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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암살 현장검증 장면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암살 현장검증 장면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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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김재규장군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그가 있어 철옹성과 같은 유신체제를 한 순간에 허물었다. 더러는 국민의 힘으로 독재자와 유신체제를 퇴진시키지 못하고 암살이라는 극한 수법을 택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식의 점잖은 비판도 없지 않지만, 그리고 뒤를 이은 신군부 전두환의 5공 등장을 예시하여, 10ㆍ26을 폄하하는 것은, 상식에서 한참 거리가 멀다.

1972년 유신선포 이후 수많은 학생ㆍ노동자ㆍ문화인ㆍ지식인ㆍ종교인ㆍ정치인 등이 반유신운동에 나섰으나 공권력으로 포장된 폭력에 희생되거나 옥고를 치르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독재의 아성은 날이 갈수록 강고해졌다.

독재자와 그 충성분자들은 더욱 악랄해지고 수법도 잔혹했다. 실제로 민주인사들의 저항은, 마차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앞다리를 들고 서는 사마귀(螳螂)에 비유되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형국이었다.

그때, 그 사람에 의한,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민주공화제와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었을지, 악몽이 그려진다. 그래저래 세월이 흘러 옹근 40년,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으나 역사의 평가는 좀체로 동굴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이다.

인도에는 북소리만 듣고 춤을 출 것이 아니라, 북치는 사람을 찾으라는 속담이 전한다. 우리는 그의 덕택으로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고 국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주권행사를 해왔다. 물을 마실 때는 수원을 생각하라는, 음수시원(飮水始源)의 가르침을 잊은 채로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 떼"라고 일렀다. 밤중에 괴한이 칼을 들고 집에 들어와 사람을 상하고 귀중품을 훔쳐가면 강도라 하면서, 국방의 임무를 맡긴 군인들이 무기를 들고 헌정을 유린하고, 나라의 곳간을 훔쳐도 지도자라 부른다면, 이를 이성적인 사회인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시해'와 '의사'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간극이 놓인다. 여기에는 10ㆍ26거사를 놓고 '확신범'과 '우발성'이라는 차이에서 벌어진 평가와 간극이다. 일제의 포악무도한 지배를 '식민지근대화'라고 포장하는 자들과 그 후예들이 박정희의 독재를 '조국근대화'라 우기고, 여기에 거대한 기득권동맹체제가 형성되면서 김재규장군은 은혜를 모르는 배덕자가 되고, 왕조시대 군주를 살해한다는 의미의 '시해자(弑害者)'로 낙인된다. 민주공화 시대에 여전히 봉건용어가 쓰이고 있다.
  
 김재규 장군(전 중앙정보부장)의 마지막 유언 "나는 기쁘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편안히 사십시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김재규 장군(전 중앙정보부장)의 마지막 유언 "나는 기쁘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편안히 사십시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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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은 지금도 저승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지 못했을 지 모른다.

"3심 재판에서는 졌지만 4심인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길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역사의 법정'은 여전히 목소리가 낮고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다.

역사의 법정을 구성하는 역사학자ㆍ언론인ㆍ연구가들의 무책임성과 '방청객들'의 책임 또한 적지않다고 본다. 40년의 세월이 아직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까.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광풍 몰아칠 때에
 홀로 한줄기 정기를 뿜어
 어두운 천지를 밝혔건만
 눈부신 저 햇살 다시 맞지 못하고
 슬퍼라 만 사람 가슴을 찢는구나
 아! 회천의 그 기상 칠색무지개 되어
 이 땅위에 길이 이어지리.


광주ㆍ전남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된 송죽회라는 모임에서 제작한 초라한 묘비명이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아직 많은 국민은 그를 '시해범'으로 인식하고, 독재자의 위업은 과대포장되어 전시관과 각종 자료에서 흘러넘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망명길에 유일하게 짐 보따리에 넣어서 떠났던 『동사강목(東史綱目)』의 저자 안정복은 말한다.

 역사가가 지켜야 할 큰 원칙은
 역사의 정통성과 계통을 밝히고
 찬적(簒賊)을 엄하게 다스리고
 충절을 드러내 주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잡고
 전장(典章)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이다.


어찌 역사가뿐일까,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새겨야 할 기본가치이고 덕목이다.

이제 40년 세월의 풍상이 지났으면 유신독재의 심장을 멈추게 한 사건과 그 사건의 주인공에 대해 공정하게 시비곡직을 가릴 때가 되었다. 기득권동맹체계가 강고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도 많다. 21대 총선결과를 보지 않았는가.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김재규장군의 삶 전체를 조명하겠지만, 그가 걸었던 권력의 과정에서 자행한 과오와 함께 숨겨있던 이력도 추적하고자 한다.

어용사학자들을 통해 사육신 중에서 유응부 대신 그의 조상 김문기를 올리고자 했다는 일부 학계의 비난이나, 박정희를 떠받들면서 행하였던 축첩문제 등 고위공직자생활과, 더불어 30년간 김재규의 집사 등을 지낸 최종대 씨의 증언대로 중정부장 등 고위직에 있으면서 축하 화환도 돌려보냈다는 청렴결백성과, 독립운동가 출신 장준하선생을 높이 평가한 부분 등에 이르기까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적고 나름의 평가를 하고자 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알토란 청춘을 박정희체제에서, 그리고 50~60대의 중장년 황금기를 그의 후계자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민주화운동의 말석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왔다. 해서 군사정권과 유신독재, 신군부의 5공체제가 얼마나 숨막히는 전율의 시대였는가를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정보기관에 붙들려가 몇 차례 고문을 당하고, 지금은 그 후유증을 힘겹게 견디고 있다. 그렇다고 김재규장군의 거사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과연 "야수의 심장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장군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내가 여기서 추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이다. '김재규장군'이라 표기한 것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임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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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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