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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 관세청 부산본부세관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국산담배를 밀수하려 했다는 혐의로 업자가 구속된 것이다.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이들은 동남아로 수출된 국산 담배를 부산항을 거쳐 중국으로 보내는 화물로 밀수입하려 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적발 규모다.

이들의 밀수품은 64만갑, 28억원 분량으로 부산본부 담배밀수 적발로는 역대 최대 규모란다. 40피트 컨테이너 1대를 가득 채워야 64만 갑이 나온다고 하니 실로 입이 떡 벌어지는 양인 셈이다. 수출 담배를 밀수해 판매하면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틈을 노린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큰 규모의 밀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은 이익을 따라 이동하는 존재다. 수요가 있고 공급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한다. 아무리 엄한 법으로 금지해도 밀수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밀수 이야기
 밀수 이야기
ⓒ 예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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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는 이런 불법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밀수는 몰래 물건을 사거나 파는 불법적인 매매를 지칭한다. 당연히 도덕적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밀수의 거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밀수의 역사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봤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세계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노르웨이 트론헤임대의 역사학, 미술사학 교수인 사이먼 하비는 유물과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골동품을 조사하던 중 세계 유수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들이 밀수를 통해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밀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교역 금지품, 금지를 뚫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밀수꾼들의 역사를 정리했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범위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현대까지다. 동양의 이야기도 다루긴 하지만, 책의 주 무대는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의 비극적인 현대사에 기인한다. 향신료, 은, 코카인, 헤로인과 같은 마약과 나치 전범 등이 밀수의 대상이다.

이 책이 다루는 첫 장은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밀수다. 이 지역의 밀수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메리카, 특히 카리브해 인근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다양한 세력이 진출했다. 이 지역은 많은 섬이 분포해 있었기에 위기시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카리브 해 인근 영토의 공식적인 주인인 스페인은 이 지역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했다. 스페인의 정식 함대가 진행하는 교역이나 보급만으로는 식민지 주민들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부패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담배 농사를 짓고 밀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제적 규모의 밀수도 매우 성행했다. 상업 국가로 발돋움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아메리카에서는 밀수를 하고, 동양에서는 독점을 하면서 이득을 봤다고 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아메리카에서는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과 어울려 밀수의 무대를 균등하게 나눠가졌지만, 동양에서는 무자비한 독점자였다. (중략) 그곳에는 요새화된 스페인의 항구를 벗어나 카리브 해처럼 느슨한 밀수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던 대신 철저히 계산된 독점 체제가 들어섰다. 네덜란드인들은 한쪽 바다에서는 자유방임적인 약탈자들이었지만 다른 쪽 바다 에서는 편협한 독점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저자에 따르면, 현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밀수가 성행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자극적인 것들이 바로 전범과 마약 밀수였다. 나치 전범들을 남미로 이동시키는 일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많은 독일의 나치들이 재판에서 처형되거나 자결했지만,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치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이용해 아르헨티나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치와 연합하여 학살을 벌인 소국의 지도자들도 아르헨티나로 이동했다. 아르헨티나 측은 기술을 받아들이고 공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인간 밀수를 막지 않았다.

국가 기관이 개입하는 형태의 밀수도 있었다. 놀랍게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이를 이용했다. 냉전 시기의 논리가 그들을 뒷받침했다. 저자는 CIA가 중남미의 좌파 정부를 제압하고 그들에 대항하는 반군을 지원하려 했고, 마약 밀수꾼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며 이를 비판한다. 이른바 '콘트라 스캔들' 사건이다.

저자는 밀수는 늘 존재해왔으며, 밀수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확산, 세계화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에도 밀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책은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면 어떤 곳에서도 밀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약이나 총기와 같은 금지된 물품도, 나치 전범과 같이 용서받기 어려운 사람도 밀수된다. 인프라가 허술한 과거나 후진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선진국 정부가 보호무역을 시도해도 막기 어렵다.

이것이 책이 보여주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역사의 모습이다. 밝은 역사가 아닌 어두운 역사지만, 이 또한 인간과 역사의 단면이므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역사의 파편들을 잘 꿰매어 책으로 완성한 저자의 실력에도 감탄이 나온다.

밀수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사이먼 하비 (지은이), 김후 (옮긴이), 예문아카이브(2016)


태그:#경제, #정치, #밀수, #무역, #카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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