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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가끔, 내 안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감정의 스위치, 외부로부터 받는 온갖 종류의 자극을 통제하는 스위치 같은 것이 있다면 말이다. 일종의 차단 욕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욕구는 생각보다 강렬해서, 나에게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는 먹고 싶은 욕구, 자고 싶은 욕구보다도 훨씬 더 자주, 간절하게 차단의 욕구가 찾아온다.
 
최근 나에게 신세계를 선사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이다. 나는 오로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 이어폰을 사용하는데, 음악이나 영상을 재생하지 않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만 켜놓으면 내 귀에 들리던 10가지 소리들 중 7~8개의 소리는 차단된다. 마치 물속에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깥에서보다 주로 집에서 이어폰을 쓰게 되는데, 아이들이 TV를 볼 때, 남편이 보는 유튜브 소리가 듣기 싫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몰래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 기특한 이어폰 덕분에 나는 식구들이 복작거리는 와중에도 물속에서 유영하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잠시 동안 마음의 평온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오, 멋진 신세계여."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주는 진정제 '소마'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내 안에서 마구잡이로 뻗어 나오는 감정들과 온갖 욕구들이다. 화, 원망, 죄책감 같은 감정들에 휘둘릴 때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간단히 '감정 스위치'를 '탁' 꺼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2015)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2015)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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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영국에서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 안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소설의 배경은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낸 해를 기원으로 삼은 시대로, A.F.(포드 기원) 63년의 세계국(World State)이다. 분업체계로 효율적인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포드를 신처럼 여기는 이 세계에서 인간은 자동차가 생산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세계국은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라는 표어를 따라 견실하게 굴러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모체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부화장'에서 인공적으로 수정되고 부화된다. 시험관에서 성공적으로 수정된 난자는 병 속으로 옮겨져 '보카노프스키'라는 습성훈련과정을 거쳐 '알파', '베타', '감마', '엡실론'으로 외모와 계급이 나눠지고 각 계급에 걸맞는 '습성 훈련' 과정을 거쳐 인간으로 배양된다. 그렇게 배양된 인간은 계급에 따라 하수도 청소부가 되기도 하고, '미래의 세계를 장악할 지배층'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이 정해진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아무런 불만도 욕심도 없이 살아간다. 열대 지방에서 광부와 철강 근로자로 일하게 될 '엡실론'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뜨거운 열기에 익숙해지도록 훈련 되었기에,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상태를 가장 편안하게 여긴다. 신분 상승의 욕구도, 상대적 박탈감도, 불안도 없는 '안정된 개인의 삶'이 만든 '안정된 사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한다는 것 -." 국장이 단호하게 힘주어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다. 불가피한 사회적인 숙명을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훈련, 모든 습성 훈련이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48쪽)
욕구와 해소 사이에 감정이 숨어서 기다린다. 그 사이를 단축시키고, 불필요한 모든 낡은 장애물을 무너뜨려라. (87쪽)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진 인간이라도, 인간들이 하는 일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실수가 따르는 법. 배양 과정에서의 어떤 실수로 인해 '육체적 결함'을 갖게 된 '버나드'와 인간의 실수로 태어나 야만인으로 살게 된 '존'이 그 예다. 그들로 인해 오차 없이 완벽하게 짜여진 세계는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나 너무도 철저하고 견고하게 짜인 세계 속에서 그런 작은 실수의 결과물들은 외딴 섬에 내다 버리거나, 스스로 파멸하도록 놔두면 그만이다. 기계 문명에서 개인은 너무나 쉽게 버려지고 대체된다. 그 세계에서 '개인'은 얼마든지 새로 찍어낼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므로. 섬뜩하고 서글픈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게 더 나은 선택이겠지. 이단적인 행동만큼 막중한 죄는 또 없을 듯하네. 살인은 한 사람만을 죽일 뿐인데, 따지고 보면 개인 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우린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지극히 간단하게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어. 이단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삶보다는 더 많은 것들 것 동시에 위협해서, 사회 자체를 공격하는 격이야. 그래, 사회 자체를 말이야." (231쪽) 

우리의 과학기술은 이미 무서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여성의 몸이 아닌 공장에서 인간을 배양하고 특정 성질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책의 첫머리에 실린 니콜라이 베르다예프의 말처럼,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졌지만, 더 이상 실현 하지 않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회피'하는 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내가 절대로 기계, 로봇에게 내어줄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내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인간이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단연 '문학'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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