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 13:02최종 업데이트 20.05.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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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는 21대 총선 서대문갑 지역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 신지예 선대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20년 동안 양대 정당의 두 후보가 번갈아 의원직을 주고받으며 견고한 지역 기반을 다져놓은 곳이었다. 인맥도, 자금도, 지원해 줄 정당도 없이 맨몸으로 나섰다. 결과는 3.23% 득표. 무소속의 후발주자로서 7명 후보 가운데 3등을 했지만 그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안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뛰었던 건 선거판에서 유권자들께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어요."


신지예는 담담하게 말했다. 스물여섯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나왔고 스물여덟에 '페미니스트 시장'을 모토로 서울시장에 출마해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에 이어 4위를 기록해 화제를 모은 사람. 이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아 '여성 비율 50%, 청년 비율 30%의 정치'를 목표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던 그가 2020년 1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직에서 사퇴했고, 3월엔 총선을 한 달 앞두고 탈당을 결행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해서 우상호, 이성헌 두 후보에게 도전장을 냈고 결과는 '예상대로' 낙선이었다. 그렇게 신지예는 서른 살이 되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신지예를 만났다. 콘크리트 계단에 콩콩콩 발소리를 내며 올라오던 그가 카페에 들어서기 전 멈칫하는 것을 보았다. 숨을 고르며 잠시 생각할 짬을 가지고 싶은 듯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창문을 등지고 앉은 내게도, 그가 남긴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후, 천천히 문을 밀고 들어온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투명한 커튼이 일렁이며 창밖의 새 소리를 실어 오고, 짧게 자른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화사한 햇살이 부서지는 봄날 오후였다.

'그따위 정치'는 거부한다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 소장 ⓒ 와글


- 선거 치르느라 고생 많으셨죠? 건강은 어떠세요?
"많이 회복했어요. 감사합니다."

- 이번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건 슬로건이 "그따위 정치는 끝났다"였지요. '그따위 정치'란 어떤 정치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란 책 있잖아요. 짧다면 짧지만, 제가 녹색당에서는 8년간 정당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이번 위성정당 사태를 보면서 정치적인 비통함을 깊이 느꼈어요. '한국의 정치라고 하는 게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회의감도 들고요. 그런데 세대나 당적을 떠나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서 우울감이나 비통함에만 잠겨있을 순 없겠다 싶었죠. 국민들에게 비통함을 안겨주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느꼈어요."

- 비통함을 안겨주는 정치?
"제가 정치를 맨 처음 시작한 게 주거권 문제 때문이었어요. 20대 초반에 망원동의 낡은 주택에 할머니와 청년들이 함께 들어가 사는 지역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재개발 바람 때문에 공동체가 와해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걸 보게 되었죠. 일상에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지켜지지 않는 세상이에요. 주거권 운동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고 정치권에서는 이걸 해결하겠다고 늘 공약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하고 있어요. 일상과 단절된 정치, 개인의 사익을 챙기기 위한 욕망으로 이어지는 거대양당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그래서 단절의 정치를 넘어서 연결의 정치를 하자고 국민들께 제안하고 싶었어요."

- 하지만 '거대 기득권 양당'이라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하나로 묶어서 통칭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적어도 한쪽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면서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열었던 세력이고, 다른 한쪽은 유신, 파쇼, 박근혜 통치 계보를 잇는 세력인데 어떻게 그 둘을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느냐 묻는다면?
"제가 이번에 MBC <100분 토론>에서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나갔는데요, 위성정당 사태에 대해서 민주당 쪽 패널은 '미래통합당의 일당독재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보수 쪽 패널은 '민주당은 저렇게 늘 거짓말을 한다. 우린 솔직하다. 위성정당 만든 게 맞다'고 하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어버려요. 둘 다 상대 당의 거대화를 저지하기 존재한다는 거잖아요. 데칼코마니 같아요. 산업화 세대에게나 민주화 세대에게나 각기 시대적 과업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지금 2020년의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들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변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둘 다 똑같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49.9% 통합당이 41.5%를 기록했습니다. 두 당과 각각의 위성 정당을 합치면 94.3%에 달합니다. 투표에 참여한 시민의 압도적 다수가 거대 양당을 지지한다고 표심을 드러낸 건데, 이런 선거 결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거대 양당 체계의 프레임이 그만큼 강력한 거죠. 이번 위성정당 사태 때 소수 정당, 진보 정당들도 갈팡질팡 많이 휩쓸렸잖아요. 그 모습들을 보면서 국민들이 실망한 게 아닐까요? 거대 양당을 견제하거나 비판할 제3지대가 없다 보니 국민들이 양당 중에 하나로 힘을 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모든 혐오는 가부장제의 유산

- 선거운동 기간 동안 공보물 훼손사건도 있었어요. 누군가 지예님 선거 벽보의 눈동자를 라이터로 지졌던데요.
"다른 여성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선거벽보 훼손사건이 있었어요. 유세 때 돌을 던지는 폭력도 있었고요. 저는 이게 단순히 개인을 향한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여성멸시, 여성혐오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여성인권이 낮은 나라일수록 특히 공적영역의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자주 일어나거든요. 2018년 지방선거 때도 30개 넘는 제 벽보가 훼손되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한애국당에서 나온 모 여성후보 벽보도요."

-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는군요. (웃음)
"네. 그때 벽보를 훼손한 범인으로 30대 남성이 검거되었는데, 기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끝까지 추적하지 못한 게 줄곧 후회가 돼요. 그때 제대로 대처했으면 선거벽보 훼손이라는 게 얼마나 중범죄인지 제대로 알릴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해서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구나 생각했어요."

- 요즘 젊은 남성들 중에는 "동년배의 '드센 여자들' 때문에 역차별을 당한다"는 피해의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워낙 불안과 각자도생의 사회로 가고 있다 보니 10~20대 남성들도 젠더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죠. '나는 남성이지만 여성한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닌데 왜 나를 가해자로 몰아?' 하는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남성만 여성혐오를 하는 게 아니라 숙대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여성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혐오를 드러내기도 해요. 전 그런 혐오가 당연시되는 것이 가부장제라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존재의 인권이 향상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 늘 경계하고 불안해하죠. 장애인 인권이 강화된다고 해서 비장애인의 인권이 흔들리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 뿐 아니라 일부 여성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배제도 가부장제의 유산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페미니스트 쪽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지 않나요?
"제가 양쪽에서 비판을 받아요. 어느 주체나 명암이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전 '여성의 인권을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과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그런 집단을 배척하는 것을 제 운동의 시작으로 삼고 싶진 않아요. 나와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지금 페미니스트들한테 필요한 건 연대의식이니까요. 우리가 싸워야 할 가부장제, 혐오에 맞서서 연대하지 못한다면 더 큰 싸움을 치를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저는 촛불항쟁 이후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의 첫 번째가 미투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선거에서,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표방하고 나온 후보의 수가 과거에 비해 꽤 늘었지만 당선 비율은 극히 저조하죠. 페미니즘이 여전히 주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단 뜻일까요?
"거대 양당들 입장에선 페미니스트 후보를 내세우는 게 여전히 리스크가 크다고 여길 거예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처럼, 기득권 바깥에서 한계를 깨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필요한데 그게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과업인 것 같아요. 그걸 위해선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세력화할 필요가 있고요."

'우리, 서른 되면 죽자'고 했는데

신지예는 서른 살 인생의 절반을 사회운동과 함께했다. 중2 때 두발자유화운동을 벌이겠다며 '한국청소년모임'이란 온라인카페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일반고 대신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를 선택했고 '이야기꾼의 책공연'이라고 하는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에서 일했다.

녹색당에 가입한 건 2012년 여름, 창당된 지 3개월 만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우연히 지나다가 녹색당 부스를 보고 이런 정당이 있으면 시민으로서 후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입당원서에 이름을 썼다. 이후 추첨제로 뽑는 당 대의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2016년 녹색당 비례대표로 출마했고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2년 뒤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서울시장 선거 사상 최연소 후보기록을 세웠다.
   
- 초고속 승진인데요. (웃음) 지난 15년간 삶의 궤적을 스스로 돌아볼 때 자신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요. (웃음) 저 스스로도 좀 '헉!' 할 때가 있어요. 두발자유화운동을 할 때 잘 알지도 못 하는 언니 오빠들이랑 운동한다고 출석 일수만 겨우 채우고 학교도 잘 안 가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거라든지, 사회적기업을 택한 거라든지... 좋게 말하면 용감한 거고 달리 말하면 참 무식하다... (웃음)"

- 그런 저돌적인 용기는 어디서 나오죠?
"그러게요. 어렸을 때는 그게 분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제 눈앞에서 선도부가 학생들 머리를 잡고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니, 맨날 사회시간엔 '인간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가르치면서 그걸 지키지 않는 학교에 큰 분노를 느꼈지요."

- 지금도 분노가 동력인가요?
"요즘엔 분노가 응축돼서 좀 단단한 신념 같은 게 된 거 같아요. 중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우리 서른 되면 죽자'고 유서도 쓰고 그랬거든요. (웃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자고 다짐하고. 근데 어느 날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란 책 서문에 '인류가 태어난 이유는 다음 인류를 위해서다'란 대목을 읽었는데 그게 정말 크게 가슴에 와 닿은 거예요.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하루에 몇 시간이나 될까요? 행복하지도 않은 시간들을 왜 굳이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야 하나 싶은데, 그런 삶 속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면 '다음을 위한 삶'이 아닐까 싶어요."

-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고 격동감을 느끼나 봐요?
"옛날엔 그랬는데 (웃음) 요즘엔 격동이라기보다 오히려 더 잠잠해지는 것 같아요. 모두에겐 막연한 불안이 있잖아요. 이러다가 불안정한 삶, 쓸쓸한 노후를 맞고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이 들 때마다 '다음 사람들을 위한 삶'에 대한 열정이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 같아요."

- 그간 줄곧 비주류적인 길을 택한 것 아녜요? 세상을 바꾸려면 비주류에 머무는 거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 비슷한 얘기를 엄마한테 들었어요. '엄마, 나 고등학교 안 갈 거야. 교육제도를 바꾸고 싶어.' 하니까 엄마가 '그럼 열심히 공부해서 교육부 장관이 되어야지' 하시더라고요. 물론 어떤 분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지위까지 올라서 세상을 바꾸는 노선을 택하죠. 그것도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선택했던 길은,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그건 제가 높은 위치에 올라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과 만나고 연결되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이번이 세 번째 출마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힘든 조건이었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정치적 터전이었던 녹색당을 떠나서 단신으로 유세를 해야 했으니... 선거운동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요?
"지역 거주자 중에도 다른 지역으로 출근하는 분들, 코로나 때문에 본가에 가 있는 대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온라인 유세를 중심으로 하자고 정하고 길거리 유세를 하루 10시간씩 유튜브 라이브로 전하기도 했고요."

- 어이쿠야! (웃음)
"매일 밤 10시에 '신지예의 나이트 라이브'라고 해서 정책에 대해서 한 시간씩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 'SNL'이네요.
"맞아요. (웃음) '매일 밤 10시에 만나요' 이런 현수막을 달고요. 제가 기호도 10번이라서... 근데 피곤해 죽겠는데 밤 10시에 또 라이브를 해야 하니, 그걸 준비하느라고 선본원(선거캠프 운동원)들도 매일 고난의 행군을 하시고. 나중에 후회 많이 했어요. 어쩌자고 이걸 하자고 했을까! (웃음)"

- 선거 한 번 치르면 빚이 많이 남는다고 하던데, 재정적인 문제는 없으세요?
"빚도 많이 졌어요. 2000만 원 정도."

-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 정도 빚이면 아주 건실한 편이에요. 억대 빚을 지는 사람도 부지기수라던데.
"돈은 최소한으로 아껴 썼고, 돈 안 받고 자원봉사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후원금도 꽤 받았고요."

- 얼마나 모으셨어요?
"여기저기서 6000만 원 넘게..."

- (놀라며) 많이 모았네요! 출마 선언하고 선거에 돌입한 지 며칠 안 되었을 텐데.
"네. 제가 빚을 많이 졌어요. 정치를 하면 할수록 '빚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의 빚도 지고, 돈 빚에, 사람 빚에. 가끔 좀 두렵기도 해요. 어깨의 무게들이 점점 쌓여가는 것 같아서"

- 그런데 왜 하세요?
"저는 정치가 마라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뛰는 마라톤이 아니고요,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 의지가 계속 이어져서 달리는, 정치적 집단의 마라톤 같은 거요. 제가 설사 (원내에) 못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저랑 함께 길을 가거나 추후에 이어받으실 분들께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정당의 조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지예(왼쪽)과 이진순 와글 이사장 (오른쪽) ⓒ 와글


- 21대 총선이 소수정당의 무덤이 되어 버렸어요. 위성정당 합류를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격화하면서 총선을 한 달 남겨놓고 녹색당에 탈당계를 내셨는데, '지예님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당내 갈등이 있다고 해서 서울시장 후보까지 나갔던 사람이 탈당을 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론도 있어요. 불가피한 결정이었나요?
"저의 미흡함이 큽니다. 하지만 제가 지키려고 한 건 당 그 자체가 아니라 여성정치, 녹색정치예요. 정치는 정의로움을 잃으면 안 되고, 과정이 잘못되면 목표에 도달하기는커녕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해요. (위성정당 참여) 논의를 주도하셨던 분들이 원래 의도한 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거대정당의 위성정당 만드는 데 도움 주는 역할을 한 건 사실이잖아요. 설사 정치개혁연합 중심으로 위성정당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미래통합당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잘못된 길이죠."

- 그간 녹색당은 원외정당이긴 해도 기후위기나 페미니즘, 동물권과 같은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는 정당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추첨제로 선출된 대의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준다든가 남녀공동대표체제를 운영한다든가, 정당민주주의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행보를 보여왔고요. 녹색당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거대양당의 기득권정치를 제어할 제3지대' 정당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더 필요할까, 생각해 보셨나요?
"모인 사람들의 선의가 중요하긴 하지만 선의만으로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만들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신뢰는 어떻게 생길까요? 전 불신을 기반으로 생긴다고 봅니다. 삼권분립처럼, 부패하거나 붕괴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하는데 그 점에서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시스템이 없으면 선의로 모였더라도, 몇 사람의 헌신이나 탁월한 가부장에 의존하는 결과로 나타나죠."  

-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당운영 시스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군요.
"저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계속 공부해 보려 해요. 녹색당의 추첨제 대의원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요. 저만 해도 추첨으로 대의원으로 뽑힌 덕에 녹색당 활동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된 거니까요. 반면에 대의원의 전문성이나 몰입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사실상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한계가 있었어요.

추첨제 민주주의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행해졌을 때는 '노동을 하지 않는 귀족'을 시민으로 분류했었잖아요. 시간도 많고 개인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한국사회는 그러기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는 거예요. 당직자들이 대의원을 일일이 찾아가서 안건에 대한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까, 설명서만 주고 많은 안건을 네 시간 안에 처리하게 했죠. 그렇게 하면 거수기 역할에 그칠 위험이 커져요."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전 촛불혁명때 개혁되지 못한 주체가 국회라고 생각해요. 위성정당에 대한 헌법소원에 저도 국민소송인단으로 참여했어요. 앞으로 국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위성정당 사태로 절망감을 느꼈던 분들을 모아서 정치스터디 모임과 함께 미래 구상을 함께해나가려고 해요."

- 창당을 하겠단 말씀인가요?
"네."

- 어떤 정당을 만들 건데요? 페미니즘 정당 같은 이슈 정당인가요?
"아니오. 한국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비전을 내놓을 정당, 국민의 삶과 연결된 정치를 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잠시 반짝하고 수명기한이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정당 말고요, 정당 자체도 지속가능해야 하고, 생태계도 지속가능해야 하고, 한국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새로운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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