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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은 노무현 서거 11주년이다. 그는 서거 이후에 더 시민들의 지극한 사랑과 존경과 애도의 대상이 된 지도자다. 도대체 무엇이 노무현을 그렇게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어째서 노무현을 향한 시민들의 그리움과 애틋함은 점점 커져만가는 것일까?

그리스 비극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그의 삶과 죽음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자료사진)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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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을 생각하면 그리스 비극 속 영웅이 연상된다. 그리스 비극 속 영웅들이 걷는 길은 대동소이하다. 먼저 그리스 비극 속 영웅들은 간난신고로 점철된 유년시기와 청년시기를 통과한다. 그후 그들은 불가역적 운명에 초인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결연히 맞서 눈부신 업적을 만들어내지만 결국에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상고 출신 노무현이 사법고시를 거쳐 판사와 변호사가 되고,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선 후 1988년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영웅이 되기까지의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그 후의 일들은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와 정면대결해 '바보 노무현'이 됐고, 2002년 대선에서 기적을 이룬 후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낮은 지지율, 적대적인 언론환경, 강한 야당, 관념좌파 등에 둘러싸여 고전하는 와중에도 '특권'과 '반칙'의 혁파를 위해 분투했다. 그리고 대통령 퇴임 후 봉하에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노무현은 이명박 정부와 검찰과 언론의 협공 아래 스러졌다.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노무현의 삶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횃불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은 주변인들의 고통과 진보진영의 위기에 대한 대속(代贖)의 의미를 지닌다. 노무현의 삶과 죽음은 한국현대사의 모순과 격렬하게 부딪치고, 감동의 순간들과 조우하며, 감정의 파토스(pathos)를 이끌어낸다. 앞으로도 시민들의 마음 속에 노무현 같이 강렬한 정서적 공감과 감정의 격동을 불러일으키는 지도자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사회의 적폐들과 싸우며 시대정신 선취했던 노무현   

단지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그리스 비극 속 영웅들과 닮은 꼴이어서 시민들이 노무현을 지극히 애호하고 추모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노무현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는 노무현이 한국사회의 대표적폐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한국사회의 대표적폐인 지역주의와 정면대결했고, 부동산 공화국 혁파를 위해 헌신했으며, 서울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불균형 성장전략에 맞섰고, 수직적 한미관계를 수평적 한미관계로 개혁하려 애썼으며, 적대적 남북관계를 협력적 남북관계로 전환하려 분투했다. '특권'과 '반칙'의 폐절을 주창하며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장엄한 대결을 벌였던 노무현은 시대정신을 선취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종부세 신설, 행정수도 이전, 전작권 회수, 10·4선언 등은 노무현이 선취한 대한민국의 미래다.  

노무현 이후 등장한 정치인 가운데 노무현처럼 모든 걸 걸고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정면 대결한 정치인이 있었던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노무현의 스타일을 흉내내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스타일이 아니다. 진정 중요한 건 노무현처럼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목숨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할 수 있느냐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시대정신을 선취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 모순들 

그렇다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한국사회 특유의 재봉건화(再封建化,re-feudalization)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반칙, 특권, 불공정, 비합리, 몰상식 등이 재봉건화 경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고 이런 요소들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 승자 독식 및 패자부활전의 부재, 불로소득 추구행위의 만연, 패거리주의와 학벌주의의 기승, 사익추구행위의 창궐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 같은 한국사회 특유의 재봉건화 경향은 식민, 분단, 반민주 등의 한국사회 고유의 역사적 경험에서 연유한 적폐들의 누적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류라 할 신자유주의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업사회화 경향의 심화, 경제의 금융화 경향, 주주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수다한 문제들, 민영화, 시장개방, 무역자유화, 고용유연화, 경쟁의 촉진, 제조업에 대한 금융업의 우위,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이 상당부분 신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문제들이고 이런 요인들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인 양극화(산업 간, 기업 간, 지역 간, 노동 간, 계층 간)에 부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제2의 노무현을 꿈꾸는 정치인이 정면대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악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한국사회의 통합과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결정적인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재봉건화 및 신자유주의의는 제2의 노무현이 최우선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이다. 제2의 노무현은 특권과 반칙, 불공정성, 비정상성, 반/비합리성이라는 전근대적 요소들을 지양해 근대성과 공정성을 회복시켜야 하고,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현대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점들도 완화시켜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재봉건화를 저지하고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병폐를 완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자임하는 정치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재봉건화 저지와 신자유주의가 끼치는 해악의 중화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제2의 노무현을 기다린다


역사와 대화하며, 시민을 믿고 한국사회의 핵심모순들과 온몸으로 대결한 노무현, 전투에선 무수히 패했지만, 전쟁에선 승리한 노무현, 정치와 권력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긴 노무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기에 최고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노무현,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시대정신을 선취한 노무현,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지만,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노무현.  

이게 내 머릿 속에 있는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다. 오늘도 나는 노무현의 정신을 겸손하고 세련되게 구현할 제2의 노무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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