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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을지로 세운공구상가의 한 장인이 공구를 제작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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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구역)해제를 시키고 나서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을 추진하면 여기가 도시재생이 계획대로 잘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서울 중구 세운상가 일대(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지난해 을지면옥과 제조업 공구 상가 보존 문제로 논란이 컸던 곳입니다. 논란이 지속되자 재개발 사업을 잠정 중단시킨 서울시는 여러 의견을 수렴해, 지난 3월 제조업 공구상가가 상생할 수 있는 '도시재생' 형태의 개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재개발 해제 기간(5년)이 도래한 세운 지구 내 152개 정비구역을 해제하고, 주민 협의를 통한 도시재생 형태로 개발한다는 내용입니다. 거주민과 제조업 장인들을 내쫓으면서 특정 개발업자가 이윤을 독식하는 기존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제조업 생태계를 살리고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마련한 세운 재생 방안, 시의회 반대에 부닥쳐

이 방안에 따르면, 세운 지구에서 운영 중인 제조업 9300여개 업체들도 이곳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생산 활동을 계속 이어갈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서울시 방안에 대해 '전체적인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책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듬을 부분이 많았지만, 상생과 재생이라는 방향성은 평가할 만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의 상생 방안은 서울시의회라는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정재웅, 김종부 등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재개발은 계속돼야 한다'고 나선 겁니다. 특히 정재웅 시의원은 세운 재개발(세운 3-1,4,5) 시공을 맡은 현대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정 의원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세운 재개발 사업에 참여한 경력을 자신의 선거 공보를 통해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세운 재개발에 대한 정 의원의 관심은 남달랐습니다. 지난 2월 24일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1차 회의(291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세운 도시재생 형태의 사업 밑그림을 그려둔 터였습니다. 정 의원은 먼저 골목길이 있는 세운 지구에서 도시재생을 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정재웅 의원 - "기획관께서는 현장에 가보셨어요, 한번? 골목길 한번 가보셨어요?"
양용택 서울시 재생정책기획관 - "네, 수시로 가고 있습니다"
정재웅 의원 - "골목길이 재생이 될 수 있어요?"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18년부터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하고 있고, 좁은 골목길을 어떤 형태로 되살릴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골목길이 재생이 되냐'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정 의원은 일몰이 도래한 재정비 구역을 해제하겠다는 서울시 방침에도 반대했습니다. 일몰을 추진하는 152개 구역은 5년째 사업 추진이 없었던 곳이지만, "재정비지구를 유지해야 개발이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입니다.

"해제를 시키고 나서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을 추진하면 여기가 도시재생이 계획대로 잘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노후화도 막을 수 있고 인프라도 정비할 수 있고 그렇게 진행이 될 것 같습니까? 본 위원은 그렇게 생각이 안 들어서 그래요"

정 의원의 뒤를 이어 김종무 시의원의 요구사항은 좀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세운 3-8구역과 3-10구역에 대한 재정비 지구 해제를 늦춰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재개발 할 기회를 더 주고, 그럼에도 진척이 없다면 도시재생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겁니다.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을지로 세운공구상가, 이미 철거된 세운 3-1, 4, 5 구역과 기존 공구 상가 밀집 지역 사이에는 높은 가벽이 세워져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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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판단은 (세운) 3-8하고 3-10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조금 더 기회를 주고 2년 뒤에 도시재생으로 가져갈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해도 늦지 않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판단이고요"

정재웅 의원은 이 자리에서 '세운 3-8구역과 3-10구역 재정비 촉진 지구 해제 청원'을 냈습니다. 이 청원은 지난 5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습니다. 서울시 입장에선 서울시의회가 공식 의결한 청원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는 지난 21일 세운 3-8구역과 3-10구역 등 63개 구역에 대한 일몰(재개발 구역 해제 기한)을 연장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152개 정비구역을 전부 해제하고, 상생 개발을 추진한다는 기존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사실 이런 결정도 원주민의 뜻을 온건히 반영한 게 아닙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 3-10구역의 경우, 재개발 지정 해제에 찬성하는 의견(의견제출한 공람대상자(84명)의 64% 찬성)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의견과는 반대되는 결론이 나온 셈입니다. 이 구역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는 한호건설 등 개발 시행사들은 2021년 3월 26일까지 시간을 벌게 됐습니다.

"대형건설사 출신 시의원이 결정주도, 부적절해"

이번 결정을 두고,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거셉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은 세운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시공사인데, 그 회사 출신이면서 사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시의원이 재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해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산업생태계 보존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노력하던 과정에서는 손 놓고 있던 시의회가 재개발 강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민이 아닌 건설, 개발업계 이익만을 대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재웅 서울시의회 의원은 지난 27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토지주들이 (재개발 일몰 연장)청원을 해달라고 왔다"며 "현재 (재개발)동의율 조사 자료를 보면 계속 진행하자는 비율이 높다"고 답했습니다.

낡은 건물 사이에 형성된 제조업 생태계, 이곳 떠나면 살길 없는 장인들

현재 세운 지역에는 9300여개 제조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발을 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것은 이곳 생태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재개발로 이익을 보는 개발업자가 하는 얘기입니다.

하나의 상품이 각기 다른 분류된 공정을 거쳐서 탄생하는 것처럼 이곳 세운 상가 일대는 그런 분업 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곳입니다. 부품을 만드는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이곳을 떠나면 '분업체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완전 철거가 이뤄진 세운 3-1,4,5구역에서 쫓겨난 제조업 장인들 중에는 '폐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운 재개발을 두고 반발이 유독 거셌던 이유입니다.

또다시 전면 철거형 재개발이 이뤄지면 얼마나 많은 장인들이 짐을 싸야 할 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서울의 '일자리'도 사라지게 되겠죠. 이런 사정을 가진 곳에 '오래된 건물이 많고 보기 흉하니 전면 철거를 하자'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짓입니다. 그런 논리로 진행된 재개발 역시 많은 부작용을 낳아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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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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