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부마항쟁
 부마항쟁
ⓒ 진실위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김재규는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참담한 심경을 가누기 어려웠다.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는 헬기를 타고 시위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부산 관계기관 책임자들을 만나 상황을 들었다. 서울에서 청취한 보고 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판단이었다.

현지에서 상황을 알아보니 180명의 구속자 중 학생은 1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인이고, 검경이 주장한 남민전이라는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이란 증거도 없었다.

자연발생적인 반정부 민란의 성격으로 주부들이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수를 날라다 주는 등 시민혁명의 수준이었다.

정확한 실정을 보고하기 위해 대통령을 만났다. 경호실장 차지철과 비서실장 김계원 등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김재규는 12월 8일 열린 군사법정에서 검찰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어 진행된 재판관의 신문에서 그때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부마항쟁
 부마항쟁
ⓒ 진실위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데모 양상을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주고 사이다 콜라를 갖다 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 집에 숨겨주고 하는 것이 데모하는 사람들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구호는 주로 체제에 대한 반대, 조세에 대한 저항, 물가고에 대한 저항, 정부에 대한 불신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것이 작용해서 경찰서 11개를 불 지르고 경찰차량 10대를 파괴해 소각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각하께 보고 드렸습니다. "각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렇습니다"라고 하면서 각하의 생각을 좀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또 반대효과가 났습니다.

이곳엔 변호인밖에 없긴 하지만 이 말씀은 밖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말기에는 최인규와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했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런 데다가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는 100만, 200만 명 희생시키는 것쯤이야 뭐가 문제냐"고 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소름 끼칠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건의를 쭉 해봤지만 건의하면 할수록 반대효과만 났습니다. 처음에 제가 부임할 때는 순리적인 방법으로 유신체제를 바꿔놓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불가능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석 9)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 박도

관련사진보기

 
유신말기 박정희와 차지철의 시국인식은 그야말로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들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능히 못할 짓이 없었다. 박정희는 어떤 심리였을까. 박정희의 '정신분석'을 연구한 신용구 씨는 "대담하면서도 소심했고 공격적인 동시에 한없이 유약했던" 인물로 분석한다.

박정희가 메시아적 존재를 자아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죽음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 공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의 강렬한 불안 - 유기불안과 거세불안 - 으로 인해 늘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그로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경쟁적 태도나 강박증 역시 죽음과 관련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이었음을 감안할 때, 결국 그의 핵심적인 갈등의 요체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문제들에 시달리던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메시아적 인물이 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불안 해소 방법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석 10)

김재규는 비장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온건한 방법도, 충간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몸을 던지기로 결단한다. 박과 차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보아 장차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우려되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 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릅니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만 하더라도 약 400~500명이 교도소에 있고,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 수가 800~1000명 정도입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할 나라가 독재를 하면서, 원천적으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독재를 저질러놓고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완전히 적반하장 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방법이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통령 각하와 자유민주주의 회복과는 아주 숙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결국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주석 11)


주석
9> 안동일, 앞의 책, 108~109쪽.
10> 신용구,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243쪽, 뜨인 돌, 2000.
11> 안동일, 앞의 책, 10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