나마 좀 되는 2개만 남겨둔다고. 당장 관두는 건 아니고 지금 연락이 왔으니까 3개월은 영업할 겁니다."
"그럼 공사 대금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음... 좀 늦게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좀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죠."
 

전화를 끊고 나니 새삼 코로나19 사태의 위력을 실감했다. 요시하라는 일본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신화가 있었다. 2009년 리먼쇼크 때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났을 때도 여긴 아무 문제 없었다고 소프란도 사장이 말했었다.

실제로 우리가 공사를 했을 때도 3월 중순까지는 손님들이 들락날락 했었다. 그런데 3월 25일 이후 아베 총리 등이 유흥업소 휴업에 대한 강력한 지시를 내리자 가장 먼저 타겟이 된 것이다. 관리회사에 따르면, 이 사태가 긴급사태 기한인 5월 6일은 물론 앞으로도 더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해약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다 알겠다. 이해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내 공사대금 440만엔은 대체 언제 어디서 받아야 하는가. 아니 과연 받을 수는 있는가. 날씨마저 화창하니 더 우울해진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맥이 풀리는 그런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테츠의 선데이도쿄 https://uenotetsuya.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코로나19, #소프란도,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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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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