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요계는 이른바 '여풍(女風)'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걸그룹을 중심으로 인기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데뷔 10년차를 맞이한 에이핑크는 지난 4월 발표한 신곡 '덤더럼'으로 주요 음원 사이트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2015년곡 'Remember'이후 약 5년 만이면서 연차가 쌓인 팀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팬들의 기쁨은 두배 이상이었다. 역시 같은 달 신곡 '살짝 설렜어' 을 내놓은 6년차 오마이걸 역시 각종 음원 순위를 휩쓸면서 뒤늦은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5월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 첫 주자는 바로 태연이다. 

레트로풍 'Happy'로 5월을 시작한 태연
 
 지난 4일 신곡 'Happy'를 발표한 태연

지난 4일 신곡 'Happy'를 발표한 태연 ⓒ SM엔터테인먼트

 
여타 가수들 같은 떠들썩한 홍보도 전혀 없었지만 태연은 여전히 태연이었다. 싱글 'Happy'는 지난 4일 음원 공개와 동시에 주요 음원 순위 1위에 직행했다. 당초 3월 발표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부친상으로 인해 연기되었고 팬들의 위로와 응원 속에 약 두달 가량 늦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동안 R&B와 트렌디한 팝 사운드를 자랑하던 태연표 음악은 'Happy'에선 두왑(Doo-Wap, 미국 흑인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보컬 하모니를 자랑하는 1960년대 음악들) 형식을 추가해 현대와 복고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두텁게 쌓여진 코러스는 예전의 모습을 지녔지만 각종 악기를 풀어쓰는 방식은 요즘의 느낌을 담아내며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급격한 강약을 오가는 자극적인 방식을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섬세한 색깔의 목소리로 3분 41초 동안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널 보면 난 Happy 깨기 싫은 꿈 / 따스한 이 사랑은
추억의 한 편에 쌓여가고 / 그대 품에 안겨 잠이 들 깊은 밤
오랜 시간 속 둘만의 소원을 속삭여 봐 / 함께 있어 난 Happy 영원할 이 꿈"


당초 3월 발표가 예정되었던 만큼 가사의 내용 역시 따스한 봄기운을 물씬 풍긴다. 비록 일찍 찾아온 초여름의 더위와는 살짝 거리감이 있지만  듣는 이들은  마치 향기 좋은 차 한잔을 맛본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태연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과 빼어난 완성도가 맞물리면서 'Happy'는 발표와 동시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유 있는 2020년 상반기 걸그룹 강세
 
 지난 4월 '덤더럼'으로 돌풍을 일으킨 에이핑크

지난 4월 '덤더럼'으로 돌풍을 일으킨 에이핑크 ⓒ 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지난 4개월여 동안 가요계는 각종 OST, 보이그룹, <미스터트롯>의 틈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걸그룹들의 약진이 인상적이었다. 앞서 아이즈원은 2월 한달 동안 39만장(가온 차트 기준) 음반을 팔아치울 만큼 웬만한 정상급 보이그룹 이상의 강세를 나타냈다. 국내 시장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2년차 에버글로우는 2곡의 노래를 연달아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달성하면서 해외 케이팝 팬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3월 들어선 있지(ITZY), (여자)아이들이 그 뒤를 이어 음원과 음반 양쪽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 'WANNABE', 'Oh MY God' 등의 신곡을 통해 국내외를 평정하면서 짧은 연륜을 무색케하는 강렬함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에이핑크, 오마이걸의 활약으로 대표된 4월에는 1년 6개월의 공백기를 마감한 에이프릴이 'LALAILALA'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재평가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동시다발적인 걸그룹 중심의 대약진에는 나름의 이유가 목격된다. 기존 특징을 더욱 견고히 다진 형식의 음악(ITZY, (여자)아이들) 또는 성숙함을 드러낸 작품(에이핑크), 착실한 성장에 따른 뒤늦은 주목(오마이걸) 등 방향성은 각기 달랐지만 음원과 음반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1020세대 여성 소비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면서 그들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켰다.   

이 과정에선 인기가수들의 SNS 추천도 나름의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 4일에는 아이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소개된 오마이걸의 신보 수록곡 'DOLPHIN'이 얼마 안되어 각종 순위 급상승을 기록할 만큼 선배 음악인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편견깨고 이야기도 만들어낸 음악의 힘
 
 지난 4월 발표한 신곡 'LALALILALA'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에이프릴

지난 4월 발표한 신곡 'LALALILALA'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에이프릴 ⓒ DSP미디어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팬덤 및 인기 확장이 쉽지 않다는 아이돌 그룹의 편견을 깼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엔 4-5년 이상되면 멤버들의 개별활동 확장 및 이로 인한 완전체 활동 범위 축소 등과 맞물려 기존 인기의 유지 정도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수년 넘게 별다른 성과가 없는 팀들은 아예 활동 자체가 대폭 위축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에이핑크는 매년 1장씩의 음반 + 팬송을 꾸준히 발표하며 존재감을 유지해온 데 이어 개별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간의 내공을 십분 발휘한 신작으로 대중들을 사로 잡는 데 성공했다. 1년반 가량 그룹 활동 휴식기를 맞았던 에이프릴은 <에이틴> <어쩌다 만난 하루> 등 10대 취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한 이나은의 영향에 힘입어 데뷔 이후 오랜만에 음원 시장에서 선전을 펼친다. 개인 멤버의 활동이 팀 인기로 연결되기 쉽지 않다는 수년간의 사례와는 정반대 현상을 만들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렇듯 높은 완성도와 팬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음악,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각종 이야기들이 맞물려 하나의 사연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팀(가수)과 노래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걸그룹 중심의 여가수 강세는 5월과 6월에도 계속 흐름을 이어갈 예정이다. 태연에 이어 아이유, 1인 그룹으로 변신한 볼빨간사춘기, 트와이스, 레드벨벳 아이린+슬기 유닛 등이 새 음반, 노래 발표를 앞두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여성 가수 전성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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