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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오마이뉴스>는 '평화봉사단'에 주목했다.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한다.[편집자말]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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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의 영상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을 이 같이 평가했다.
 
그는 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있는 조사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팀 원버그(Tim Warnberg)를 비롯한 이들이 힌츠페터와 다니며 통역을 도맡았다"라며 "이들의 헌신 덕분에 힌츠페터의 취재가 가능했고 중요한 기록들이 남을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5.18을 둘러싼 왜곡과 가짜뉴스가 심한 상황이다"라며 "힌츠페터의 영상, 이들이 남긴 기록과 증언은 왜곡과 가짜뉴스를 막아주고 있다.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주디스 챔벌레인,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쥬디 챔벌린,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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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세계적으로 드문 사건" 
 
최 과장은 2015년부터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으로서 해외 기록물을 발굴·분석해왔다. 평화봉사단도 그가 연구하던 집단 중 하나였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였다. 단원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파견 국가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이 제도에 담겨 있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1980년 5.18 당시, 여러 평화봉사단원들이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당시 5.18을 직접 목격한 평화봉사단원은 팀 원버그,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쥬디 챔벌린(Judi Chamberlin) 등이다. 이 중 팀은 1993년 고인이 됐다. 이들은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민을 보호하고 직접 부상자를 후송하기도 했으며, 외신기자의 인터뷰를 주선·통역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단원들은 이들로부터 광주 소식을 접하고 외신보도를 이끄는 등의 역할을 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그의 취재를 돕는 인물로 구재식(류준열 분)이란 가상 인물이 등장하는데, 실제론 팀 원버그가 중심이 된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팀 원버그가 자주 갔던 음악감상실 DJ,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당시 전남대 의과대 학생 등은 "그가 한국어를 정말 잘했다"라고 증언했다. 
 
최 과장은 "5.18은 국제적 사건"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하며, 자신이 해외기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해외에서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 알고 있었다. 5.18이 지구적인 차원에서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해외기록물을 찾아 의의를 확대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직장 생활 도중 미국으로 유학을 가 켄터키대학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이 사무실에 있는 광주 지도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 났던 금남로 옛 전남도청을 가르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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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장소인 광주 동구 광산동에 위치한 구 전남도청사.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2002년 지정 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장소인 광주 동구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2002년 지정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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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록돼 있습니다. 세계적 사건이죠. 5.18을 국내적 사건으로 묶으면 그 의의가 매우 축소됩니다. 국가폭력에 대항해 어느 한 지역이 10일 동안 무장을 하고 해방된 공동체를 만들었던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때문에 국제사회가 어떻게 움직였고, 미국의 기밀문서에 어떤 기록이 남겨 있는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광주
 광주 5.18민주화묘역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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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과장은 해외기록물을 분석하던 과정에서 평화봉사단에도 관심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아마 5.18 연구자나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논문일 것"이라며 1987년 팀 원버그가 쓴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 >를 소개했다. 팀 원버그는 하와이대학의 한국학 전문잡지 < Korean Studies >에 이 논문을 실었다. 최 과장이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란 제목으로 변역한 이 논문은 영어권에서 5.18을 다룬 최초 학술 보고서이다.
 
"(팀 원버그가 이 논문을 내놓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광주항쟁을 분석한 논문이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해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논문이라 기록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가 발표했던) '광주항쟁은 외부세력이 개입한 폭동'이란 주장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영어권에서 나온 5.18 관련 논문이나 책들 중 상당수가 이 논문을 자료로 이용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빚 갚기 위해..."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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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과장은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학술부장이었다. 5.18 시작 직후 도피생활을 하다 1980년 10월 체포됐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81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5.18은 내게 엄청나게 큰 빚으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사회학자의 꿈을 접은 최 과장은 1985년 '국회의원급 3명의 신원보증서'를 내고서야 겨우 직장에 들어갔다. 그는 30년 직장생활을 마친 후 연구에 매진하게 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진상규명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5.18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일에 봉사하는 게 빚을 갚는 유일한 일이겠죠. 5.18을 둘러싼 오해와 왜곡이 심하잖아요.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내 청춘이 졌던 빚을 갚는 자그마한 기회가 됐던 거죠."
 
최 과장은 최근 평화봉사단원이었던 폴 코트라이트가 쓴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영문판 < Witnessing Gwangju >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데이비드 돌린저로부터 폴 코트라이트가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지난해 최종 답사를 위해 한국에 온 폴 코트라이트를 만났다"라며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당시의 모습 중 여러 인상적인 대목이 그의 회고록에 담겨 있다. 그는 5.18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봉사단으로 광주에 와 있던 젊은 청년들은 5.18의 비극적인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라며 "5.18 40주년을 맞아 증인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이들의 눈을 통해 5.18을 다시 재조명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 나경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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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①-1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http://omn.kr/1nj3g
①-2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http://omn.kr/1nj2u
② 광주 할머니와 약속 지킨 청년 http://omn.kr/1nk4l
③ "전두환 부끄러워해야" http://omn.kr/1njqo
④ 미국인이 찍은 80년 5월 http://omn.kr/1nkf9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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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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