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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은 이재학 CJB 청주방송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 CJB 청주방송 앞에서 100일 추모 문화제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동생 이대로씨가 추모글을 낭독했습니다. 이대로씨 쪽에서 <오마이뉴스>에 추모글을 보내와 싣습니다.[편집자말]
 
13일 오후 충북 청주시 CJB청주방송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문화제에서 고인의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가 추모의 글을 낭독하고 있다.
 13일 오후 충북 청주시 CJB청주방송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문화제에서 고인의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가 추모의 글을 낭독하고 있다.
ⓒ 박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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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듬직하고 멋진 나의 형, 나의 자랑.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벌써 100일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은데 지난 100일이 저희 가족에게는, 그리고 여기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힘든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100일이 이렇게 벅찬데 저희 형이 겪었을 그 2년 가까운 시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외로웠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찌 그런 형의 입장과 심정을 모두 이해하고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릴 적 형하고 함께 자라왔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야 떠오릅니다. 같이 웃고 떠들었던 일들, 다퉜던 일들... 한순간 한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모든 걸 버려서, 제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습니다.하루 전인 2월 3일이라도, 2월 4일, 그때의 한 시간 전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옆에서 형을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왜 이제야 형의 그 고단했던 날들을 알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든 게 꿈 속 이야기 같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 잘못된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꿈에서 저는 혼자 또 다툽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그저 꿈 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말 너무 슬픈 꿈을 꾸었다고 형에게 전화해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쯤이면 형이 어디까지 가있을지. 언젠가 그렇게 먼저 가버린 형을 다시 만나면 형이라 소리치고 뛰어가서 손이라도 잡을 수 있게 너무 멀리 가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형의 손을 한번이라도 잡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해주지 못했던 이 못난 동생이 형은 그렇게 걱정되고 지켜주고 싶어서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런 사람이었는데 동료들을 위해서는 본인의 모든 걸 바쳐서라도 싸워주고 싶었나봅니다. 왜 그렇게 의로웠는지, 왜 그렇게 동료들만 챙겼는지,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 현실도 마주하지 않았을텐데.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싸움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언론노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회,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용균재단, 직장갑질119 등 55개 단체가 모여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언론노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회,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용균재단, 직장갑질119 등 55개 단체가 모여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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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까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모든걸 제자리로 돌려놔야 합니다. 그 과정이 싸움으로 얼룩지고 고될지라도 잘못된 것들과 잘못된 사람들은 모두 도려내고 책임을 지게 하고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려놔야 합니다.

이 곳 CJB청주방송이, 이 안에 있는 동료들의 그 옆 자리가, 저희 형의 20, 30대 모든 젊은 날이었습니다. 그토록 되돌아오고 싶어했던 그 곳이 바로 이 곳 CJB청주방송이었습니다.

형이 꾸었던 그 꿈이 너무 무겁고 때론 벗어둘 수도 없는 굴레였을까요. 형이 마지막으로 기댔던 그 꿈은 왜 형을 안아주지 못했을까요.

그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고자 했던 형의 바람과 그 꿈이 마지막까지 옆에서 용기를 주지 못하고 슬픔으로 가득차게 했을지.

이 모든 싸움같지 않은 싸움을 끝내고 나면 그땐 형에게 달려가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다신 형을 놓치지도 외롭게하지도 않겠다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까지 맘 편히 고통없이 그 해맑았던 웃음으로 날 반겨주길.

다시 태어나도 내 형이 되어주고 난 형의 동생이 되길. 많이 보고싶고, 많이 사랑합니다.

태그:#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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